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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라이브 선샤인

[시리즈/수인AU] Pro.

1

 

신을 차려보니 밤길을 달리고 있었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익숙한 숲길이었을 터가 언제부터인지 낯선 환경으로 바뀌어 있었다. 거친 숨소리와, 꺼질 듯 가냘픈 신음소리가 머리를 메웠다.

처형이 이런 거였다니, 들은 적 없다구! 입술을 살짝 깨물고는 시선을 비스듬히 아래로 향했다. 내 눈에 담긴 한 아이. 분명 처음 온 날은 기품 있는 아름다운 모습이었을 텐데, 지금은 겨우 생명만 이어진 볼품없는 모습이었다. 그것도 겉모습만 봐선 몰랐다. 손에 닿은, 이제는 차가워진 체온과 미약하게나마 불규칙적으로 움직이는 가슴이 그녀가 아직은 살아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고통에 찬 그녀의 얼굴이, 예전에 함께 놀았던 아이들의 얼굴이 겹쳐졌다.

함께 공놀이를 하던 아이.

질 걸 알면서도 달리기 시합을 하던 아이.

넓은 들판에 나가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하늘을 날아 보고 싶다고 얘기했던 아이.

꽃이 핀 화원에서 나비를 보며 그저 행복하게 웃는 아이.

나의 털이 따뜻하다면서 기대왔던 아이와 낮잠을 잤던 기억도 있다.

그 모든 얼굴이 일그러지면서, 고통에 찬 이 아이의 얼굴 위로 겹쳐졌다.

심장 언저리가 시큰거린다. 누군가가 주먹을 쥐고 자꾸만 세게 후려치는 것만 같았다. 눈을 질끈 감고 다시 고개를 돌려 앞을 향했다. 모르는 길은 아무리 계속 나아가도 모르는 길이었다. 이따금 저 멀리 들려오는 짐승의 울음소리가 시퍼런 서슬이 되어 등을 찌르는 듯한 오한을 가져다주었다. 이제 와서 카난은 동족과 가족을 배신하고서, 보잘 것 없는 인간 아이를 위해 죽을힘을 다해 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도 다리는 멈추지 않는다. 동족과 가족을 배신하는 것이 옳은지 그른지 판단할 만큼 카난의 머릿속은 지금 냉정하지 못했다. 그저 딱 하나. 이 아이가 죽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불꽃이 되어 가슴을 뜨겁게 지피고 있었다. 그 열기를 동력으로, 이미 힘줄이 파열되었어도 이상하지 않을 다리에 더욱 힘을 준다.

깜깜하다. 오늘 밤은 만월일 텐데도 숲속엔 달빛 한 조각 비치지 않았다. 그래도 이 늑대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겁먹으면서도 손을 놓지 않았다. 혹시라도 소녀가 떨어질까봐 안은 팔을 아프지는 않도록 세게 조였다.

오늘 밤은 만월.

굶주린 짐승들이 입꼬리를 찢어 웃는 날, 사냥의 밤. 처형의 날. 평소와 다른 딱 하나가 있다면, 이례적인 일로서 수인이 사냥감이 되었다는 사실과 사냥감으로 점찍어 놓은 인간의 아이가 처음으로 사냥하는 짐승들의 손에서 살아 도망쳤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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