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러브라이브 선샤인

[시리즈/수인AU] 1

꿈을 꾸었다. 가장 최근에 보았던 행복한 기억. 이제는 꿈이 되어버린 파편이었다.

 

수인. 워비스트. 인간의 훨씬 우위를 맴돌며 이 세계에서는 가장 강한 종족이었다. 수인들에게는 절대로 복종한다. 그렇기에 인간들이 제물로 바쳐지는 것에 대해서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당연하게 생각할 뿐. 의문을 가지면 안 된다고 어른들은 얘기했다. 하지만 이상하지 않나요. 제물인데? 인간이 수인들에게 스스로를 바치는 건데, 거기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편이 더 이상해요.

몇 번이고 항의했지만 작은 목소리는 사회 풍조에 묻혀 재처럼 흩날려 사라졌다. 그저 걷는 동안 무서운 생각이 스쳤다. 잡아서 노예처럼 부려질까. 노리개가 되어 몹쓸 짓을 당할지도 모른다. 장난감이 되어 구를지도 모르고, 나중에는 분명 잡아먹히겠지. 수인들 중에는 인간을 잡아먹는 자도 있다고 들었다.

몸에 전기가 통했다. 찌릿, 하고 팔꿈치 위쪽으로 따끔하게 지나가며 체온을 싸늘하게 식힌다. 수인이 데려가는 곳으로. 마을을 빠져나와 어디인지 모를 숲을 지나 한참을 또 걸었다. 해가 겨우 머리만 들었을 때 출발했건만 벌써 모습을 산 너머로 감추려 하고 있었다. 너무 걷는 바람에 발에는 물집이 잡혔고 몇 번이나 터져 피가 발바닥을 적셨다. 발목은 부어올라 커다란 혹을 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넘어졌을 때 입은 잔 상처들에 진 피딱지들이 다리 여기저기에 더럽게 나 있었다. 당연하게 먹었던 아침, 점심, 저녁마저 굶어 이제는 기력이 없었다.

그 즈음, 한 마을이 모습을 드러냈다.

숲속 깊은 곳에, 하늘에서 내리쬐는 달빛과 강하면서도 은은한 형광의 빛을 내뿜는 반딧불이가 아름답게 비추고 있는 수인의 마을. 아이들을 데리고 온 수인은 시간이 지나면 다시 부르러 올 테니 그동안은 이곳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라고 말하며 도망가지 말라는 당부를 톡톡히 한 뒤에 풀어주었다.

삶을 포기한 끝에 삶이 있다는 걸까. 이곳은 너무 넓고 아름답고.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수인들이 넘쳐나서. 무엇부터 시작해야 될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러나 그 고민도 오래가지 않았다. 아이들을 데리고 온 수인이 훌쩍 떠나자 기회를 기다렸다는 듯 다른 수인들이 귀를 쫑긋 세우고 달려왔다. 어린 티가 물씬 나는 작은 키에 초롱초롱한 눈동자. 살랑거리는 꼬리는 예뻐서 저도 모르게 눈이 따라갈 정도였다.

그 어린 수인들은 인간 아이들과 친구가 되고 싶어 했다. 한 번도 나가본 적 없는 바깥세상의 얘기를 듣고 싶어 했고, 인간들의 놀이나 문화를 궁금해 하며 물어보았다. 곁에 있던 아이들은 하나 둘, 어린 수인에게 이끌려 어디론가 사라졌다.

넓은 세상에 덩그러니 혼자만 남은 것 같았다. 그거야 그렇겠지. 이 아가씨가 다른 아이들보다도 손상 정도가 훨씬 심했다. 꼴은 꾀죄죄했고, 삶을 포기한 표정도 이젠 생기가 없어졌다. 어린 수인들도 가까이 가기 꺼려질 정도로, 죽음이라는 망토를 쓴 인간의 조형물을 데려다놓은 것 같았다.

하지만 멍하니 있어도 먹을 것이 떨어지는 건 아니다. 죽을 것을 각오했지만 살 수 있다면 더 살고 싶다. 다이아는 그 일념으로 겨우 다리를 움직였다. 한 발자국. 평범하게 움직였을 뿐인데 전신을 달리는 통증이 몸을 억지로 멈춰 세웠다.

으극! 그래도, 움직이지 않으면.’

입술을 강하게 깨물었다. 피가 터져 나와 턱을 타고 흘러내렸다. 통증으로 통증을 덮어 씌워 겨우 발을 옮겼다. 어디선가 먹을 것을 구하지 않으면 어차피 굶어 죽는다. 앞으로 한 발자국. 발을 옮겼을 때 머리에 무언가 소리가 들렸다. 팽팽하게 당겨진 바이올린의 줄이 날카로운 날붙이에 살짝 닿은 듯 다이아를 마리오네트처럼 움직이던 긴장감은 소문과는 달리 너무나도 아름다운 수인의 마을을 보았을 때 힘을 잃고 말았다. 게다가 아이들을 데려온 수인도 뭔가 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아이를 풀어주니 확실히 김이 샜겠지.

시야가 어지럽게 흔들리면서 상체가 기울었다. 그렇게 바닥에 몸이 닿으려는 찰나. 폭신한 무언가가 몸에 닿았다.

통증이 너무 무뎌지는 바람에 감각이 이상해진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면 수인 마을의 땅은 폭신한 걸지도 모른다. 그런 바보 같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나서야 몸에 따스한 온기가 닿고 있다는 것과 묘하게 편안한 고동소리가 일정한 리듬으로 울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비스듬히 고개를 들었다.

옅은 푸른색이 불꽃처럼 일렁였다. 색깔과는 정반대의 따뜻함이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뺨을 스쳐 간지러웠다. 굉장히 멋있다고 생각했다. 어디선가 나타나 쓰러지려는 자신을 구해준 늠름한 영웅의 모습. 그러나 자수정을 그대로 장식한 것처럼 투명하면서도 차분한 보라색의 반짝이는 눈동자는 온화함을 품고 있었다. 어쩐지 안심이 되는 바람에. 아가씨는 그 품에 안겨 천천히 눈을 감았다.

 

올바르면서 자신을 믿고, 고집 세고. 강직하면서도 신념이 곧으며 모든 것에 진실 된 인간, 다이아.

올바르지만 헤매고, 고집 세고. 서투르면서도 신념이 곧지만 진실을 모른 채 살아가는 수인, 카난.

 

이것이 두 사람의 첫 만남이었다.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 다이아는 카난의 품에 안기고 며칠 지나지 않아 거의 완벽에 가깝게 회복했다. 부었던 발은 깔끔하게 나아 카난과 함께 여기저기 뛰어다닐 수 있을 정도였고, 예전보다 음식도 훨씬 많이 먹어 오히려 건강할 지경이었다.

처음에는 혼자서 설 수 있을 때까지만 돌보려던 카난이었지만, 생각보다 다이아와 떨어지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회복이 되고 나서부터 매일 아침, 밥을 차렸다며 어깨를 슬그머니 흔드는 다이아. 막 잠이 깬 눈을 비비고 일어나면 그곳에는 서투르게나마 앞치마를 입고 미소를 짓고 있는 다이아가 서 있었다. 카난도 씨익 웃으며 다이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부드러운 흑진주처럼 윤기가 흘러내리는 머릿결을 만지면 새삼 자신의 털도 이런 식으로 부드러웠으면 싶어서 부러워지는 카난이었지만.

그렇게 아침을 먹고 나면 카난과 둘이서 멀지 않은 곳으로 낚시를 나가곤 했다. 햇빛마저 손길이 닿지 않는 수해의 중간. 완전히 다른 영역에 들어선 것처럼 나무가 일절 사라지는 공간이 있다. 대신 정갈하게 정리된 풀꽃들 사이에 커다란 호숫가가 이질적인 느낌을 풍기며 자리해 있었다. 호숫가 안쪽에서는 방울 같은 투명한 포자가 빛을 내며 공중을 맴돌았다. 분명 밤이 되어도 이 호숫가는 밝게 반짝이고 있겠지. 아니, 낮보다도 밤이 훨씬 아름다울 것이 분명하다.

다이아와 카난은 이 호숫가에 앉아 느긋하게 낚싯대를 드리우며 서로의 이야기책을 펼쳤다. 수인에게 잡혀오기 전에 보냈던 일상. 다이아가 오기 전에 보냈던 일상. 어렸을 적에 갑자기 사라진 동생의 이야기나 카난이 함께 보냈었던 아이들이 어느 날을 기점으로 사라져버린 이야기도.

갑자기사라졌다고 하시는 건가요?”

. 나도 어렸을 적엔 인간 아이들과 자주 놀았었거든. 바깥의 이야기는 재미있고. 그렇지만 어느 날 사라져버리는 거야. 마을 어디에도 온데간데없이. 그런 일을 몇 번이나 겪고도 멀쩡할 정도로 난 강하지 않으니까언젠가부터 인간 아이들과 관련되는 것을 꺼린 거야. 원래 다이아도 전혀 도와줄 생각이 없었는데.”

죽게 놔둘 생각이었다고……?”

그래서 구해줬잖아. 사라져버리는 것만큼이나 눈앞에서 죽는 것도 찜찜하니까.”

쿡쿡. 상냥하네요.”

어쩔 수 없었던 것뿐인 걸.”

그럼. 지금 이렇게 저와 함께 있는 건?”

장난스러운 얼굴로 점잔을 빼며 짓궂게 물어오는 다이아의 이마를 코옥 누르고 대답하는 카난.

다이아가 멋대로 들러 앉은 걸 굳이 내쫓기가 귀찮아서 내버려두고 있어.”

푸흣그게 변명이에요?”

, 변명이 아니라 사실, 다이아! 입질, 입질!”

? , !?”

느긋하면서도 평온한 일상. 정말로 꿈속인 것만 같은 달콤한 나날은, 정말로 꿈의 조각으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조각으로 나누어져 있던 달이 완전히 하나가 되어 어두운 밤을 밝히는 날. 다이아는 어째선지 돌아오지 않는 카난을 생각하며 문득 나가기 전에 했던 대화를 떠올렸다.

엄밀하게 말하면, 나 아직 어른 수인이 아니야.”

그럼 지금까지 제겐 거짓을 말하고 있던 거였나요?”

나이 상으론 어른 수인이지만. 인정받으려면 한 단계가 더 남았거든.”

한 단계?”

잘 모르겠지만. 어떤 날에 사냥을 성공하는 것이 조건이라 들었어.”

그렇군요. ……그래도 위험한 일은 하지 마세요.”

. 몸에 위험부담이 간다는 얘긴 못 들었는데. , 그래도 조심할게.”

서늘하면서 끈적거리는 불쾌한 감각이 등골을 스멀스멀 기어올랐으나 다이아는 애써 무시하고 이불을 머리까지 덮었다. 아직은 어린 아이. 깜깜한 이불 속에서 무언가를 상상하더라도 덮쳐오는 수마에는 이길 수 없었으리라. 다이아는 금세 잠이 들었지만, 그건 아주 짧은 시간이었다.

뺨을 스치는 시원한 밤바람에 눈을 뜬 다이아는, 아직도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줄로만 알았다. 분명 잘 때까지만 해도 카난의 방이었는데. 어째서 본 적 있는 숲이 눈앞에 펼쳐져 있는 걸까. 카난과 호숫가를 가기 위해 몇 번이고 지나갔던 코스 중 하나다. 혹시 몰라 뺨을 꼬집었지만, 풍경은 그대로였다. 오히려 뺨에 올라온 열기를 수해의 차가운 밤바람이 어루만지면서 더욱 현실감을 짙게 만들었다.

다행히 아는 길이네요. 카난이 이런 장난을 칠 리 없겠지만, 어떻게 된 건지는 직접 가서 물어봐야겠죠.”

그렇게 스스로를 다그치고는 마을 쪽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왠지 모르게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아까 자기 전에 스쳤던 불쾌한 감각이 되살아나 다리를 얽매었다. 마음이 불안한 탓인지 숲속에서도 비릿한 냄새가 코를 찌르는 것만 같았다.

.

……?”

돌멩이 같은 가벼운 것이 아닌, 좀 더 둔탁한 감각이 발끝을 타고 전해진다. 딱딱한 물체가 아니다. 직감적으로 알았다. 순간 섬뜩해진 다이아는 순식간에 몇 걸음을 뒤로 물러났다. 만월도 걷어내지 못한 수해의 어둠 속. 이제는 익숙해진 밤눈으로 겨우 형체만을 알아본 다이아는 깜짝 놀라며 엉덩방아를 찧고는 살갗을 타고 올라온 죽음의 향기에 몸서리치며 헛구역질을 했다.

우읍! , …….”

분명히, 인간이다. 너무 어둡고, 시체의 훼손 정도도 상당히 심한 것처럼 보여 간단히 잴 순 없지만 아마도 다이아와 같은 또래의 아이. 그 때 같이 온 아이들 중 한 명이 틀림없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입술을 잘근 깨물고 땅을 짚고 겨우 일어섰다. 다리가 후들거리면서 제대로 균형을 유지할 수 없어 몇 걸음도 걷지 못하고 다이아는 다시 나무에 기대었다.

몸에 위험 부담이 가지 않는 수인들의 사냥. 설마, 사냥이란 게…….’

찰나.

.”

콰아앙, 하고. 거대한 폭발음이 들리며 다이아가 기대고 있던 나무가 한 순간에 터져나갔다. 부러지거나 부서진 게 아니라, 이 세상에서 흔적도 없이 소멸했다. 터져나갔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 심장이 놀랄 시간도 없이, 다이아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뇌에게 이해를 시키기 위해 멍하니 뒤를 돌아보았다.

검은 형체의 무언가. 인간보다 키는 훨씬 크다. 털로 덮여 있지만 두 발로 걸어 다닌다. 기분 탓인지 미소를 짓고 있는 것 같았다. 지성이, 있다. 짐승보다도 압도적인 존재. 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먹이사슬의 최정상.

……수인.”

나지막이 읊조리자 그 목소리에 반응하듯 수인이 다이아에게로 걸어왔다.

……호오, 도망치지 않는 거냐.”

마을에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수인. 노란색과 갈색이 섞인 듯한 탁한 색깔에 검은 반점이 몸 전체에 나 있다. 위로 길게 째진 눈은 비열하게 웃으면서 동시에 냉철하게 상황을 판단하고 있었지만, 본성인 탐욕을 감출 생각은 없는 듯 입에서 길게 나온 혀가 몇 번이고 입가심을 해대었다.

하이에나, 인가요.’

도망칠 수 없다. 애초에 어떤 수인을 상대로 하더라도 도망칠 수 있을 리 없었다.

끌끌끌, 도망치지 않는 거냐. 재미없게. 비명을 지르면서 도와달라고 해보라고, 인간.”

………아니. ……설마. 꿀꺽. 다이아는 억지로 침을 삼키고는 재빨리 하이에나에게서 등을 돌려 다리를 재촉했다. 지금까지 중 가장 빠른 속도로, 마을을 향해 달렸다.

……끌끌, 그래그래! 이래야 재미있지, !!?”

저 멀리서 하이에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다이아는 달리면서도 침착하게 머리를 굴렸다. 이 하이에나는 처음부터 다이아를 죽일 수 있었다. 하지만, 어째서 나무만을 파괴한 거지? 게다가 도망쳐보라고 얘기했다는 건. , 이 놀이를 즐기고 있다.

설마하니 카난이 말한 사냥이 수인이 인간을 사냥하는 거였다니……. ……설마 그렇다는 건아니, 그럴 리가 없어요. 카난이 그럴 리가.’

불현 듯 떠오른 불안한 생각을 도리질로 지우고 나무를 이리저리 헤치며 나아간다. 등 뒤에서 다시 한 번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들려오자 나무가 부서져나갔다. 공격 하나, 하나가 죽음에, 아니. 죽음에도 이르지 못하고 세상에서 사라져 버릴 정도의 위력. 미쳐 사라지지 못한 나무의 파편이 빠른 속도로 튀어 다이아의 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아마 일부러 그렇게 노린 거겠지. 이미 얇고 고운 피부는 몇 군데나 찢겨나가 피가 멈추지 않았다.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져 몇 군데는 까지기도 했다. 그래도 다이아는 앞을 보았다. 이제 금방 마을이다. 마을에 도착만 한다면, 카난이분명 카난이 어떻게든.

어떻게든 해줄 거라 생각했는데.’

다이아의 속도가 점차 줄어들었다. 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던 하이에나가 재미없다는 듯 혀를 차고서 말했다.

, 넌 여기까지인 거냐……, . 그렇군.”

제동거리까지 발을 터덜터덜 움직이고 나서야 다이아가 완전히 멈추었다. 그 시선의 끝은 다이아의 앞을 막아선 또 하나의 실루엣을 응시하고 있었다.

정열적으로 타오르듯 일렁이는 푸른색의 털. 누구보다도 애타게 찾았던 그 사람이 눈앞에 서 있었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표정으로, 양 팔에는 어린아이를 안고서.

카난.”

여어, 마츠우라.”

하이에나 수인도 카난을 알고 있었는지 친한 것처럼 말을 걸었다. 그래도 카난은 여전히 품 안에 아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두 손은 피로 물들어있었다. 다이아는 천천히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완전히 희망이 끊어졌다. 더는 의지할 곳이 없어졌다.

믿었던 카난마저 인간을 사냥했다. 그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카난이 한 게 아니라고 믿고 싶었다. 그러나 피로 물든 양 손은 다이아의 시야를 붉게 물들여 좁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그렇게, 다이아는 그 자리에서 기절하듯 쓰러졌다.

 

꿈을 꾸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전혀 예상도 가지 않지만. 카난의 따뜻함이 온 몸을 감싸는 꿈. 죽을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자신을 위해 달려주는 카난의 꿈. 문득 카난의 미소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서 다이아의 눈에 빛이 들어왔다.

지금껏 본 적 없는 천장. 다이아의 집과도, 카난의 집과도 다른 천장이었다. 천천히 몸을 움직이자 바늘로 찌르는 고통이 전신을 엄습했다.

.”

다행히 입술을 깨물어 겨우 큰 소리가 나오는 것을 피했다. 다이아는 이내 한숨을 내쉬며 눈동자로만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딘가의 집. 그것도 수인이 아니라 인간의 집이다. 수인의 집에는 없던 정다운 생활감이 느껴지는 도구들이 몇 몇 눈에 띄었다.

분명 그 자리에서 쓰러질 때엔 다신 눈을 못 뜰 줄로만 알았는데. 카난.

이런 짓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정말 딱 한 사람뿐이었다. 아마도, 카난이 죽을 것 같은 표정으로 다이아를 든 채 어딘가로 향하는 꿈은 현실이었던 모양이다. 그 아이는 카난이 죽인 게 아닌 걸까. 잘 모르겠다.

잘 모르겠지만. 그렇기에 더욱. 저는 다시 카난 씨와 만나야 해요.’

물어보고 싶은 게 잔뜩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헤어질 거라면 제대로 인사를 하고 싶었다. 기절한 채가 아니라. 서로 마주보고. 슬픈 표정이 아니라 웃는 얼굴로. 안녕. 또 어디선가 만나자고, 분명 만날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얘기하고 싶었다.

카난 씨.”

몸을 움직인다.

크읏!”

아프다. 아프다. 이 세상의 모든 고통을 자신이 짊어지고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들 정도로, 전신이 아팠다. 그러나 다이아는 개의치 않고 몸을 움직였다. 그 순간 방의 문이 열리며 한 여자가 들어왔다. 어린 다이아도 본 적 있는 규정 제복을 입고서 서류다발을 손에 든 그 사람은 어딜 봐도 간호사였다 간호사는 힘을 다해 움직이는 다이아를 보곤 깜짝 놀라 방을 뛰쳐나가 소리 질렀다.

선생님! 선생님!!! 빨리, 환자가!!”

, 무슨!?”

얼른요!”

, 그래!!”

 

기다려요, 카난. 금방 갈게요. 물어보지도 않고 의심한 거 미안해요. 카난을 보고 무서워했던 거 미안해요. 카난은 몇 번이고 저를 구해주었는데, 고맙다는 말 한 마디도 못해서미안해요……. 그러니까 제발죽지 말아주세요. 부디, 살아계셔 주세요. 그렇다면 어디에 있든, 제가 꼭 찾아낼게요. 꼭 카난을 찾아서, 그 품에 꼬옥 안겨서. 고맙다고, 몇 번이고 고맙다고…… 그렇게 얘기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신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