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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라이브 선샤인

[요하리리] 네가 있어주는 휴일

네가 있어주는 휴일

 

하얀색 투명한 커튼이 나풀거렸다. 여름이라고 해도 밤은 아직 쌀쌀한데. 어젯밤은 꽤나 더워서 창문을 열어둔 채 그대로 잤던가.

다행히 아침 해는 어젯밤의 쌀쌀함을 녹일 정도로 따사로워서. 투명한 커튼에 걸쳐 스며들어오는 딱 좋은 열기가 피부를 쓰다듬었다. 아직 노곤한 몸을 기지개로 풀며 슬쩍 곁의 인기척에게 시선을 둔다. 새근새근 숨소리에 맞춰 위아래로 움직이는 몸. 그 모양을 바라보자 절로 웃음이 나왔다.

정말로 행복하게 자는 것 같아서 이쪽까지 기분이 좋아진다니까. 깨지 않도록 조심스레 머리칼을 쓰다듬는다. 부서지는 햇빛이 검은색 머리칼에 반사되어 반짝인다. 긴 머리를 그루밍하듯 쓸어 등 뒤쪽으로 가지런히 모으자 가려져있던 어깨가 드러났다. 뽀얀 피부가 열을 머금어 조금 연분홍색을 띠고 있었다. 감기에 걸릴세라 이불을 끌어올려 덮어주었다. 무게중심이 이동한 걸 잠결에 느꼈는지, ‘우웅.’하며 애교 섞인 칭얼거림이 입에서 흘러나왔다. 정말이지, 하나부터 열까지 사랑스럽지 않은 부분이 하나도 없다.

사랑스러운 나의 천사. 날개는 없지만 이 아이는 내게는 과분한 하느님의 선물이 아닐까, 요새 자꾸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20. 도쿄에 올라오고 나서, 다시 음악적 재능을 살려 겨우 대학교에 입학했지만 그것뿐이었다. 아쿠아의 곡을 만들며 피아노를 치는 것과, 과제나 시험, 어딘지도 모를 위를 향하기 위해 쳐야만 했던 피아노는 음색부터 달랐다. 항상 곁을 지켜주던 친구들. 웃어주던 친구들. 도쿄에 올라가는 날 멀리서 날 응원해주겠다던 그 아이들을 위해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되자고 결심했건만 초조함에 발목을 잡힌 피아노가 내는 소리는, 무언가에 쫓기는 듯 급하면서 엉망진창의 템포를 가진 불성실한 욕망의 덩어리. 오히려 피아노를 배운 사람이기에 할 수 있는, 순수한 아이들이 막 치는 피아노보다도 훨씬 듣기 싫은, 무의식적으로 불쾌한 감정을 담은 소리.

그렇게 1년 동안, 나는 아쿠아에서 키웠던 날개를 다시 검게 물들이며 추락하고 있었다. 이래선 도쿄에서 갓 올라왔을 때와 똑같잖아. 아니. 그 땐 피아노를 잠깐 쉴 수도 있었지만, 지금은 피아노를 못 쉬고 계속 쳐야하는 만큼 심한 결과가 나왔다. 슬럼프조차 피해갈 수 없이 억지로 계속 쳐야하는 피아노란. 아쿠아의 노래를 도자기 장인이 자신의 신념을 바탕으로 만든 도자기로 비유할 수 있다면, 지금의 노래는 아무런 신념도 없이 돈을 벌기 위해 만든 껍데기에 불과하다. 장인으로서. 아니, 피아니스트가 되려는 지금의 나로서는 대학의 졸업을 위해 과제와 시험의 통과를 우선시하는 이 음악들을 사랑할 수 없었다.

아무것도 못하고 1년을 보낸 난 휴학을 청해 우치우라로 갈 예정이었다. 다시 한 번 그 아이들의 웃는 얼굴. 노력하는 모습을 느긋하게 보면서 피아노를 치면 피아노를 치는 게 즐거워질 것 같았으니까.

회사에 취직한 미토 언니 대신, 시마 언니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여관 일을 배우고 있는 치카 쨩과 아버지의 배를 타고 다니며 바다를 누비는 선장 견습 요우 쨩. 가업을 이어 좋아하는 다이빙을 마음껏 하는 카난 선배. 마루는 절에서 공부를 한다 했고, 루비 쨩은 먼저 도쿄로 올라온 다이아 선배를 따라간다고 했었나. 마리 선배는 유학중이니 만날 수 없겠지만. 그리고 또 한 사람. 가장 마지막에 먹으려고 아껴두었던 케이크 위의 딸기를 입에 머금고 혀를 굴려 단 맛을 음미하는 것처럼, 구태여 나는 가장 소중한 사람을 마지막에 떠올렸다. 생각만으로 무심코 입꼬리가 올라가버리는, 내게는 달콤한 딸기 같은 사람.

욧짱.”

조심스레 이름을 입에 담았다. 그것만으로도. 평소 욧짱이 쓰던 샴푸향이나 자주 먹던 초콜릿 향이 코끝을 간지럽히듯 맴도는 것만 같았다. 나지막이 읊조린 이름은 지금 그 사람에겐 닿지 않을 텐데. 욧짱은 어쩌고 있을까. 내가 우치우라를 떠나던 날, 가장 울지 않을 것 같던 그녀가 가장 먼저 눈물을 흘리고, 가장 먼저 매달려서 가지 말라고 떼를 썼던 일이 생각났다. 도쿄에 올라가겠다는 결심을 하고, 모두에게 말했을 때도 부루퉁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입 밖으로는 감정의 내색을 전혀 하지 않던 그녀였다.

결국 그날, 욧짱의 덕분이라고 할지 모두가 우는 분위기에서 욧짱을 달래는 분위기가 되었던 탓에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발을 옮길 수 있었지만. 아마, 욧짱이 그렇게 안 했더라면 도쿄를 올라와 훨씬 크게 상심해있었을 지도 모른다. 서로가 서로를 짝사랑했던 걸지도. 적어도 나는 그 아이를 좋아했다. 물론, 그때의 나는 전혀 깨닫지 못했던 것 같지만. 소용없을 때 깨달아봤자 마음만 따끔할 뿐이었다. 하지만 짝사랑을 하고 있었어도 난 마지막 날까지 욧짱이 앞으로 어떤 일을 할 건지, 어떤 삶을 살아가길 희망하는지 전혀 듣지 못했다.

지금 우치우라에 가면, 그 아이는 예전 그대로 거기에 있어줄까. 문득 겁이 났다. 혹시 치카 쨩이나 요우 쨩. 지금 이 마음을 눈치 챈 지금, 그 아이가 아닌 다른 모두를 봐도 제대로 웃을 수 있을지, 그 아이가 없는 곳에서 피아노를 예전처럼 즐겁게 칠 수 있을지 겁이 났다. 그래도 여기 이렇게 멈춰 서 있는 것보다는 훨씬 낫겠지. 거기에도 그 아이가 없다면, 어차피 어딜 가도 만날 수 없단 뜻이 될 테니. 차라리 깔끔하게 마음의 정리를 해버리자.

손에 든 휴학 신청서를 크로스백에 넣고, 현관문을 열었을 때였다.

꿈이라고 생각했다.

엄청 많은 의문이나 생각들이 스쳐지나가고, 응당 해야 하는 질문들을 휙 뛰어넘어버린 채 어지러운 머릿속에 가장 먼저 안착한 생각은 스스로도 어이없을 정도로 뻔한 것이었다.

어른스러워졌네.”

언제나 머릿결 오른쪽 대각선 위에 자리 잡고 있던 당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어깨보다 조금 기장이 길었던 머리는, 어느새 나와 같은 등허리에 위치해 침착해보였다. 잘 안 보이는데 왜 하냐고 했던 연한 립스틱. 불편하다고 했던 발목까지 내려오는 스커트. 의상 촬영 때를 제외하곤 쳐다보지도 않던 구두. 내가 예전에 했었던 스타일을 이번엔 그녀가 완벽하게 소화해낸 모습으로 현관문 앞에 서 있었다.

몇 시간이나 있었는지, 도쿄의 빌딩 사이에서 부는 채찍 같은 겨울바람에 귀와 볼은 벌써 동상에 걸리는 게 걱정될 정도로 발개져있었고, 하고 있는 머플러의 입 부분은, 입김이 얼어 얼음이 맺혀있었다.

완전히 동사 직전의 그녀를 보고 겨우 정신을 차린 나는 재빨리 안으로 들였다. 차가운 바람에 버텨준 코트와 머플러를 풀고, 그 어깨에 두꺼운 이불을 덮어주었다. 잠시 몸을 녹일 동안 예전 그녀가 좋아했던 코코아를 준비했다. , 코코아 같은 건 전혀 먹지 않는데. 왜 집에 사놨던 걸까. 혼자 피식 웃곤, 그녀에게 가져다주었다.

겨우 몸을 녹인 그녀가 꺼낸 이야기는, 정말로 나의 이야기와 같았다. 학교에 루비 쨩이나 하나마루 쨩은 있지만, 3학년이 되어 공부 시즌이 겹치자 조금 대화가 소원해졌다는 것. 하고 싶은 일은 없었지만, 이대로 멈춰서는 게 무서웠던 욧짱은 좋아하는 사람을 쫓아가기로 마음먹은 것이었다. 내가 다니는 대학에 시험을 친 욧짱이 아슬아슬하게 합격했다는 이야기. 아무래도, 나의 이야기는 아니었던듯하다. , 1년간 멈춰서고, 오히려 뒤로 몇 보씩이나 물러났으니까. 욧짱이 정말로 대단하고, 대견해보였다. 나도 모르게 그녀의 머리를 몇 번이고 쓰다듬고, 조금 아플 정도로 세게 껴안았다. 어느새 지쳐 잠이든 욧짱 몰래 휴학 신청서를 찢어버리고, 나와 함께 하기 위해 여기까지 와준 욧짱과 대학을 다니기로 결심했다.

 

동거를 하고, 서로가 짝사랑이었다는 걸 털어놓게 된 건 나중의 이야기. 여차저차 해 나는 내게 과분한 천사와 연애를 시작한다. 그 이야기는 언젠가 따로 쓸 곳이 있을까.

어쨌든. 이 아이와 동거를 시작하고 나선 조급하고 초조했던 일상이 거짓말 같이 느긋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언제나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휩싸여 친 피아노는 유순함을 되찾자 절로 그 음색을 찾아갔다.

매일매일 일어나 마음 한쪽에 불편한 찌꺼기들을 쌓아놓고, 모두가 쉬는 날 혼자 슬럼프를 극복하기 위해 안 되는 피아노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쳤던 휴일. 괜히 시간이 많아서 혼자 괴로워하는 시간이 길었던 휴일은 특히 싫어했는데. 지금은.

욧짱, 고마워.”

귀에 가볍게 속삭이곤 짧게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시계를 올려다보자, 평소 그녀가 일어날 시간이 가까워졌단 사실을 깨달았다.

. 슬슬 준비해야겠지.”

천천히 침대에서 빠져나와 내가 마실 커피, 그리고 그녀가 일어나면 마실 코코아를 끓인다. 그럼 방 안에서 리리?”하고 아직 잠에 덜 깬 그녀의 목소리가 들린다. 머그컵 두 개를 양 손에 들고 방으로 들어가자 욧짱이 상반신을 일으킨 채 눈을 비비고 있었다.

굿모닝, 욧짱.”

코코아가 담긴 잔을 욧짱에게 건네주었다.

.”

더운 김이 피어오르는 잔을 후후 불어 천천히 입을 가까이 하곤 코코아를 넘기는 욧짱. 그러곤 흐뭇하단 표정으로 잔을 무릎에 올려놓더니 살며시 입술을 내민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쿡, 하고 작게 웃고는 나도 새처럼 그녀의 입술에 나의 입을 맞추곤 떼었다. 만족한 듯한 표정. 필시 나도 같은 표정을 짓고 있겠지.

우리는 서로 마주보고 웃곤, 다시 한 번 입을 맞추고 떼었다. 서로의 커피와 코코아가 떨어질 때까지 여러 번.

만족했어? 욧짱.”

그러고 나면, 뇌가 완전히 각성한 욧짱은 잠결에 했던 자신의 행위를 되돌아보곤 수줍게 볼을 물들였다. 이것도 느긋한 휴일 아침의 일과. 옆에 있는 서랍 위에 머그컵을 올려놓고는, 다시 욧짱의 곁에 누워 이번엔 껴안아 체온을 느낀다.

, 리리?”

후후, 조금만. 욧짱늄 충전.”

, 정말~.”

아침엔 항상 곁에 있어주는 너를 느끼면서. 네가 있어주는 휴일은, 이제 괴롭지 않다고.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분명 보이지 않는 날개가 있을 등에 입을 맞추곤 천천히 얼굴을 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