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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라이브 선샤인

[카나마리] 나만이 알고 있는 너

나만이 알고 있는 너

 

으레 행사들이란 소란스럽기 마련이지만 오늘은 훨씬 특별했다. 탄신일. 행복해야 마땅한 날이다. 축복으로 가득 찬 이 날은 본의는 아니지만 축하받는 사람의 인덕에 따라 파티의 모양새가 바뀌기 마련이었다.

나는 마츠우라 카난이라는 인간의 그릇을 잘못 재고 있었다. 아니, 머리로는 알고 있어도 실제로 보기 전까진 보통 와 닿지 않는 법. 마츠우라 카난의 인덕에 호되게 당할 줄 상상도 못하고 있었다.

 

*

 

데이트 약속은 한 달 전쯤 미리 잡아놓았다. 카난과 함께 다이아의 생일을 축하하는 날 자연스레 다음 달 카난 생일은 둘이서 데이트 앤 파튀라도 할까?” 라는 말을 흘렸고 나와 카난이 사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다이아는 눈꼬리를 내리고 한숨을 내쉰 뒤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었다. 그럼 다 함께 하는 파티는 전날에라도 해야겠네요. 그렇게 말한 다이아는 아쿠아의 모두를 납득시킬만한 명분을 만들었고 약속대로 어제 축하 파티를 열어주었다.

덕분에 생긴 데이트 기회다. 노력해준 다이아를 위해서라도 힘내지 않으면. 새삼 기합을 넣은 후 전신거울 앞에서 옷을 대어 보았다. 이 옷을 입고 카난과 둘이서 거리를 걷는 모습을 상상한다. 너무 화려하려나. 그렇게 침대로 던져진 옷. 이미 이 과정을 걸친 다른 옷가지들이 침대를 어수선하게 수놓았다.

흘끗 시계를 보자 슬슬 나가지 않으면 약속 시간에는 맞추지 못한다. 차라리 일부러 조금 늦어서 기다렸어?” “아니, 나도 방금 왔어.” 라고 능글맞게 상황을 연출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역시 고개를 젓는다. 귀중한 데이트 시간을 그런 걸로 까먹을 순 없는 걸. 게다가 오늘은 특별한 날이고. 약속 장소에서 만날 카난이 어떤 옷을 입을지 대충 예상한 나는 침대에 널브러진 옷가지들을 헤쳐 하나의 옷을 골랐다.

후후, 속옷이 승부용이라면 그걸로 올 라잇인 거야.”

위는 최대한 수수하게. 밤일을 할 때 카난이 놀랄 수 있도록. 입이 떡 벌어져 여러 가지 태클을 걸면서도 몸은 솔직하게 반응할 카난을 생각하면 절로 웃음이 나왔다. 서둘러 백을 챙기고 방에서 뛰쳐나왔다. 호텔 앞에 세워진 차를 슬쩍 손으로 쓰다듬은 뒤 다시 달렸다. 오늘은 패스. 멀리 나가는 게 아닌 마을 데이트다. 차를 타고 다니면 운치가 없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더 오래, 더 가까이서 있고 싶었다.

우치우라에서 같이 출발하지 않고 일부러 누마즈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기에 버스를 타고 조금 이동해야 했다. 버스에 앉아 카난에게 가는 동안 두근거림이 멈추지 않았다. 자꾸만 너의 얼굴이 생각나 나도 모르게 웃음을 짓곤 했다.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정류장에서 내리고 거리가 조금 떨어진 약속장소에 익숙한 모습이 보였다. 하나로 묶어 길게 늘어뜨린 뒷머리는 어디에 있어도 눈에 띠었다. 비단 머리 스타일뿐만이 그녀의 존재감을 나타내는 건 아니었다. 검붉은 색의 터틀넥 위에 검은색의 재킷. 다리 곡선이 드러나는 스키니 진까지, 대체 안 멋진 곳이 하나도 안 보였다. 드러난 발목의 복숭아뼈조차 섹시했다.

무심한 듯 표정 없이 서 있는 그녀를 남녀 불문하고 누구나가 한 번은 눈길을 돌릴 정도로 반짝이고 있었다.

카난~!”

손을 흔들며 뛰어간다. 내 목소리에 반응하듯 네가 돌아보았다. 표정이 없던 얼굴은 금세 화색이 돌아 미소를 꽃피웠다. 나를 보고서 웃어주는 네 모습에 기뻐진 발걸음이 빨라졌다. 있는 힘껏 안기자 카난은 쓴웃음을 지으면서 나를 받아 올려 빙글 제자리에서 돌고 놓아주었다.

마리가 달려오는 거, 다른 사람들이 막 쳐다보더라.”

헤에, 질투 파이어~ 인 걸까나?”

딱히 그런 건 아니지만.”

그러는 카난도 주위 사람들이 계속 쳐다보고 있었는데.”

, 진짜? 몰랐어.”

후후, 그럼 어때.”

나는 카난의 팔을 빼앗듯 끌어와 팔짱을 끼었다. 카난은 당황하면서도 저항하지 않고 몸을 기울여 나에게 맞춰주었다.

이미 마리 건데.”

. 그거야 그러네.”

사소한 일로 질투하는 모습이 귀여웠다. 금방 납득한 건 아쉽지만 카난의 미간 주름을 걱정한다면 이게 잘 된 일이었다.

그럼 Let's date!”

그렇게 발걸음을 뗀 순간.

, 저기!”

떨리는 목소리가 우리 두 사람을 불러 세웠다. 뒤돌아보자 아직 중학생 쯤 되어 보이는 여자 아이들이 긴장한 기색으로 품에 무언가를 소중히 안고 있었다. Aqours를 점점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고부터 이런 모습들이 꽤 늘어났다. 나와 카난은 서로를 마주보다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사인일까나?”

, , ! Aqours의 오하라 마리 씨, 마츠우라 카난 씨 맞죠!?”

“Yes! 후후, 누마즈에 이런 금색 머리를 한 사람은 마리 이외엔 또 없다구~?”

. 마리만큼 예쁜 사람도 많이 없고 말이야.”

푸흡.”

은근슬쩍 이상한 말을 끼워 넣자 내가 아닌 앞의 여자 아이들이 꺄아 소리를 질렀다. 사인을 받아들고 난 뒤엔 90도로 인사한 뒤 폴짝 뛰어 금방 시야에서 사라졌다.

~. 마지막 그거 뭐야? 한 번만 더 해주면 안 돼?”

능글맞게 웃으며 들이대자 카난은 볼을 발갛게 물들이고 고개를 홱 돌렸다.

얼른 가자. 영화 늦겠다.”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이기 싫었는지 카난은 발걸음을 빨리해 나보다 앞서 걸었다.

아이 참~ 같이 가!”

첫 번째 코스는 영화관. 어째선지 매표소의 언니와 카난이 아는 사이였다. 게다가 매표소 언니는 카난이 무서운 걸 싫어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 우리가 영화를 고르기도 전에 장난을 쳤다.

어라, 카난 쨩.”

안녕하세요.”

귀신이 사는 절 2장 맞지?”

. ? 아뇨! 아니거든요!”

푸흣, 농담이야, 농담.”

여유롭게 장난을 치는 모습이 어른의 여성이었다. 완전히 카난을 꼬시고 있다.

다음에 언니랑 같이 보면 안 무서울 것 같은데.”

됐어요.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안 볼 거예요. 곰돌이 마법사 욧짱의 여행 2장 주세요.”

쿡쿡, 네에. 아참. 카난 쨩, 오늘 생일이지? 이거 받아.”

그렇게 말하며 매표소 언니는 카난의 손바닥에 무언가를 올려놓았다. 보아하니 하트 모양으로 포장된 작은 초콜릿 같았다.

곧 발렌타인 데이이기도 하니까, 후후. 그럼 재미있게 보렴.”

무으. 어쩐지 진 기분이라 표를 받고 카난의 팔짱을 끼었다. 카난은 순간적으로 엉겨 붙는 나의 머리카락을 상냥하게 쓰다듬었다. 엘리베이터로 올라가기 전 살짝 뒤돌아보자 매표소 언니가 이쪽을 쳐다보며 미소 지은 채 살살 손을 흔들어주었다. 으읏, 왠지 진 기분이야! 그렇지만 카난의 인간관계까지 머리를 들이밀 순 없다. 왠지 속박하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서, 카난이 떠나버릴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저 소심하게.

카난.”

투정부리듯 묻는 게 다였다.

매표소 직원 분이랑 아는 사이?”

, 뭐어. 이웃이려나? 예전에 우치우라에 있었던 아는 언니. 지금은 누마즈에서 살고 있어.”

흐음, 그렇구나.”

몰래 볼을 부풀려보지만 어두운 영화관 안에서 눈치 없는 카난이 눈치채주길 바라는 건 역시 무리였다. 커플석에 나란히 앉아 손을 꼬옥 잡았다. 슬쩍 고개를 돌려 바라보자, 카난은 스크린에 비쳐진 화면에 눈을 빛내고 있었다. 후후, 그렇게도 영화가 기대가 될까. 나는 슬쩍 카난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

 

*

 

영화가 끝나고 한참 카난의 이야기를 들었다. 즐겁게 얘기하는 모습에 나도 덩달아 웃음을 짓고 맞장구를 쳤다. 어느 영화의 장면을 콕 집어서 감상회를 펼친다든가, 음악은 어떠했다든가 시간을 모르고 한참을 얘기하다 카난의 배꼽시계 알람에 점심때가 되었다는 걸 눈치 챘다.

아차. 점심 먹으러 갈까, 마리?”

“Of course~! 카난은 뭐가 좋아?”

, 역시 밥 종류일까나.”

“OK~!”

그렇게 향한 밥집에서 나는 다시 한 번 더 카난의 발 너비를 실감하게 되었다. 그곳의 직원과 사장님까지 어째선지 모두가 카난을 알고 있었다. 아픈 파파를 대신해 다이빙 숍을 운영하다보니 절로 발이 넓어지는 건 당연했다. 카난 파파의 인맥이 그대로 카난의 인맥이 된 경우였다.

아픈 아버지를 위해 두 발 벗고 노력하는 딸이라면 적어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도와주고도 싶을 것이다. 그렇게 스스로 카난의 다이빙 숍에 여러 가지 도움이 될 만한 물건이나 음식을 직접 주거나, 아니면 딸아들을 보낸 적도 있겠지. 발이 절로 넓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다가 이런 성격의 카난이다. 아버지들과는 죽도 잘 맞았을 테고 또래 아이들과도 스스럼없이 친해졌음이 분명하다.

그렇게 되어 여기서도 카난을 위한 생일파티가 즉석에서 이루어졌다. 아버지와도 친한 이웃들인데다 좋은 마음으로 축하해주는 걸 거절할 수도 없어 생일 파티를 그대로 해버리고 말았다. 카난도 곤란해 했지만 전혀 싫은 낯빛은 아니었다.

이런 일이 여기서 그친 게 아니었다. 카페나 쇼핑몰, 서점, 상점가. 어디든 카난의 생일을 축하해주는 사람으로 넘쳤다. 결국 해가 질 때까지 단 둘이서만 하는 데이트는 1시간도 못 했다. 아침 일찍 만났는데.

일부러 어제로 일정을 바꿔 축하해준 아이들에게 면목이 서지 않았다. 조금은 카난을 탓하기도 했다. 전부 거절하고 온전히 데이트를 해줬으면. 나만 바라봐줬으면. 내가 모르는 곳에서 이어진 인연들을 볼 때마다 내가 모르는 카난을 볼 때마다 점점 거리가 멀어졌다. 문득 무서운 마음이 들었다. 나는 카난만의 것이라 생각했지만, 카난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 나는 카난에게 어떤 존재로 그 마음에 자리 잡았을까. 카난에게 난 특별한 사람일지 묻는 게 두려웠다.

행복했어야 할 터인 데이트는 결국 싱숭생숭한 기분인 채 막바지에 다다랐다. 완전 제멋대로에 이기적인 질투가 유치하게만 느껴졌다. 이 상태로는 무언가 할 용기가 없어 나는 카난과 거리를 벌리고 빙글 뒤돌아 마주보았다.

후후, 카난. 오늘 즐거웠어! Thank you!”

있는 힘껏 웃어 보였다. 이것조차 유지하는 게 힘들어 나는 얼굴을 숨기듯 얼른 앞으로 돌았다.

다음엔 언제 데이트할까나~.”

마리.”

?”

순간. 강한 압박감과 함께 팔이 끌렸다. 카난이 손을 뻗어 나의 팔을 가로채듯 당겨 품으로 끌고왔다.

오늘, 정말 미안.”

“W, What?”

능청스럽게 시치미를 떼보지만, 더없이 진지한 표정의 카난을 보자니 결국 입에서 한숨이 샜다.

“It's OK. 괜찮아, 카난. 카난의 잘못이 아닌걸. 후후, 마뤼의 연인은 이런 사람이니까. 그치만.”

한 번 입을 열자 말이 그치지 않았다. 카난에게 유치한 질투를 한다고 한 소리 들을 지도 모르지만.

오늘은 마리가 모르는 카난이 잔뜩 있어서 무서웠어. 본 적 없는 표정들과 본 적 없는 말투들. 거리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아서. 그렇지만 붙잡아서 마리의 곁에 두는 건 이기심이란 거 알고 있으니까 결국엔 손을 뻗지 못했어.”

헤헤, 바보 같지? 그렇게 중얼거리자 카난이 겨우 인상을 풀고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쓴웃음을 짓고선 말했다.

그래도 다행이다. 예전처럼 서로 말 못한 채 끙끙 앓는 사태는 안 돼서.”

. 그건 서로 잘못했으니까.”

알고 있어. 그치만 이번 건은 완전히 내 잘못. 미안해. 아버지 사업에 일조해주신 분들도 있고, 한 다리 건너면 모두 알고 지내는 이웃이니까 거절할 엄두도 못 냈어. 이런 건 확실히 했어야 하는데.”

“No. 우리 두 사람이 데이트인 줄 몰랐으니까. 순수하게 좋은 마음으로 축하해주신 걸. 그 축하는 확실히 받아둬야지. 그치?”

으음. 있지, 마리.”

?”

살짝 눈을 피한 카난은 다른 쪽을 바라보고는 뺨을 긁적였다. 눈동자에 비친 카난의 귀가 발갛게 물들어있었다.

그런 모두가 아는 표정이나 말투 말고. 이 세상에서 단 한 사람. 특별한 사람만이 볼 수 있는 표정도 있는데. , .”

꼼지락거리는 손가락이 나의 손가락 끝부분에 닿는다. 아주 미약하지만. 카난의 온도가 손가락을 타고 전해졌다.

……보러, 가지 않을래?”

카난이 소심하게 손가락을 붙잡았다.

……갈래!”

유치한 질투였다. 이런 생각을 한 자신이 바보 같아져서 그런 부끄러움을 숨기려는 듯, 나는 카난의 목을 감싼 윗옷에 두 손가락을 넣어 내게 당겼다. 입술이 부딪치듯 맞닿았지만, 이런 과격한 입맞춤도 가끔은 나쁘지 않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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