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나리코] 일탈

 

으음. 속으로 신음을 삼키며 괜스레 앉아있는 자세를 바꾸었다. 사락, 옷가지 스치는 소리가 크게 들린다. 조금만 움직여도 의자가 삐걱대 무겁게 내려앉은 정적에 스크래치를 냈다. 하아. 몰래 한숨을 내쉬고 턱을 괴어 책상 너머를 보았다.

아무런 표정도 없이 책을 읽고 있는 소녀가 비쳤다. 버건디로 적셔놓은 듯한 아름다운 머리칼이 등허리에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얕게 흔들렸다. 그러다 책 속에서 재미있는 일이라도 벌어진 걸까. 책의 글귀를 좇아 움직이던 호박색 눈동자가 잠깐 멈추었다. 살짝 올라간 입꼬리. 상냥하게 휘어진 눈썹에 저도 몰래 무심코 숨을 삼켰다.

사쿠라우치 리코. 평소에는 귀여운 후배정도의 인식이었지만. 단 둘인 상황에서 자세히 보면 의식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미인이었다. 나도 모르게 몸의 신경이 곤두섰다. 처음 마리의 어머니를 뵈었을 때에도 이 정도로 긴장하진 않았었는데.

선배. 제 얼굴에 뭐 묻었나요?”

멍하니 리코의 얼굴을 바라보는 모습이 어느새 들켰는지 그녀는 책에서 시선을 떼 나와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

아하하, 아냐아냐. 리코는 역시나 미인이네, 하고 보고 있었지.”

놀리지 마세요, 정말.”

책 사이에 책갈피를 끼워두고 조용히 덮은 리코는 쓴웃음을 지었다.

죄송해요. 둘이 있는데 저만 책을 보고 있는 건 좀 그랬죠?”

딱히 나야 상관없는걸.”

마리 선배와 다이아 선배는 어쩐 일로.”

학생회와 이사장 일이라고 했어. 치카와 요우는?”

아아. 오늘은 두 사람 청소당번이어서. 1학년은 학급회의라고 했었죠?”

다들 아직 좀 더 걸릴 것 같네.”

리코와 둘이 있는 시간이 딱히 어색하다고 느껴지진 않았다. 적어도 리코가 그 말을 뱉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카난 선배. 단 둘이니까 조금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요.”

? 뭔데? 대답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지 괜찮아.”

리코는 망설이는 기색도, 부끄러워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고 평범하게. 마치 아침에 안부 인사를 건네는 듯이 내게 물었다.

카난 선배는 마리 선배와 어디까지 갔어요?”

어디까지. ……?”

어디까지라니. 어디까지가 뭘까. 어디까지의 어디라는 건 대체 어디를 말하는 걸까?

아직 일본 밖으로 나간 적은 없는데?”

아니아니, 커플 진도 얘기에요.”

역시 그 어디까지가 맞았어! 갑자기 왜?!

대답할 수 있잖아요. 대답해주세요.”

아니, , 대답은 할 수 있지만, 할 수 없다고 할까.”

패닉으로 당황해하자 리코는 의자에서 일어서 내 쪽으로 다가왔다. 공간도 넓은데, 굳이 내 옆의 의자를 꺼내어 앉더니 바짝 붙였다. 어깨가 닿자 체리 향기가 코를 간질였다.

카난 선배는 이런 얘기 되게 아무렇지 않을 것 같았는데. 의외로 쑥맥인가봐요?”

태연한 리코가 이상한 게 아닐까?!”

말해주세요.”

리코가 더욱 붙었다. 겉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던 가슴이 부드럽게 팔을 압박해왔다. 머리가 핑핑 돈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알겠어! 말해줄 테니까! , 했어.”

다 한 거군요.”

그제야 리코는 나에게서 떨어졌다. 여전히 어깨가 붙어있었지만 당장의 위기는 피한 모양이었다. 장난치곤 심하다. 마리와는 또 다른 매력에 몸이 반응하려 했다.

있잖아요, 선배. 저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

좋은 기회다. 이성의 끈을 붙잡고 저 화제에 달려들면 불상사가 일어나는 건 피할 수 있을 터. 속으로 심호흡을 한 뒤 평정을 가장해 물었다.

리코가? 누구려나, 그 사람. 이 선배에겐 말해줄 거야?”

글쎄요. 그건 비밀이지만.”

리코는 지금껏 중 가장 고혹적인 미소를 보이고는 귓가에 다가와 한숨을 내뱉듯 중얼거렸다.

혹시 모를 언젠가를 위해서. 키스 연습, 시켜주지 않을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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