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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라이브 선샤인

#마왕소환au _ 요시코 시리어스

#마왕소환au 요시코 시리어스

 

#1

 

평범한 아침. 평범한 등굣길. 친구들과 인사를 한다. 그러다가 하이파이브를 하기라도 하면 그 친구는 웃는 얼굴인 상태로 전신이 터져나간다. 내 손에 닿은 것들이 전부. 친구도, 학교도, 엄마와 아빠까지 다. 결국 나 혼자 남아 무릎을 꿇었을 때 한 그림자가 말을 걸어왔다.

 

네가 원했던 비일상이야. 원한 건 넌데 왜 울어? 왜 슬퍼해? , 좀 더 즐겨보라구. 힘들다면 전부 나한테 맡기고서ㅡ

 

검은 형태에, 붉은 색칠이 되어있는 입만이 찢어질듯 미소를 지으며 내게 손을 뻗으면 나는 그제야 눈을 떴다. 마왕이 되고나서 최근, 줄곧 이런 꿈을 꾸고 있었다. 아니, 꿈뿐만이 아니다. 두통이라든가, 몸이 맘대로 움직이지 않는 별 이상한 증세가 생기기 시작했다. 으음, 그건 건강상의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점점 상태는 좋아지지 않았다.

다이아 씨, 카난 씨에 마리 씨까지.”

일어나셨나요.”

. 으음, 악몽을 꾸긴 했지만요. 그런데 세 분은 왜 마왕 폼인 건데요?”

? 이건그겁니다.”

요시코도 참~. 매번 동물폼으로 있으면 걸어 다니는 법을 잊어버릴지 모르잖아~.”

당황하는 다이아 씨. 낌새가 이상했지만 그것보다도 치근덕대는 마리 씨가 짜증났다. 아니. 꼭 마리 씨 때문만이 아니다. 손으로 짚은 침대가 젖어있었다. 옷도 식은땀에 달라붙어 끈적거린다. 마리 씨에게 화낼 일이 아니지. 단순한 화풀이였다. 나는 조용히 반성하고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저는 학교 갈 준비 할 테니 얌전히 계세요.”

아직 시간 여유가 있으니 샤워를 하고, 간단히 아침을 챙겨먹고 나가자. 바깥바람을 쐬면 조금 괜찮아질 테지.

 

생각보다 늦었네요.”

뭐어. 요시코 성격이 워낙 착하니까 말이야.”

흐음~ 진행상황으로 봐선 soon 이겠군요~.”

그렇겠네요. 저는 루비에게 연락하고 오겠습니다. 두 분도 준비해주세요.”




#2

 

, 요시코~.”

좋은 아침, 요시코!”

등교를 할 때 반갑게 맞아주는 친구들. 타천사인 나를 긍정해주는 친구들이 생겼다. 이제는 타천사가 아니라 마왕이지만. 어쨌든 행복한 매일이라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다. 다이아 씨를 소환하며 친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던 때와는 달라졌다. 몇 번이고 비일상을 겪어왔기에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은 탓일까. 주변에 겨우 눈을 돌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까 요하네.”

 

전부, 부숴버려.

 

크윽!”

칠판을 손톱으로 긁어대는 듯한 소름 돋는 노이즈로 머릿속이 어지럽다. 죄어오는 두통에 입술을 깨물며 관자놀이를 눌렀다.

요 최근 명백히 꿈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비일상의 무언가가 다가오는 게 무서웠다. 보통 꿈은 잘 꾸지 않는다. 꾸더라도 아침에 일어나면 형태가 흐릿해 어떤 꿈을 꾸었는지 잊어버리는 편인데 최근엔 그렇지 않았다. 발목에 선명하게 남은 꿈의 자락은 현실에서까지 나를 붙잡았다.

요시코? 괜찮아? 머리 아픈 거야?”

순간 어깨에 올라온 손.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도중 갑작스레 올리면!

……!!”

무의식적으로 쳐내려는 행동을 도중에 멈추었다. 머릿속에 플래시백 된 하나의 장면. 내가 손을 대었을 뿐인데 모든 게 부서져버리는 현실. 그 속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나 자신.

확실히 비일상을 원했다. 아니, 그렇지 않으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무엇을 하든 불행한 내 인생이 그냥 운이 안 좋아서 그런 거였습니다, 라는 결말이면 억울하잖아. 적어도 내게 납득할만한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 나는 그것만으로 굴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으니까.

그저, 도피할 변명거리가 필요했을 뿐인데.

 

거짓말. 너만 불행했던 게 억울한 거잖아. 평범하게, 행복하게 살아가는 아이들이 부러웠지? 질투로 불태워 죽이고 싶을 만큼, 전부 그 손으로 없애고 싶을 만큼 괴로웠잖아.

 

아니야. 그렇지 않아!

고개를 저어 머리를 헤집는 소리를 부정한다. 바라고 동경해왔던 건 특별한 힘이 아니다. 타천사가 아니다. 인간보다 강해져 세상을 지배한다든가, 그 힘을 숨긴 채 살아간다든가. 가끔은 괴물에 맞서 일상을 지킨다든가. 그런 입장에 선 지금 솔직하게 말할 수 있다. 원해왔던 건 모두와 같은 평범한 생활. 비 같은 걸 몰고 다니거나, 소풍 전 날엔 꼭 아프거나. 도시락을 잊어버린다든지. 사소한 트러블엔 어떤 형태로든 내가 관여되어 있는 불행의 결정체 같은 삶이 아닌 자그마한 행복이 언제나 넘쳐나는 생활.

모순적이지만 지금 이 순간이라고 해도 좋았다.

, 하핫. 아무것도 아니야. 정말로 괜찮으니.”

눈을 마주치고 최대한 웃어 보였다.

, 요시코. 너 눈이.”

……!? , 미안. 나 먼저 들어갈게!”

젠장. 젠장, 젠장! 이건 내 문제잖아! 다치는 건 나 하나면 충분하잖아. 뭐냐고. 대체 뭐냐고!

재빨리 뛰어 화장실까지 달려왔다. 숨은 전혀 차지 않았다. 이런 사소한 능력에도 짜증이 치밀었다. 거울에 손을 짚고 고개를 들자 비친 얼굴. 시커멓게 물든 눈, 그 안에 뱀처럼 빛나는 새빨간 눈동자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마왕 폼, 변한 적이 없는데 어째서!

요시코 쨩.”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시선을 향하자 잠깐 꽃향기가 코를 간질였다. 얌전히 어깨에 놓여있는 브라운색의 머리칼. 전체적으로 포근하고 온화해 보이는 인상을 지닌 소녀는 걱정스런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살짝 손을 올려 변한 눈동자를 가린다.

즈라마루. 좋은 아침.”

좋은 아침, 이 아니어유. 교문에서 여기까지 뛰어가는 걸 봤는데, 무슨 일 있는 거예유?”

딱히 그런 건.”

지금 여기서 즈라마루에게 거짓말하는 것보다 말해서 도움을 요청하는 편이 나을까. 즈라마루도 나와 같은 마왕. 아니, 지금은 나보다 훨씬 강하다. 지금은 인간폼을 하고 있지만, 마왕 폼을 했을 때의 커다란 뿔이 그 증거. 나 같은 이름만 마왕인 인간은 전혀 도달할 수가 없다.

……있잖아, 즈라마루.”

말해보셔유.”

너는 마왕이 되고 나서 환청 같은 거 들린 적 있어?”

환청이유?”

전부 다 부숴버리라고. 전부 없애버리라고. 내가 바라왔던 게 아니냐며 마왕의 힘을 누군가가 쓰게 만들려고 해. 머리를 아프게 하고, 귓가에 소름끼치는 소리를 흘리고, 내 몸까지 전부빼앗으려고 해……. 너도, 이랬어? 즈라마루, 대답해줘. 너도 이랬던 적 있었어?”

그건.”

즈라마루가 움찍하며 뒷걸음질을 쳤다. 명백히 당황한 안색. 눈동자가 흔들렸다. 아아. 너는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구나. 이래선 즈라마루도 도움이.

 

그래. 세상은 불공평해. 왜 너한테만 이런 일이 일어나지? 네가 약한 탓이야. 부러워해라. 질투해라. 너보다 강한 저 아이도, 너보다 행복한 이 세상 모든 사람들도. 전부 질투해. 질투해 죽여라. 네 힘이 더 강해질 수 있게, 질투해.

 

요시코!”

죽인다, 전부…….”

켈록, 커윽. 요시코!”

맞아. 왜 불공평한 일은 전부 나한테 일어나야 해? 왜 모든 불행을 내가 짊어져야 해? 나도 웃을 줄 알아. 나도 행복할 줄 알아. 나라고 타천사가 되고 싶은 줄 알아? 미워. 미워. 미워서 견딜 수가 없어. 너희를 미워해서 얻은 이 힘조차 어중간이야. 먼저 시작한 건 나인데 즈라마루에게 선수를 뺏겼고. 기껏 마왕이 되나 했더니 뿔은 하급마족이나 마찬가지고. 뭐 하나 제대로 되는 게 없어. 나도, 나도 기왕 이렇게 되는 거라면 강해지고 싶었는데!

요시코 쨩!!!!”

복부에 충격이 느껴지면서 동시에 몸이 붕 떴다.

.”

화장실의 벽까지 단숨에 날아가 처박혔다. 즈라마루 나름 힘을 조절한 덕에 화장실 벽은 무사했다. 그녀의 배에 난 거대한 입에서 혀가 날름거렸다. 저게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나를 밀친 거겠지. 즈라마루의 하얀 목덜미에 붉은 손자국이 선명하게 새겨져있다. 저 혀가 밀치지 않았다면.

아프다. 얻어맞은 복부도 아프지만. 화상을 입을 정도로 뜨겁게 남은 손바닥 안 즈라마루의 온기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아팠다.

미안. 미안……. 미안. 미안해.”

점점 몸이 잠식되어 간다. 이번에는 강하게 의식을 뺏겼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다른 악마의 수작? 아니면 내 착각이나 망상?

무섭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른다는 게? 반대다. 짐작 가는 게 있다는 사실이 무서웠다. 누군가의 수작이 아닌, 나 자신이 고장나버렸다는 결말. 사실 마왕이 되고나서 단 한 번도 이 힘을 제대로 써본 적이 없었다. 쓰는 게 저어됐다. 이런 내 고집에 쌓이고 쌓인 마왕의 힘이 어쩌면 폭주를─…!

괜찮아유.”

시끄러운 머릿속을 조용히 쓰다듬는 차분한 목소리. 양 어깨에 손을 올려 나를 진정시키고는 상냥하게 웃었다.

지는 괜찮아유. 봐유, 목도 전부 나았슈.”

그녀의 말대로 붉게 부어있던 목은 언제 그랬냐는 듯 원래의 뽀얀 피부로 돌아가 있었다. 다행이다. 다행이지만, 상처가 흉터로 남지 않았다 해서 상처가 없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이상한 생각은 하지 말아유. 요시코 쨩이 일부러 그런 게 아니란 건 알고 있슈.”

그렇게 말하면서도 떨고 있는 바보마루를 보면 알 수 있다. 하지만 분명, 이 아이는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조차 꿰뚫어봤기에 이런 상냥한 말을 입에 담을 수 있는 거겠지. 이런 아이가 친구여서 정말로 다행이다. 이런 아이가 친구인 일상이 싫을 리가 없었다.

. 고마워, 즈라마루.”

이 순간을 소중히 하고 싶다. 가까스로 손에 넣은, 자그마한 행복이 넘치는 이 일상을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고 싶다. 적어도 내 손으로. 혹은 나와 관련된 일로 부수고 싶지 않았다.

정신 차리자. 분명 내 마음이 약해서 이런 게 분명해.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다시 귓가에 노이즈가 들렸다.

 

스스로 기만하지 마라. 욕심이라는 걸 알아라. 넌 이미 그쪽 사람이 아니야. 네가 원했던 비일상은 이쪽이잖아. 검은 날개를 펼치고, 불운했던 생을 되돌아보며 너를 괴롭게 했던 어리석은 인간들과 천계에 심판의 철퇴를 내리자 마음먹지 않았더냐. 생각해라. 만약 거기 있는 게 탐식이 아닌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네 힘으로 일상을 부수고 싶지 않다, 라고? 이렇게 된 이상 이미 무리다.

 

아냐. 내가 힘내면 돼. 참으면 돼.

 

참아? 이게 네가 동경해왔던 일상이냐? 동경해온 비일상을 착각한 거겠지. 힘이 있는데 참을 필요가 어디 있지? 널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모든 인간과 세상을 질투해라. 네가 어떤 세상에서 살아왔는지 그 힘으로 직접 알려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아니야아니야나이냐아니야아니야아니야아니야!!!! 아무리 그래도 이건 이상하다. 선명하게 귓가에 들려오는 목소리는 확실히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전신을 곤두세우게 만드는 기분 나쁜 이 기운이 환상일 리가 없었다.

 

네가 못하겠다면.

 

. 비유를 하자면 거대한 뱀에게 감겨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양 다리와 양 팔. 몸과 머리가 부자연스러운 형태로 멈추었다. 전력을 다해 움직이려 들자 거기에 반응해 더욱 조여들었다. 우득, 하고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프다. 아프다. 아파! 그렇지만…….

안 돼. , !”

요시코 쨩……!?”

이렇게라도 움직이지 않으면 정체 모르는 목소리에 당장이라도 몸을 빼앗길 판이었다. 상처 따윈 즉사에 이르는 정도가 아닌 이상 금방 낫는다. 몸에 변화가 일어나는 게 느껴졌다. 머리에는 뿔. 등에서 날개가 조금씩,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오려들었다.

여기선, , . 학교의 모두를, 피난시켜줘, 즈라마루.”

하지만! 그럼 요시코 쨩이!”

조금만 더 버텨볼 테니까. 어서!”

가슴께에 주먹을 쥐고 떨고 있는 즈라마루. 눈물이 맺힌 눈동자가 흔들렸다. 망설임도 잠시. 즈라마루가 뒤를 돌았다. . 그걸로 됐다. 이대로 학교의 모두가 나갈 때까지 버티자. 팔은 몇 번이든 부러져도 상관없다. 다리가 쥐어 짜여도 문제없다. 몸이 으스러진대도 정신만 있다면 뺏기지 않고 버텨 줄 테니까. 나 혼자만 상처 입는 걸로 충분하니까…─ 그러니까 부디.

내 힘에 아무도 상처입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다이아 씨...”

나도 모르게 입 밖에 낸 이름. 의외도 아닌가. 이러니저러니 해도 다이아 씨에겐 많은 신세를 졌다. 지금 죽지 않고 이렇게 일상을 보낼 수 있는 이유는 전부 다이아 씨가 있어주었기 때문이다. 그런 다이아 씨라도. 지금 이 상황에 영웅처럼 등장하기엔 무리가 있을 텐데 왜 다이아 씨를 불러버린 걸까.

 

아무도에는 물론 당신도 포함되어 있는 거겠죠? 요시코 씨.”

하지만. 예외는 언제나 있는 법이었다.

기다렸지? 요시코.”

“Not late~!”

쿡쿡, 역시 내가 점찍은 영혼답네. 흘러나오는 영혼의 파장이 엄청난걸?”

하암─…. 올 생각 없었는데.”

다이아 씨는 물론이고. 카난 씨에 마리 씨. 요우 씨와 루비까지. 배경이 화장실만 아니었다면 꽤 멋있는 한 장면이 되었을 텐데. 상황에 맞지 않게 문득 그런 생각이 스치면서 의식이 꺼졌다.



#3

 

……데자뷰?

일어나셨나요.”

다이아 씨의 목소리. 눈을 뜨자마자 가장 먼저 세계가 걱정되었다. 천계나 인간계에 당장 싸움을 걸러 가는 건가? 무심코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쟁쟁한 멤버들이 모여 있었다.

내가 소환해낸 오만의 마왕 다이아 씨. 같이 딸려온 분노의 마왕 카난 씨와 음욕의 마왕 마리 씨. 어릴 적부터 알고 있던 친구, 그리고 지금은 말려들게 만든 탓에 탐식의 마왕으로서 자리하게 된 즈라마루. 여기까지는 이해되었다. 내가 의아해 한 건 나머지 두 사람. 현재 마계를 다스리고 통치해야 할 대마왕, 나태 쿠로사와 루비. 앞으로 3년간은 스케줄에 빈틈이 없는 마계 최고로 머리가 좋은 해결사이자 실력으로도 탐욕의 마왕으로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는 와타나베 요우가 어째서 이 자리에 있냐는 소리다.

아직 반푼이지만 이런 나까지 포함하면 마계를 좌지우지하는 최강 일곱이 한 자리에 모여 있다. 단순히 우연으로 짚고 넘어갈만한 사태는 절대 아니었다. 즈라마루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이 절대 내 몸을 걱정해서 모일만한 멤버가 아니란 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최소한 별 거 있다는 말일 텐데 표정은 평소와 다름없었다.

, 아하하. 이제 괜찮아요. 저 하나 때문에 이렇게 모이지 않으셔도 되는데. 폭주는 끝났.”

다고 생각하시나요?”

말을 끊고 들어오는 다이아 씨. 단호하게 내려다보는 고압적인 눈빛은 확신에 차 있었다. 이 사람, 나한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부 알고 있다?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 다이아 씨에게 손을 뻗.

!”

보이지 않는 장벽이 나와 다이아 씨의 사이를 가로막아 전혀 손이 닿질 않았다.

젠장! 뭐야. 다이아 씨, 전부 알고 있던 거예요? 나한텐 한 마디 말도 안 했으면서!?”

장벽을 주먹으로 내려쳤다. 그럴 때마다 퉁, 퉁하는 진동만이 퍼지고 깨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정말제가 얼마나 무서웠는지 알아요? 혼자 얼마나 괴로웠는지, 아냐구요.”

참을 수 없는 배신감에 눈물이 고였다. 매일 눌리는 가위와 살인충동을 불러일으키는 환청. 머릿속을 헤집는 두통. 가끔은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을 때도 있었다. 다이아 씨는 알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가위눌린 날엔 언제나 머리맡에 서 있었던가. 마왕 폼으로 있던 건 내가 폭주하기 시작하면 곧바로 제압하기 위해서. 이렇게 생각하면 앞뒤가 맞아떨어진다.

. 요시코 씨의 말대로 전부 알고 있었어요. 당신을 각성시키기 위해선 말하지 않는 편이 나았어요. 그래선 우리의 계약이 성립되지 않잖아요?”

그런 이기적인!”

이기적? 아냐. 다이아 씨와의 계약은 처음부터 마왕이 되는 거였어. 다이아 씨에게 잘못은. 하지만 말을 해줬어도 내가 조치를 취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잖아. 이기적인 거지? 아냐. 맞아. ……모르겠어. 모르겠어!!

…….”

과거에도 인간이 마족이 된 적이 있지요. 방법은 간단해요. 인간과 마족을 한 명씩 준비합니다. 준비한 마족을 죽이고 마력을 인간에게 옮겨 담습니다. 딱히 인간이 부서진다거나 그러진 않아요. 당장은.”

마지막 단어를 강조하며 다이아 씨가 나를 내려다보았다. 당장은. 즉 조금씩 부서져간다는 이야기다. 어떤 식으로인지는 말 안 해도 안다.

당시 준비한 건 하급 마족이었음에도 금방 정신이 부서져 결국 의식 없이 주변의 모든 걸 파괴하는 괴물이 되었어요. 정신을 좀먹는 건 마력이 이끌어낸 인간의 내면. 평범한 감정뿐 아니라 좀처럼 느낄 일 없는 부의 감정입니다.”

인간이 가진 욕망. 일곱 가지 죄악. 질투. 분노. 음욕. 탐욕. 탐식. 오만. 나태. 모두가 가지고 있지만 애써 부정하고, 외면하면서 그러려고 하지 않는 감정들. 아무리 마왕이 되었다 해도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물며 마왕급의 마력을 흘려넣은 당신이 이렇게 되는 건 예정된 일인 겁니다. 괴로웠겠죠. 이제 그만 하고 싶다 생각했겠죠. 영혼을 포기하고 괴물이 되어도 괜찮습니다. 저희가 있는 한 당신의 손으로 당신의 소중한 걸 파괴하게 두진 않아요. 최소한의 자비라 해두죠. 죽을 때도 의식이 없으니 아프진 않을 거구요. 그렇지만 알아두세요. 이미 당신의 일상은 크게 기울었어요. 다신 되돌아갈 수 없습니다. 당신의 가족과 친구는 늙어 죽고, 소중했던 일상은 요시코 씨의 기억 속에서 빛이 바래가겠죠.”

다이아 씨가 한 차례 호흡을 한 뒤 말을 이었다.

자신을 포기하고 죽을지. 전부 내려놓고 나아갈지. 선택하는 건 당신입니다.”

힘들었다. 무서웠다. 내가 스스로를 잃으면 전부 부숴버릴 앞으로의 일상이 두려웠다. 이제 걱정은 없다. 전부 다이아 씨가 해결해주겠다잖아. 힘든 일을 겪지 않아도 돼. 죽는 것도 안 아프대. 걱정거리 없이 눈을 감으면 돼. 그럼 전부 끝낼 수 있다.

내가 살아간다면 가족과 친구와 고향. 소중히 했던 모든 걸 뒤로한 채 떠나간다. 걱정거리도 많겠지. 또 힘든 일이 생길지도 모르고, 두려운 일이 생길지도 몰라. 엄마, 아빠가 늙어 죽을 때 눈물이 안 나오게 되는 상황이 오면 스스로를 자책할 지도 모르고, 자책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인간에서 멀어지는 게 무섭다. 그렇지만 내 소중한 것들이 풍화되어가는 과정은 지켜볼 수 있겠지.

어떻게 해야 해요? 각성이란 거.”

……. 결심이 섰나 보네요.”

막상 죽으려고 하니까 내가 살아온 삶이 전부 불행투성이였던 건 아니더라구요. 자주 넘어지고 다쳐도 언제나 치료해주며 괜찮다는 엄마가 있었고. 공부는 힘들었지만, 용기를 준 아빠가 있었고. 왕따도 당했지만 결국엔 날 알아주는 친구와도 만났고. 그 사람들보다 나중에 죽어서, 행복한 모습을 지켜보고 싶어요.”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보면 그 심연 또한 나를 들여다본다. 인간이 한 말 치곤 정확하더군요. 자신을 부정하지 마세요. 더 관여하면 지장이 있을 수 있으니 제가 할 말은 거기까지입니다.”

하아? 대체 무슨 말을.”

눈을 감으세요. 자신 안에 호수가 있다 생각하고, 그 호수를 잘 보세요.”

상상의 힘에 맡기는 거냐고. 그런 생각을 하면서 다이아 씨가 말한 대로 하자 깜깜한 세계에 덩그러니 호수가 나타났다. 이걸 보는 상상을 하면 되는 건가? 파문 하나 없는 잔잔한 호수에 내가 비칠 뿐이잖?

 

의식을 시작하죠. 제가 먼저 갑니다. 카난. 마리. 루비. 요우 씨와 하나마루 씨는 준비해주세요.”



#4


 

호수에 비친 내 얼굴이 일그러지는가 싶더니 갑작스레 손을 뻗어와 나를 호수 속에 데리고 들어갔다.

눈을 뜨고 처음으로 보인 풍경은 낯익은 장소였다. 한 눈에 내려다 본 거리는 평소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우리 집 옥상. 고개를 올려다보자 별빛이 눈동자에 쏟아져 들어왔다. 한창을 생각에 잠겨있자 밤길을 가르고 누군가가 걸어왔다.

또각. 또각.

굽 높은 구두소리. 시선을 향하자 눈이 마주쳤다. 머리에 달고 있는 커다란 뿔과 경단. 어둠을 품고 있는 눈동자에 안광이 붉게 빛난다. 목에 걸친 까마귀 깃털 목도리가 바람에 흔들렸다. 마치 살결과 하나인 듯한 검은 옷감은 어깨와 가슴골 부분이 과감하게 파여 있었다. 배꼽 아랫부분까지 아슬아슬하게 파인 옷은 그 밑으로 웨딩드레스의 치마와 같이 풍성한 모양새를 띠었다. 회전하며 치마를 따라 내려가는 입체 자수. 그 위로 붉은 장미들이 드문드문 자태를 뽐내고 있다. 치맛단이 바닥에 끌리고 있어 검은 늪을 연상케 할 정도였지만 치마 오른쪽이 찢어져 허벅지부터 다리까지 드러나 불편해 보이는 느낌은 전혀 없었다.

놀랐지만 한편으로는 납득했다. 나를 전부 알고 있다는 듯 말하는 거슬리는 태도.

츠시마 요시코.

츠시마 요하네.”

목소리가 겹쳤다.

잘도 알았네.

왠지 모르게.”

몸을 넘겨줄 생각은 없어 보이네.

.”

생각해봐. 이상하지. 네가 처음부터 평범했으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도 않았던 거니까. 이유도 없이 아팠고, 공포에 떨기도 했어. 그런데도 마왕은 널 이용해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들고 있다. 그냥 미워하면 돼. 널 이런 운명으로 밀어 넣은 천사와 신들을 미워해. 널 빼고 행복하고 평범한 인생을 살아가는 이 세상의 모든 인간들을 질투해. 그래. 내친 김에 칠죄의 마왕을 전부 먹어치우는 건 어때. 천사를 전부 찢어발기고 그 다음 신을 만나는 거야.

그 다음은?”

신을 죽이고 네가 이 세상의 신이 되면 되잖아. 모든 사람의 운명을 바꾸는 거야. 너처럼 불행한 인생을 살아가게 만드는 거야.

. . 미안한데, 나 지금 생각해보니 그렇게 불행한 인생을 산 것도 아니어서. 오랜 시간 쌓인 감정은 내가 겪었던 일들을 수십, 수백은 괴로웠던 것처럼 만든 것 같아. 기억을 미화하는 것과 같은 원리로. 생각해봐. 수학여행이나 소풍을 못 간다든가, 중요한 날엔 언제나 비가 온다든가. 왕따를 당하고, 물건을 자주 잃어버리고, 잔상처가 많고. 자판기에서 당첨은 한 번도 안 나오지, 탄산음료를 사면 왠지 모르게 터진다든가.”

그래그래, 불행의 덩어리라고 해도 좋을 정도네.

그치만 그런 게 전부 신을 죽인다든가. 그 정돈 아니잖아.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구.”

그래. 의견은 일치하지 않는다는 거네.

그녀. 요하네의 등에서 검은 날개가 넓게 펼쳐졌다. 검은 눈의 붉은 안광이 내 눈동자를 직시한다. 나도 물러서지 않고 천천히 움직였다. 전신에 흐르는 마력. 한 번도 제대로 사용해본 적 없는 마왕의 힘. 이곳이라면 전력을 다해도 괜찮겠지. 지금은 폭주 없이 온전한 나 자신으로 쓸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절대로 넘겨주지 않아. 내 소중한 사람들의 미래를 보고 싶으니까.”

넌 이해 못해. 내가 알려줄게.

지면을 박차고 나아간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주먹을 휘두른다!

힘을 어떻게 쓰는 지도 모르네.

공기를 찢는 소리가 들린다. 주변에 깃털이 흩어지며 요하네가 시야에서 사라진다. 위인가. 또 다시 박차 이번엔 하늘을 향해 다가갔다. 날아오르는 것보다 힘을 이용해 올라간 내 쪽이 훨씬 빨랐다. 요하네를 스쳐지나가 머리 위에서 날개를 펼쳐 멈추었다. 그리고 이번엔 내려찍기다!

너는 어떻고!”

, 하고 혀를 차며 양팔을 올린다. 막아내긴 했지만 땅으로 처박혔다. 건물에 옥상부터 구멍이 뚫리며 흙먼지를 일으켰다. 조금은 혼쭐이 났으려나. 으음. 하늘에선 어떤 상황인지 보이지 않는다. 설마 죽진 않았.

……!?”

건물 최하층에서부터 뻗어올라온 에메랄드 빛 액체들이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마력을 담아 장막을 전개!!

!”

막았음에도 방대한 열기가 장막을 뚫고 들어왔다. 녹는 소리와 연기가 시각, 청각을 차단했다. 이러면 손 쓸 도리가 없다. 이런 불길한 예감은 언제나 들어맞았다. 연기 사이에 일순 보인 실루엣. 눈치 챘지만, 알면서도 대처할 수 없었다.

다시 한 번 에메랄드의 액체가 집어삼킨다.

아아아아아악!!!”

살이 찢어진다. 뼈가 녹고, 피가 증발한다. 신체의 장기가 제 기능을 하기엔 글렀다. 미칠 듯한 고통에 엉뚱한 생각이 자꾸만 맴돌았다. 염산으로 장난치는 사람, 염산을 무기로 이용하는 사람은 전부 처벌받아야 한다. 벽으로 밀려날 때까지 체감 상 100년은 지난 듯 했다. 실제로는 1초도 안 되겠지만. 이를 악물고 고개를 움직여 몸을 둘러보았다. 멀쩡한 곳이 하나 없다. 영화에서 유감없이 온갖 무기로 쑤셔진 좀비와 같은 모양새였다.

, . 아윽, 하아.”

정말 웃긴 건 이 순간에 전부 낫고 있다는 점. 다시 멀리서 덮쳐오는 액체들에 얼른 반응해야만 했다.

죽어.

아직 전부 낫지 않아 손발도 못 움직이지만. 내 힘 정도야 나도 쓸 수 있어!! 입을 크게 열자 앞에 둥그런 액체들이 모였다. 이대로 힘껏 날숨을 내쉬자, 작아보였던 액체가 거대한 폭포처럼 변해 휩쓸었다. 맞부딪치는 산성. 피어오른 연기가 내면의 세상을 뒤덮는다. 서로 보이지 않는 건 마찬가지. 몸도 전부 나았다. 나는 다시 벽에서 빠져나와 하늘을 날았다.

이러면 너도 죽는 다는 건 알고 있어?”

알고 있어.

네가 정말로 바라는 게 이거야?”

요시코. 난 네가 선택하지 않은 또 하나의 길이야. 네가 마음을 먹었었던 다른 하나의 길. 네가 죽였던 부의 감정들, 안 좋은 생각들. 지금의 네가 존재할 수 있도록 타천사로서 모든 불행을 아무렇지 않은 척 떠안는 역할을 해왔어. 내가 네게 건넸던 말들, 잘 생각해봐. 넌 단 한 번도 부정하지 않았고, 몇 번이고 홀렸었잖아. 몰랐다는 무책임한 소리는 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네.

단 한 마디도 부정할 수 없었다. 정말로 내가 생각했었던 것들이니까. 억울했다. 부러웠다. 괴로웠다. 부숴버리고 싶다는 생각은 아무리 그래도 한 적은 없지만. 나는 츠시마 요하네라는 캐릭터를 만들어 그 아이에게 떠넘겼다.

전부 잊고 행복한 미소만을 다시 기억해가지. 네 아픔을 떠맡은 건 나야.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타천사 요하네가 한 짓이 되었던 거야.

아플 때마다. 괴로울 때마다. 울고 싶고, 나쁜 감정을 품을 때마다 나는 츠시마 요하네가 되었다. 전부 요하네의 능력 탓으로 돌리고 어쩔 수 없다며 자조했다. 나에게 있어 이미 또 다른 자아라고 해도 좋을 타천사. 츠시마 요하네. 이 아이는 내 안에서 계속 괴로워했던 거구나.

날개를 휘두르자 한 차례 폭풍우가 일었다. 자욱하던 안개가 걷히고, 츠시마 요하네가 내 앞에 서 있었다. 뻗은 손이 에메랄드빛으로 은은하게 감싸여 반짝이고 있었다.

끝났어.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어.”

한 발자국 다가서자 요하네가 인상을 찌푸리며 경계했다.

있잖아, 요하네. 난 이제 책망 하지 않을 거야. 내 인생에 대해 불평불만을 말하는 한이 있어도 요하네로서 말하진 않아.”

너무 늦었어. 네가 만든 츠시마 요하네는 죽을 때까지 없어지지 않아. 다시 시간을 과거로 되돌릴 수 있다면야 모르겠지만.

늦었지만 아직 벌충할 수 있어.”

다이아 씨가 한 말이 떠올랐다. 지금은 이렇게 다른 자아로서 존재하지만 본래 우리 둘은 하나였다. 내가 끌어안고 가야했던 것들이다. 외면했던 부의 감정들을 피하지 않고 마주본다. 저건 내가 아니라고. 나는 저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지금은 마음이 바뀌었다고 부정하지 않는다.

말도 안 되는 소릴.

전부 떠넘겨서 미안.”

? 이제 와서 사과한들 늦었다고 말하잖아.

해야만 해. 내가 나약한 탓에 네게 떠맡기는 형태가 되어서 미안. 위선과 허세만 잔뜩 부리고 여차할 땐 도망쳐서 미안. 네게 의지한 주제에 외면해서 미안. 아픈 것, 힘든 것. 알아주지 못해서 미안.”

어쩌라는 거야. 그래봤자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착하고, 잘 웃고, 선행을 하고, 고마움을 표현하는 건 서툴지만 힘내서 노력하는 자신. 가끔은 불평불만을 내뱉으며 운명을 탓하고, 시기와 질투도 하고, 몰래 울고, 아프고 힘든 것도 표현하지 못해 혼자 끙끙 앓는 자신. 구분 지을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내가 요하네라면, 분명 이 아이 또한 요시코일 터.

네가 불행하지만 않았어도 나와 몸을 두고 싸우는 일은 없었어. 좀 더 분노하라고!

과거에 돌아갈 순 없으니까 다들 필사적으로 지금을 살아가. 미래에 나아가. 이미 일어난 일은 어쩔 수 없으니까. 나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을 할 거야.”

이대로 죽기는 싫어서 앞으로 나아가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내가 갈 이 길엔 요하네가 있어줘야 한다.

내가 운이 없었던 건, . 네 말대로 운명이었을 지도 몰라. 천사든 신이든, 누군가가 장난을 친 걸지도 몰라. 어쩔 수 없잖아. 그러니까 낙관적으로 생각하고 싶어. 내가 불행했기에 다이아 씨와 만날 수 있었어. 너와 이렇게 만날 수 있었어. 지금까지 괴로워했던 네가 들으면 어이없는 소리겠지만. 지금의 내가 존재하는 건 네 덕분이니까. 날 지탱해준 네가 있어서 적어도, 네가 말한 대로 신과 만날 기회정돈 얻을 수 있게 되었어.”

「…….

복수할 맘은 없지만 물어보는 것 정돈 할 수 있지 않을까.”

네가 몸을 차지하든, 내게 빼앗기든 어차피 난 없어질 거야.

그게 무슨 소리야?”

네가 몸을 차지하면 내 의식은 사라질 거고, 내가 차지해도 바깥의 마왕들에게 죽어. 멋대로 만들어내 좋을 대로 이용해, 그리고 버려져. 앞으로의 네게 타천사 요하네는 필요 없으니 다신 볼 일도 없어. 타천사 요하네는 네게 그런 존재야. 내가 태어난 것에 의미가 있긴 해?

정말. 부의 감정 덩어리로 이루어진 나답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당연하지!!!”

「……!?

없어지지 않아. 절대로 죽지 않아. 너 없인 나도 없는 거니까. 타천사 요하네는 내 반쪽이니까, 평생 나와 함께 걸어가는 거야. 내가 걸어갈 이 길엔 네가 필요해, 요하네. 나는, 정말로 이 세상 누구보다도 널!”

뒤의 말을 내뱉기도 전에 그녀의 검지가 입술을 살며시 덮었다. 고개를 숙인 채 나지막이 읊조렸다.

정말 무르네, 나도.

……. 츠시마 요시코잖아. 큭큭. 이제 어깨에 올린 짐을 덜거라, 그대여. 불행이야말로 타천사의 숙명. 내 힘을 두려워한 신들의 질투와 시기이니, 이 업보. 응당 받아주지. 이 정도 핸디캡으론 날 꺾을 수 없단 걸 다시 알려주마.”

그거, 타천사 요하네의 대사잖아.

후훗. 인간계에선 들키지 않도록 츠시마 요시코라 이름을 대고 있지만 그 정체는 너무 강력한 힘에 천계에서 추방당한 타락천사 요하네란 날 말하는 거지.”

요하네는 나에게서 떨어져 거리를 두었다.

고마워, 정말로. 좋아해, 타천사 요하네.”

난 너 같은 건 정말 싫지만.

그래도 잘 부탁해. 호를 그린 입모양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꿈이라도 꾼 듯, 그녀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시야에 들어온 그림자가 왠지 모르게 든든하게 느껴졌다.

이윽고 내면의 세계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건물들이 쓰러지고, 하늘이 깨진다. 나는 눈을 감았다.



#에필로그

  


이번에 마중은 없었다. 아니, 마중이 있을 수가 없었다. 아까 나를 제외한 나머지 마왕이 눈앞에 있었을 때도 놀랐는데 이 장면은 그 이상이다. 대체 무슨 난장판인지, 누가 마법으로 메테오라도 쓴 듯 부서진 지형. 나를 제외한 여섯 마왕들이 피를 흘리고 있었다.

이제야 오셨군요. 기다리다 지쳤습니다, 요시코 씨.”

“WOW, Very cool 한 표정을 짓고 있네요.”

이쪽은 피투성이, 진흙투성이인데 말이야. 공짜로 며칠 부려먹는 걸론 수지가 안 맞아.”

아하하. 어서와, 요시코. 힘냈네.”

요시코 쨩!! 어서 와유!!! 마루, 정말 걱정했슈!! 이대로 안 돌아오면 어떡하지, 하고 포기할 뻔했슈.”

……하아. 이제야 잘 수 있어…….”

아아. 내가 마왕 폼으로 무의식 상태가 되니 밖에서 날뛰지 못하도록 제어해야만 했구나. 이렇게 엉망진창이 될 때까지.

미안해요, 다들. 다녀왔습니다.”

정말. 죽이지 않을 만큼 힘 조절하면서 죽지 않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인 줄 몰랐네. 다이아에게 고마워해, 요시코.”

피 냄새와 짐승 냄새가 진동하는 손으로 카난 씨가 머리를 쓰다듬었다. 온화한 표정으로 웃으면서 잘도 무서운 말을 내뱉는다, 이 사람.

다이아 씨에게요?”

이래저래 말해도 요시코에게 가장 정을 많이 붙이고, 가장 신뢰했으니까 말이야.”

하아? 정을 붙여요? 뭐만 하면 잔소리에 항상 못미덥다고 말하고 반푼이라고 별명까지 붙인 저한테요?”

, 하고 마리 씨가 비웃는 소리가 들렸다. 카난 씨도 쓴웃음을 짓는다. 말을 대신한 건 의외로 요우 씨였다.

마왕을 소환해낼 정도의 영혼. 교만은 그 영혼을 좀 더 다른 데 쓸 수 있었을 걸? 자신이 먹어서 더 강해진다든가~, 아니면 흐음. 그래. 천계를 뒤집을 정도로 강력한 병기를 만들 수도 있겠네. 하지만 그러지 않고 요시코 쨩을 마왕으로 만들려 했지. 최상급 영혼을 마왕으로 만들면 확실히 베스트지만, 나라면 그런 도박은 하지 않아. 똑똑한 요시코 쨩이라면 무슨 뜻인지 알겠지?”

으음, 그러니까.”

원래라면 이런 귀찮은 짓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다. 나의 영혼을 갈아 자신을 위해 써도 되겠지만, 나를 마왕으로 만드는 데 이용했다. 내가 실패할 지도 모르는데.

도박이 아니야. 나를 믿어주었다?”

딱히. 믿은 게 아니에요.”

입가의 점을 슬쩍 긁는 다이아 씨.

교만의 마왕인 저를 소환해낸 당신이니 당연히 해낼 줄 알았습니다. 천계와의 전쟁을 준비하기 위해선 더 큰 전력이 필요하고, 그 전력을 100% 얻을 수 있다면 시도하는 게 당연하죠.”

다이아가 요시코만큼 착한 아이라면 조금만 더 이 일상을 누려도 좋지 않겠냐고 그랬던 것 같은데.”

카난 씨!!! 그걸 말하면!!”

“oh~ 다이아도 참~ Shy girl~.”

두 사람 다 이리 오세요!!”

엉엉, 요시코 쨩~.”

그만 좀 떨어지지, 즈라마루. 귀찮아.”

하암. 루비, 이제 자러 갈 테니까. 모두 목숨 1개만 남은 거 잊지 말구, 천사한테 들키지 마.”

읏차. 나도 슬슬 가봐야겠네. 일이 한참 밀렸어. 이 사이에 바닥에 버려진 돈은 전부 요시코 쨩이 회수하게 할 테니까. 알겠지?”

. 조금만 봐주시면!”

어느새 상처가 나은 마왕들. 나도 죽지 않고 살아 돌아와 이 시끄러운 비일상 속에 발을 담근다. 다행히 츠시마 요시코로서의 일상도 아직은 계속될 모양이다. 정말로 진짜로 다행이긴 한데, 한 가지 더 소원을 말하자면.

 

아까 다이아 씨가 말한 천계와의 전쟁이 부디 농담이었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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