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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라이브 선샤인

[카나다이] 카난과 다이아 이야기

카난과 다이아 이야기

 

덜컥 돌 같은 무언가가 가슴 안에 내려앉은 느낌이 들었다. 뜨겁게 달궈진 돌은 마음을 태웠다. 빠르게 타들어가 숯덩이가 되었다. 처음 느껴보는 감각이 전신을 맴돌아 떨렸다. 움직이는 팔이 내 것이 아닌 듯 낯설었다. 무거웠다. 무겁고, 아팠다.

어둠이 짙게 깔려 달빛조차 들지 않는 방에서 자그맣게 나를 비추는 휴대폰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전원을 눌렀다. 휴대폰을 옆으로 치워두고 나는 그대로 무릎을 세워 끌어안았다. 카난의 헤어지자는 말이 자꾸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

 

 

여보세요. , 다이아. 밥은 챙겨 먹었어?

여느 때와 같은 차분하고 상냥한 목소리로 그녀는 전화 너머 그렇게 물어왔다. 마침 저녁 식사를 마치고 정리한 뒤 방 안에서 책을 읽는 도중이었다. 카난이 귀신 같이 알아챘다는 건 아니고 평범하게 보통 이 시간에 전화를 하곤 한다. 카난이 있는 쪽도 지금이 쉬기에 편한 시간이라고 했던가. 처음 몇 번은 이 시간에 전화를 했을 때 저녁을 안 챙긴 적이 있었는데 그 때마다 카난이 삐지거나 내가 혼나거나 하는 일이 다반사였기에 나는 어느 샌가 카난이 전화하기 전엔 꼭 저녁을 챙겨먹게 되었다.

, 챙겼어요. 카난은?

먹고, 지금은 씻고 쉬는 중이야.

Aqours끼리 있었을 때엔 카난도 나와 함께 모두의 이야기를 듣는 편에 속했지만 단 둘이 있을 때의 카난은 조금 수다쟁이로 변했다. 수습 생활이 힘들다고 어리광을 부리면서도 오늘 있었던 재미있는 일들을 얘기한다거나, 해외의 일상을 들려주곤 했다. 나도 맞장구를 치면서 대학 생활 얘기를 카난에게 풀었다. 그러면서 몇 번이나 옛날 추억을 꺼내어 같이 웃었다.

하지만 오늘은 아마 조금 특별한 패턴이리라 멋대로 짐작했다. 1231일의 밤. 조금 있으면 신년이고 내 입으로 말하긴 조금 부끄럽지만 생일이다. 올해는 집에 내려가지 않아 루비들의 축하를 직접 받을 수 없지만 연인이 있다. 비록 멀리 떨어져 있어도 전화 너머로라도 들을 수 있는 목소리가 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예상했던 대로 카난은 곧장 자신의 얘기를 시작하지 않고 조금 뜸을 들였다.

있지, 다이아. 하고 잠시 말을 끊는 카난. 나는 눈치 채지 못한 척 시치미를 뗀 채 되물었다. . 무슨 일인가요, 카난. 여기까지는 내가 예상한 행복한 시나리오의 일부였다. 그러나 다음에 온 말은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던 한 마디였다.

갑자기 미안하지만 역시 우리, 헤어지는 게 좋은 것 같아.

그렇게 말하고서 카난은 다시 침묵을 유지했다.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말을 한 건지 모르겠어요, 카난. 평소처럼 얘기해줘요. 오늘 있었던 일이라든가, 힘들었던 일이라든가. 하루의 마무리는 같이 하기로 했잖아요. 그런 식으로 아무런 말도 안 하면 장난으로 받아들일 수 없잖아요. 마치 생각할 시간을 주는 것 같아서, 장난처럼 받아들일 수 없잖아요. 이 말들이 목에 메었다. 산소가 부족한 것도 아닐 텐데, 체한 것처럼 숨을 들이쉬어도 계속 공기가 부족했다.

알고 있다. 알고 있었다. 카난은 절대로. 세상이 두 쪽이 나는 한이 있더라도 장난으로 이런 얘기를 꺼낼 사람이 아니라는 건. 진심이 담긴 말이 예상치 못한 곳에서 튀어나와 머리를 새하얗게 만들었다.

멀리 있어서 매번 잘 챙겨주지 못해 미안해. 내가 다이아를 묶어두는 것 같아서. 아니, 이건 핑계네. . 내가 연인으로서 다이아 옆에 있어주지 못하는 게 스스로 죄책감이 들어. 이기적이라곤 생각하지만. 그래도 분명 다이아는 좋은 사람이니까 나보다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카난은 분명 호인이고 좋은 사람이었다. 70억 명이나 사람이 있으니 당연히 카난만큼 좋은 사람은 더 있을 테지. 그래도, 그 모든 사람들 중에 카난은 딱 한 명이었다. 카난도 마찬가지로 제가 좋은 사람이라 고른 게 아니라 다이아였기에 고른 거잖아요.

잘 챙겨주지 않아도 괜찮아요. 언제까지 기다릴 수 있으니까. 제가 좋아서 기다리는 걸요. 죄책감 같은 거, 들지 않아도 되는데.

저는.

좋은 사람이 아니에요.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싫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으니까. 그러도록 노력했으니까 카난에게 있어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거예요. 가지 말아요.

온갖 붙잡는 말들이 떠올랐다. 당장이라도 입 밖으로 꺼내어 카난을 곤란하게 만들고 싶었다. 나를 봐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만큼 카난이 더 이상 죄책감에 시달리지 말았으면 했다.

우선은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

 

 

아직도 현실감각이 없었다. 전화를 끊고 열어두었던 커튼을 쳤다. 방문을 굳게 닫고 불을 끈 뒤 침대에 누워보았다. 마음이 무거운 탓에 몸에까지 영향이 갔다. 몇 번이고 뒤척이며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평소 자는 시간보다 빨리 누운 탓도 분명 있겠지만, 그것보다도 카난에 대한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침대에 앉아, 무릎을 세워 끌어안았다. 휴대폰은 옆으로 치워둔 채 고개만 품 안에 숙여 넣었다.

혹시라도 그 모든 게 핑계가 아니었을까. 사실은 나를 생각만큼 좋아하지 않거나, 아니면 내가 많이 부족해서 그런 탓일까. 내게 있어 첫 연애이기는 했다. 카난과 친구였을 시절과 비교하면 달라진 건 스킨십 정도일지도 모른다. 그것도 오랜 기간 못 했지만. 너무 내 얘길 하지 않은 탓일까. 어쩌면 매력이 없어서. 어쩌면 어쩌면 어쩌면 어쩌면 하고.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어 내 부족한 점을 자꾸만 찾아냈다. 그러면 그럴수록 자신감이 낮아졌다. 미련은 있지만 감히 내가 붙잡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이런 생각 전부가 질척거리는 것처럼 느꼈다. 실제로 그런 것도 아닌데. 그저 그녀의 생각을 존중해주는 수밖에 선택지는 없었다.

붙잡고 늘어져도.

울고 불며 매달려도.

그래도 분명 카난은 헤어지잔 뜻을 굽히지 않을 테니까. 한 번 정한 게 있다면 관철해내는 아이니까. 그렇다면 차라리 깔끔하게 헤어지는 편이 나았다. 카난이라면 당분간은 연애를 하지 않을 거란 사실을 알았어도 다른 사람과 연애하는 카난을 생각하니 가슴에 대못을 꽂아 넣는 듯한 격통이 달렸다.

고개를 흔들었다.

쉽게 잊을 수 없다면 카난도 나를 쉽게 잊지 못한다고 생각하자. 나를 생각하는 마음에 아프고, 나를 잊지 못하는 마음에 눈물을 흘릴 거라고 생각하자. . 정했어요.

신기하게도 슬픔과 우울한 감정이 뒤섞였음에도 불구하고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여유가 생기자, 휴대폰을 돌아볼 틈이 생겼다.

반짝이면서 알람 신호를 보내는 휴대폰. 집어 들자 SNS로 동영상 하나가 와 있었다.

 

Happy birthday to you

Happy birthday to you

Happy birthday dear 다이아 쨩.

Happy birthday to you~!

다이아 쨩(언니)!! 생일 축하해!

 

치카가 촛불을 대신해서 끄거나.

그 모습을 쓴웃음을 지으며 요우와 리코가 바라보고.

하나마루는 몰래 케이크를 손가락으로 찍어 입속에 넣었다.

요시코는 여전히 타천사의 포즈를 하고 있었고.

나의 사랑스러운 여동생. 루비는 누구보다도 활기차게 웃고 있었다.

게다가 언제 왔는지 마리까지. 내가 올 줄 알았는데 없어서 뾰루퉁한 표정인 것 같다.

푸흐, 하고 웃음이 터졌다. 정말이지, 본인이 없는데도 이렇게 생일 파티를 해주는 건가요. 기쁘네요. 정말로 기뻤다.

. 핸드폰 액정 화면 위로 투명한 액체가 떨어져 흘러내렸다.

기쁠 텐데.

저기에 없는 단 한 사람이 자꾸만 눈에 밟혀서.

그 사람의 알람만이 없는 게 신경 쓰여서.

정말로 그 사람을 좋아했다는 사실을 다시금 되새기게 되어서.

그 날 새벽은 눈이 퉁퉁 붓고, 목이 아플 정도로 울게 되었다.

 

 

*

 

 

결심은 빨랐다.

현관문을 나서자 찬바람이 쌩하니 양 뺨을 스쳤다. 두른 머플러를 조금 더 위로 올리고 호흡을 내뱉자 머플러 사이로 하얀 입김이 흘러 공중에 맴돌았다. 일본과의 시차는 약 2시간 정도. 여긴 아직 해가 뜨기 전이지만 카난은 슬슬 나갈 시간일 테지.

도착하면 점심에 얼추 맞출 수 있겠네요. 역시 이대론 납득할 수 없으니까요. 카난도 나도 이대로는 안 된다. 멋대로 생각하고 멋대로 안에서 매듭을 짓는 나쁜 버릇이 아직 우리 둘 다 남아있었다. 문을 닫고 캐리어를 이끌었다.

카난이 있는 곳은 어딘지 알고 있었다. 교통수단에서 조금 헤맸지만 그래도 늦지 않게 도착한 듯했다. 멀리서도 햇빛을 반사해 푸른색으로 반짝이는 머리칼을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정말로 오랜만에 보게 되는 얼굴. 캐리어 바퀴 소리가 신경 쓰인 걸까. 카난도 금방 내 쪽을 향해 돌아보았다.

……다이아? 어떻게?”

눈가가 퉁퉁 부어 있었다. 목소리는 갈라져 도저히 예전에 스쿨 아이돌을 했었다고 보기 어려웠다. 무슨 얘기를 해야 할까. 먼저 어떤 얘기를 꺼내는 게 좋을까.

나는 캐리어를 두고 멍하니 있는 카난에게 다가섰다.

 

생일 축하, 카난에게선 아직 못 받았잖아요.”

카난의 가슴에 머리를 기대어 말하자, 금세 카난의 두 팔이 나를 꽈악 끌어안았다.

아파요, 카난.”

다이아다이아, 다이아……!”

내 머리에 얼굴을 묻는 카난. 뜨거운 눈물이 머리카락을 적셔갔다. 어쩐지 그 눈물은, 아래로 이어져 있어서. 내 눈가에 까지 닿은 건지 몰랐다.

보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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