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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라이브 선샤인

[마리 생일 축전] Shiny for me

Shiny For me

 

나도 웃을 줄만 알았던 건 아닌 걸. 혹여나 네 얼굴이 짜증으로 일그러진 순간이나, 전에 나를 향해 웃어주었던 미소가 냉철한 얼음장 같은 감정 없는 얼굴과 날카로운 비수 같은 말로 돌아오게 되었을 땐 아무리 나라고 해도 울고 싶었어. 그래도. 그래도 말이야. 스멀스멀 올라오는 부정적인 감정을 전부 죽였어. 얼굴에 드러나지 않도록, 나도 차가운 가면을 쓰기로 했어. 웃는 것밖에 할 줄 모르는 차가운 감정의 광대 가면을 말이야.

그래야만 눈물이 멈출 것 같았으니까.

네 앞에서 약한 소릴 할 것 같지 않았으니까.

그래야 내가 너를 포기 할 것 같지 않았으니까.

 

외국으로 유학을 갔다 온 공백의 2년이란 골은 생각보다도 깊었다. 기계로 가득 이루어진 공장에서 딱 하나의 작은 톱니바퀴가 제 갈 길을 못 찾고 길을 잃어버려, 이윽고 그 톱니바퀴를 따라 움직이던 다른 모든 톱니바퀴들이 엇갈리게 되어 시간을 잃어버린 것처럼. 예를 들면 우리들의 관계도 그랬다.

몇 번이고 돌아갈 생각을 하며, 기회를 잡고 있던 찰나 우라노호시에 새로운 스쿨 아이돌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놀랐다. 설마하니 카난?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편으로 나를 두고 떠나버린 카난의 뒷모습이 멀리 아른거렸다. 그런 불길한 생각이 머릿속을 잠식함과 동시에 카난의 뒷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지며 엘리베이터의 줄이 끊어진 것처럼 나락으로 떨어져버리는 환상에 몸이 덜컥 경직되었다.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것처럼 다급하게 컴퓨터를 뒤지기 시작했다. 재촉해서 될 일도 아니건만 좀처럼 짜증을 내지 않는 나도 이번만큼은 컴퓨터에게 애꿎은 손찌검을 몇 번이고 해버렸다. 다시 일어선 스쿨 아이돌 세 사람 중에 카난이 없다는 소식을 알아내었을 땐 안도의 한숨을 쉬었지만, 덮어두었던 마음의 구멍이 다시금 열려 그곳을 통해 들어온 차가운 겨울바람이 몸을 한차례 차갑게 식혔다.

그래도. 이 소식을 알게 된 건 찬스가 아닐까. 다시 한 번 그때로. 보물 같았던 그 때로. 부러울 게 없이 행복했던 그 때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엔진이 된 생각은 기름에 불을 번지듯 스스로도 놀랄 만큼 행동력에 박차를 주었다. 순식간에 전학수속을 마치고, 후에 경영을 위한 수업으로 이사장 자리를 경험하게 해달라고 파파에게 조른 것도 완벽한 구실이었다.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었다. 아직 벚꽃이 지지 않았을 즈음에 나의 두 발은 다시금 우치우라의 모래사장을 사각사각한 감촉을 맛보게 되었다. 빛을 잘게 잘라 흩뿌려 놓은 듯 황홀하게 반짝이는 모래사장 위에 투명한 우치우라의 파도가 보물을 지키려는 것처럼 몇 번이고 들어왔다가 밀려나간다. 몇 번이고 밀려나도, 포기하지 않는다. 절대로.

그렇지만 일은 쉽게 흐르지 않는 법이다. 여기까지는 완벽했지만 다음 계획은 막연했다. 세 사람이 스쿨 아이돌로서 활동하고,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기 시작할 때에 어떻게든 편승하면 되겠지. 완전히 맡기게 된 꼴이지만 이사장의 힘으로 도와줄 수 있는 건 전부 도와줄 생각이었다. 도와주면서, 포기하지 않게끔 그러면서도 포기하게 될 지도 모르는, 거쳐야만 하는 길을 나아갈 수 있도록.

쓰러지고. 눈물을 흘리고. 엇갈리고. 포기하기 직전까지 갔어도 그 아이들은 다시금 나아갔다. 나아가서 그 반짝임으로 나와 카난 그리고 다이아마저도 빛의 소용돌이로 휩쓸어갔다. 이것도 저것도 너무나도 눈부셔서. 분명 계획했던 건 난데, 그것조차도 말려들게 하는 좋아함의 힘이란 얼마나 대단한 걸까. 카난과 이런 식으로 화해하게 될 줄 몰랐다. 다이아와 카난과 다시 스쿨 아이돌을 하고 싶다고 바랐지만, 실은 몇 번이나 무너졌는지 모른다. 그걸 잡고 일어서게 만들어주어서. 포기하지 않게 해주어서 고맙다고. 고맙다고 몇 번이고 말하고 싶다.

그래도.

혼자 있을 때, 가끔 문득 이런 생각이 들곤 한다. Aqours가 다시 한 번 증발해버리는 건 아닌지. 어디론가 사라져버리는 건 아닌지. 예전 이상으로 빛이 바래지는 게 무섭다. 이번에야말로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게 두려웠다. 혼자 있을 때의 나는 여전히 눈이 익숙해지지도 않는 어두컴컴한 나락 속에서 헤매고 있었다.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언덕길을 걷고 있자니 자연스레 걸음걸이가 느려졌다. 신뢰로 단단히 묶어졌던 관계이기에 더욱 갑작스레 무너지고 만다. 내부에서부터 서서히, 서로의 오해라는 감정의 벌레가 좀 갉아먹는다. 이 언덕길을 넘어 학교에 도착했을 때, 그 아이들은 여전히 옆에 있어줄까.

무서워. 무서워. 무서워. 이 학교를 올라가면 또 차가운 얼굴로 이제 그만둔다고 말하는 건 아닌지. 이제 됐다고. 그만하자고 말하는 건 아닐지.

그렇게 학교의 입구에 발을 내디뎠을 때.

 

~, ~리이~! 이쪽! 이쪽!!”

구원의 목소리라도 되는 듯 카난이 나를 불렀다. 멀리 있어 흐릿하지만, 또렷하게 다가온 카난의 모습이 너무나도 반가워서. 간지러움을 참지 못하고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오우, 카나아안~!? Shiny~! 그쪽은 교실이 아닌데? what happen?”

됐으니까, 얼르은!”

단상에서 손짓을 하는 카난. 답지 않게 재촉하는 모습에 살짝 웃고는 살짝 뛰어 카난에게 달려갔다. 아무래도 방금 전까지 생각했던 부정적인 것들이 어깨를 짓누르고 발을 쇠사슬로 묶고 있었던 것 같다. 저 멀리서 카난이 웃으며 손을 흔드는 모습을 보자마자 몸이 가벼워진다니 기적 같은 마법을 내게 걸어준 건 아닐까. 유치한 생각에 저도 모르게 가슴이 간지러워졌다.

단상의 옆 계단을 오르자 장난스럽게 웃고 있는 말괄량이 아가씨의 옆에 얌전하게 서 있는 아가씨가 눈에 보였다. 아까는 각도 때문에 보이지 않았던 거겠지.

투명하면서도 안이 들여다보일 듯한 아름다운 검은색의 흑진주를 연상케 하는 머리칼이, 고개를 갸웃하는 움직임을 따라 살짝 흔들린다. 입가에 걸린 옅은 미소. 빛나는 옥색의 눈동자의 끝이 살짝 휘어지며 평소의 매서웠던 갈고리 눈매가 부드럽게 풀려있었다. 최근 스쿨 아이돌의 일이랴, 학생회의 일이랴, 여러 가지로 신경 쓰이는 일들 때문에 사납게 치켜 올라간 눈매가 더욱 기억에 남아 있는 지금 부드럽게 풀린 상냥한 미소를 보니 훨씬 아름다워 보였다.

두 사람 몰래 헛숨을 들이 삼키면서도, 새삼스레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어 얼른 얼굴에 미소를 띠운 뒤 종종걸음으로 다가갔다.

오셨네요, 마리.”

다이아까지? 정말로 무슨 일 있는 거야?”

쓴웃음을 짓는 카난과 어째서인지 살짝 미간을 찡그린 다이아. 그리곤 그럴 줄 알고 있었다는 듯 이내 자그마한 한숨을 내쉬고 카난처럼 못 말린다는 의미의 미소를 지어 보인다. 이런 얼굴의 두 사람을 보게 될 때는 꽤 높은 확률로 중요한 일을 스스로 잊고 있는 경우였다. 어렸을 적의 경험에 미루어 보아 이번에도 원래는 셋이 같이 알고 있었지만 나 혼자 까먹은 중요한 일이 있는 거겠지.

생각해보려고 고개를 이리 눕히고, 저리 눕히고. 뺨에 손가락을 대보기도 하고, 턱을 손으로 받쳐보기도 하며 머릿속을 뒤져보았지만 도저히 생각이 나지 않았다. 이런 중요한 일을 잊어버릴 때마다 겁이 났다. 뒤쳐진 듯한 기분에. 자신이 따라가지 못해 잡을 수 없다는 생각에. 다시 자신을 두고 가버리는 건 아닌지.

애써 뻔뻔한 미소를 짓고서 어깨를 들썩였다. 완전히 모르겠다는 신호.

“Give up. 생각해봐도 떠오르는 게 없는걸.”

쿡쿡. 마리라면 그럴 거라고 생각했지만.”

, 마리라면 그럴 거라고 생각했지요.”

동시에 입을 맞춰 낸 소리가 화음을 이룬다. 그러고는 뭐라고 반박할 새도 주지 않은 채 두 사람은 나의 어깨를 잡았다.

카난이 왼쪽 어깨를. 다이아가 오른쪽 어깨를. 그것만으로 왠지 모르게 안심이 되었다. 나의 소중한 친구.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둘도 없는 친구. 지금 내가 움직이는 이유이자, 원동력. 분명 미래의 일 따위 모르니까. 지금을 살아가는 이유이기도 하지 않을까. 그런 두 사람이 잡아준 어깨는, 상냥하고 따뜻하고, 이어져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무서워하지 말라고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그 때, 움직이지 않았다면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까. 으응.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생각하지 말자. 지금 두 사람은 여기에 있다. 여기에서 제대로 온기를 전해주고 있으니까.

, 이대로 뒤돌아보세요, 마리.”

. 그럼 뭔지 알게 될 걸?”

“Hmm, OK.”

천천히 뒤를 돈다. 비스듬히 돌자, 순간적으로 바람이 불어왔다. 조금 거친 바람이긴 하지만 우치우라의 바닷내음, 소금 냄새와 산에서부터 실려 온 녹음의 산뜻함이 섞여 머리를 부드럽게 쓸고 지나갔다. 짧은 머리칼이 잠시 흔들린다. 교복의 치마도 실려 온 바람에 인사하듯 고개를 들었다. 치맛자락을 누르며 기껏 정돈한 머리카락이 망가지지 않도록 손으로 바람을 막았다.

한 차례 바람이 지나가고 애써 눈을 뜨자, 멀리 있던 것들이 곧바로 눈동자 속에 쏟아져 들어왔다. 체육창고에서 몰래 기계를 꺼낸 것인지, 운동장엔 횟가루로 새하얗고 커다란 글자가 쓰여 있었다.

 

Happy Bu irth day , Mari.

 

삐뚤빼뚤. 2글자 정도씩 누군가가 맡아서 썼는지 각각 모양이 다르다. 반듯하게 쓰인 글자. 못생긴 글자. 틀린 글자. 귀여운 장식이 된 글자. 멋있게 날려 쓴 글자. 동글동글한 글자. 정식 로마로 쓴 글자. 달필로 쓴 글자. 모두. 모두가 쓴 글이다.

그 글자들을 중심으로 8개의 촛불이 둥그런 원을 만들고 있었다. 주위가 밝은 아침인데도 그 불빛이 태양보다도 훨씬 밝게만 느껴졌다.

 

나의 살아가는 이유이자, 원동력인 카난과 다이아. 소중한 친구들.

 

그렇다면 소중한 사람과 다시 만나게 해주고, 또 새롭고 소중한 추억, 더 재미있는 추억, 멋진 추억을 만들어 준 Aqours. 나에게 있어 빛이다. 아침을 상냥하게, 따뜻한 손으로 어루만져주는 태양의 빛. 내가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이정표. 카난과 다이아를 만나게 해준 기적. 그렇기에 소중하고, 애틋하다.

 

나는 카난과 다이아 이상으로, 잃고 싶지 않은 것과 만나게 된 것 같다.

 

어두컴컴한 나락에, 빛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