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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라이브 선샤인

[2학년] Marine Border Parasol

Marine Border Parasol

 

버스에서 내리자 바로 앞쪽에 여관이 보였다. 간판에 쓰여 있는 토치만이라는 글자가 눈에 익었다. 이미 몇 번이나 왔는지. 벚꽃이 만개할 때도. 푸름이 한창일 때도. 낙엽이 떨어질 때도. 그리고 눈이 쌓였을 때도. 계절의 경치가 모두 기억의 조각으로 남아있었다. 언제라도 변하지 않는 경치에 마음이 편해지면서 미소가 지어졌다.

어디보자. 시간이. 손목에 찬 시계를 확인하자 딱 2시로 넘어갔다. . 정확히 도착이지 말입니다! 기분이 좋아져 절로 콧노래가 나왔다. 여관의 앞까지 총총 뛰어가자 앞에 살랑거리는 벚꽃 색의 머리칼이 있었다.

. 리코 쨩.”

요우 쨩 어서와. 하하우리 집도 아닌데 이상한 말 해버렸네.”

아냐아냐. 바로 옆인 걸? 그런데 치카 쨩이 집합~!!’ 이라니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걸까나.”

으음. 대단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가사라도 완성된 걸까?”

헤헤. 얼른 가보자!”

, !”

오전에 갑작스레 2학년 단톡방에 올라온 치카 쨩의 문자. 2시에 여관에 집합이라는 말 외엔 아무것도 설명해주지 않은 채 약속 시간이 되었다. 나와 리코 쨩은 아래층에 있던 시마 언니와 미토 언니에게 인사를 하고 치카 쨩의 방에 올라갔다.

치카 쨩~? 들어갈게?”

묵묵부답. 평소라면 금방 돌아왔어야 할 활기찬 대답소리지만 지금은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리코 쨩도 이상했는지 나와 서로 눈을 마주치곤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리코 쨩의 신호에 나는 조심스레 방문을 열었다.

스으, 스으, 하고 안에서 들려오는 규칙적인 숨소리. 나와 리코 쨩은 살짝 열은 문틈 사이로 방 안의 상태를 살폈다.

. 치카 쨩 자고 있어.”

정말이다. 아이 참사람을 불러 놓고.”

많이 지쳤나봐.”

치카 쨩 앞에 놓인 가사 노트를 가리키자 리코 쨩이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가만히 서있는 것도 좀 그렇고, 오자마자 돌아가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나와 리코 쨩은 하는 수 없이 방 안으로 들어가 책상에 자리를 잡았다.

흐음. 뭘 쓰고 있던 걸까. 우리 리더는.”

잠시 치카 쨩을 멍하니 바라보던 리코 쨩은 슬쩍 치카 쨩이 깔고 누운 공책을 빼내었다.

!? 리코 쨩, 그건 좀 위험하지 않아?”

치카가 가사를 다 썼는지 못 썼는지 확인하는 건 작곡 담당으로서의 임무라고나 할까. . 내가 재촉하지 않으면 아무도 재촉하는 사람이 없으니까. 조금쯤은.”

. 치사해. 나도 같이 봐도 돼? 의상 담당으로서 노래 가사에 영감을 받은 의상을 만들고 싶어.”

으으으음~.”

잠시 고민을 하다가 리코 쨩은 싱긋 웃었다.

그런 거라면 요우 쨩도 확실히 봐야겠지?”

그렇게 말하며 리코 쨩은 가사 노트를 펼쳤다. 리코 쨩. 왠지 점점 무서워지는 듯한 느낌이.

펼친 공책에는 우리 Aqours가 지금까지 불러왔던 노래들의 가사가 빼곡 적혀있었다. 시작 했을 때부터의 가사, 는 아니다. 아무리 그래도 공책이 부족한걸. 그래도 역시 충분히 추억이 깃들어 있는 소중한 가사들이었다.

어라. 이 페이지.”

신기한 거라도 발견한 걸까. 리코 쨩은 페이지를 넘기던 손을 멈추었다.

이거, 나한테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가사야.”

헤에, 어디어디. 이 가사는 안 쓸 예정. 왠지 슬퍼지니까?”

그래도 제목은 정해놨네. Marine Border Parasol이라고 쓰여 있어.”

나와 리코 쨩은 펼쳐진 페이지의 가사를 조용히 읽었다. 확실히. 읽으면 조금 쓸쓸한 기분이 드는 가사였다. 지금은 이제 가버린다는 걸. 이 여름은 더는 오지 않는다는 걸 치카 쨩은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이거.”

내 속마음을 들여다본 듯 리코 쨩이 말을 이었다.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말하고 있어.”

!”

있지, 요우 쨩.”

?”

나 이 가사에 멜로디, 붙여 보고 싶어. 쓸쓸하지 않은 멜로디. 신나는 멜로디로.”

, 정말?! 가능할 것 같아?”

. 할 수 있어. 템포를 조금 높이고, 여기 이 부분에서 대사를 넣고, 이 부분에서 음을 높이면. 그러니까 요우 쨩. 도와줄래?”

물론이지!”

왜냐하면.

왜냐하면.”

 

““꿈은 바뀌어도, 우리가 친구인 건 언제까지나 변하지 않으니까.””

 

쓸쓸해 할 필요가 없다는 걸.”

다시 한 번 치카 쨩에게 알려줘야겠지?”

 

*

 

노랗게 물든 햇빛이 창문의 커튼 틈 사이로 들어와 방 안에 녹아들었다. 닫힌 눈꺼풀을 두드리는 반짝임에 살짝 눈살을 찌푸리면서 겨우 눈을 떴다. 하늘을 물들인 노을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화들짝 놀란 나는 책상에 두었던 휴대폰을 잽싸게 집어 들었다.

맞다. 맞다맞다맞다맞다! 이탈리아에 가기 전 날 다 같이 모여서 자고 출발하자고 말하려고 했는데! 리코 쨩이랑 요우 쨩, 좋아해줄 거라 생각해서 비밀로 하고 불러놨더니 내가 잠들어버렸어!?

막 휴대폰의 시계를 확인하자 거의 6시에 근접해있었다. , 6? 그럼 애들은? 주위엔 아무도 없다. 하기야 내가 잠든 모습을 계속 지켜보는 것도 이상하긴 하지만. 일단 왔다 가긴 한 건가? 그렇게 갸웃하고 있을 즈음 휴대폰 상단 바에 메시지 표시가 있는 걸 눈치 챘다.

어디어디. 치카 쨩이 곤히 잠들어서, 리코 쨩 방에 가 있을게. 일어나면 와줘. 역시 왔다 갔잖아!”

서둘러 카디건을 걸치고 계단을 내려가자 미토 언니가 쿵쿵 거리지 말라며 핀잔을 주었다. 저녁을 먹을 건지 묻는 시마 언니에게 이따가라고 서둘러 답한 뒤 샌들을 신고 리코 쨩의 집을 향했다. 아직 있겠지?

초인종을 누르자, 내가 올 거라 알고 있던 듯 리코네 어머니가 금방 나오셨다.

리코와 요우는 위층이란다.”

!”

계단을 올라 문을 열자.

순식간에 문을 통과한 바람이 뺨을 스치고 폭풍처럼 지나갔다. 바람을 타고 함께 흘러나온 멜로디는 마치 푸른 바다를 떠올리는 청명한 음색으로 귓가에 맴돌았다.

이거.”

치카 쨩.”

어서와.”

두 사람이 나를 바라보고 싱긋 웃었다. 어떻게? 어째서?

미안. 멋대로 가사 봐버렸어.”

안 쓴다고 했지만, 이렇게나 멋진 가사를 봐버리면 역시 멜로디를 붙이고 싶어지니까. 치카 쨩이 쓸쓸해하지 않도록, 신나는 멜로디로 붙여봤는데 들어볼래?”

역시 치카가 쓴 가사! . 으으! 치사해. 이러면 화낼 수도 없잖아!

나도.”

?”

나도 부를래!”

히히, 당연하지!”

기다리고 있었어, 치카 쨩!”

 

파라솔 바닷가의 길은 언제나 변하는 일이 없지만

우리가 가진 꿈의 색깔은 변해간다는 사실을 알았어

파라솔 즐겁게 놀고 나서 또 보자, 다음 계절에 나아가

어디서 다시 볼 수 있을진 바닷바람이 알고 있어

 

패러렐 지금의 우리라서 고마워 혹시나 다른 선택지였다면

여기서 매일 함께 웃으며 보내지 못했을 지도

패러렐 어쩌면의 대답은 파도가 품에 안고 가져갔어

언젠가 다시 만날 거란 건 바닷바람이 알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