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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라이브 IF

[팬픽] 러브라이브! IF ~만일 학교가 남녀공학이 된다면~ 2

2장, 응원 시작하자!

 

다음날 아침, 소집이 걸려 학생회에 얼굴을 비추기로 했다. 부회장에게 연락 받은 바로는 갑작스럽게 오늘 아침 서류가 생겼다고 한다. 급하게 처리할 건 없지만, 양은 생각보다 적은 주제에 조금 공을 들여야 하는 일이라 이런 거에 특기인 나를 불렀다고….

“응. 그런 거니께 잘 부탁한대이.”

“미안해. 대신이라고 하기엔 뭐하지만 학생회 일은 오늘 이것만 하면 끝이니까 오늘 방과 후엔 안 와도 괜찮아.”

“정말요!?”

아, 나도 모르게 반응하고 말았다. 생각 이상으로 기뻐하는 내 모습에 회장의 얼굴이 뾰로통하게 변했다.

“너무 기뻐하는 거 아니니?”

“죄, 죄송해요. 오늘 마침 방과 후에 일이 있었거든요.”

어떻게 말해야 될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마침 좋은 기회다. 자, 척척 끝내보실까! 서류를 하나로 모으고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마치 타이밍을 잰 것처럼 학생회실의 문에서 노크소리가 울렸다.

“실례합니다!”

밝고 명랑한 목소리. 듣는 것만으로 힘이 나는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은 내가 아는 사람 중엔 단 한 사람이다.

“2-2반 코우사카 호노카라고 합니다!”

……데자뷰?

“에루 군도 안녕!”

“아, 네, 안녕하세요.”

째릿, 가늘게 변한 회장의 눈이 나를 노려본다. 죄, 죄송합니다. 다시 고개를 돌려 질린다는 표정을 짓고선 묻는다.

“아침부터 뭐니?”

하지만 코우사카 선배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당당하게 말했다.

“강당의 사용 허가를 받고 싶어서요.”

“부활동과는 관계없이 학생은 강당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고 학생수첩에 적혀 있었습니다.”

“헤에… 그렇구나….”

“……에루 군.”

이번엔 부회장까지 합해 나를 쳐다보는 두 사람. ‘학생회 임원이면서 학생수첩의 내용도 아직 못 외웠니?’라는 한심한 눈길이다. 죄송하다구요! 그치만 신입생인데다 아직 1학년이고, 할 일도 많고, 바빠서 어쩔 수 없이……! 이 학생회, 왠지 나한테 차가운 것 같은 건 기분 탓일까….

“신입생 환영회 날의 방과 후 구마?”

“뭘 할 셈이야?”

어느 정도 예상이 간다. 회장도 마찬가지기에 저도 모르게 말투가 날카로워진 거겠지. 푸른 머리의 요조숙녀 선배가 주눅이 들어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그건….”하고 운을 뗐지만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녀를 대신해 코우사카 선배가 다시 앞으로 나섰다.

“라이브에요! 세 명이서 스쿨 아이돌을 결성했으니 그 첫 라이브를 강당에서 하기로 했어요.”

기분이 언짢은 학생회장 앞에서 주눅들지 않고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는 저 모습은 솔직하게 존경한다. 하지만 뒤의 두 사람은 코우사카 선배만큼 용기가 있진 않았나보다.

“호노카!”

“아직 될지 안 될지는 몰라….”

“에에~? 할 거야!”

“잠깐 기다려주세요! 아직 무대에 서는 건….”

서로 제각각 말하는 모습에 회장의 눈매가 더욱 가늘어졌다.

“할 수 있는 거니? 그런 팀워크로….”

“에? 괘, 괜찮아요.”

“신입생 환영회는 놀이가 아니야.”

“세 사람은 강당의 사용 허가를 받고 싶은 거재? 부활동도 아닌데 학생회가 내용까지 이러쿵저러쿵 말할 권리는 없다 안 카나?”

“그건…….”

일리가 있는 부회장의 말에 결국 승인 도장을 찍어주는 회장. 세 사람은 기쁜 얼굴로 학생회실 밖으로 달려나갔다.

“만세~!”

거기 복도라구요, 코우사카 선배.

“왜 저 애들 편을 드는 거야?”

이렇게 되는 게 당연하겠죠. 회장의 질타가 부회장에게 날아들었다. 사실 나도 부회장이 코우사카 선배들을 밀어주고 있다는 걸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우리들이 스쿨 아이돌이 되는 것은 이사장님께 막혀버렸으니, 코우사카 선배들에게 맡기려는 건지도 모르고, 아니면 다른 생각이 있는 지도 모른다.

부회장은 조금 뜸을 들이며 창가로 다가가 창문을 열었다. 봄 특유의 포근한 햇살 냄새가 방안에 가득해졌다.

“몇 번을 거듭해도, 그래 하라고 말한대이.”

회장의 시선이, 언제부터인지 책상 위에 올려져있는 타로 카드 쪽을 향한다.

“카드가.”

그리고 부회장의 말에 반응하듯, 학생회실 안으로 돌풍이 들이닥쳤다. 얌전하게 놓여있던 타로 카드가 사방에 날리고, 겨우 정리해뒀던 프린트마저 여기저기 흩어져버렸다.

“카드가 내게 그래 하라고 고한다, 안 카나!”

…………바람이 잦아든다. 나는 살짝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부회장.”

“무슨 일이가?”

“정리해놓은 거 엉망진창이 되었으니까, 일단 창문 좀 닫아주시겠어요?”

“아, 참…, 미안미안.”

부회장이 창문을 여는 바람에 프린트가 어질러져 생각보다 일이 늦게 끝났다. 홈룸 전에 끝나서 다행이지만. 다시 교실로 돌아오는 길, 문득 게시판을 보곤 쓴웃음을 지었다.

“폐교 공지인가….”

어떻게 해야 할지. 학생회로서는 이벤트가 열리기 전까진 완전히 외통이다. 손 쓸 도리가 없다. 하지만.

폐교 공지 바로 옆에 떡하니 붙어 있는 한 장의 종이. 굉장히 귀여운 손 그림, 손 글씨와 함께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하나의 정보. 그 종이를 쓰다듬고 있자니 어느새 입꼬리가 올라가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솔직하게 나와 같은 생각을 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그걸 정말로 추진한 용기에 놀랐다.

“역시 이것밖엔 없어.”

이사장님은 학생회가 스쿨 아이돌 활동을 하는 걸 반대하셨다. 하지만 스쿨 아이돌이라는 걸 밀어주고, 당장 취할 수 있는 방법이 이것밖에 없다고 부회장이 말했다. 부회장이 무얼 생각하든 그 세 사람을 밀어주고 있다는 것이다.

회장은 분명 세 사람이 유익한 학원 생활을 보내길 바라면서 반대하는 지도 모른다. 스쿨 아이돌을 설명할 때 구태여 말하지 않았지만 지금 시기에 스쿨 아이돌을 시작한다는 건 상당한 리스크를 부담한다. 일단 당연히 연습이나 라이브 때문에 본업인 공부에 지장이 가는 건 물론. 그렇게 되면 오토노키자카의 이미지만 나빠져 스쿨 아이돌을 시작한 목적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

애초에 오토노키자카에서 지금 이 시기에 스쿨 아이돌이 나오면 대부분의 반응은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폐교를 막기 위해 일어선 아이돌. 저렇게까지 해서 폐교를 막아야 할까? 학교는 지금 있는 학생들에게 더 잘해줄 것이지, 저런 걸 시키고 있담. 이런 식의 대화가 오가는 건 예상 가능하다. 여기서 어떻게 그 사람들을 끌어들이느냐. 즉, 노랫소리에 얼마나 마음이 담겨 있는가. 그 열정으로 팬층을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다. 회장이 걱정한 건 이 부분일 것이다. 다른 스쿨 아이돌보다도 허들이 훨씬 높다.

“하지만… 분명 앞으로 나아가는 용기도 필요해.”

코우사카 선배는, 그걸 가지고 있었다. 나는 이사장님께 반대당한 걸로 머뭇거리고 있을 뿐. 막무가내로 나아가는 용기는 아직 내겐 없는 것이었다.

 

오후 수업이 다 끝나 겨우 방과 후가 되었다. 설마 어제 방과 후에 말한 걸 벌써 잊어버렸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지만, 만약이라는 일도 있으니 나는 선생님이 나가자마자 곧장 행동으로 옮겼다.

“코이즈미.”

“아, 에루 군….”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엣, 하, 하지만 그런 건 역시 미안해서…….”

고개를 숙이고 우물쭈물하는 코이즈미. 코이즈미와 친구였다면 가벼운 기분으로 친구니까, 하고 말할 텐데.

“내 고마움의 표시니까. 사양하고 싶으면 괜찮아. 그냥 뭐, 남자라도 섬세한 마음을 갖고 있고, 고마움을 표하려는 마음을 거부당하면 조금 상처받는 달까… 아니, 정말 괜찮다구?”

이렇게까지 말하자 코이즈미는 우우, 하고 신음을 하며 진심으로 고민했다. 나 완전 찌질하다…. 코이즈미는 고민 끝에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효과는 제대로 들어가서 다행이네. 이래도 거절당했다면 진짜로 상처받았을 지도.

“그럼 조금만….”

“응. 비싸지 않은 걸로 부탁해.”

그런 대화를 나누며 가방을 챙기고서는 교실 밖으로 나온다.

“생각하는 거 있어? 햄버거라든가, 라면이라든가.”

“…하얀 쌀밥!”

“백반인가…. 근처에 맛있는 집이 있었나?”

“응! 한 곳, 알고 있어! 밥이 고슬고슬하고, 좋은 쌀을 써서 그런지 가만히 보고 있으면 윤기가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눈을 반짝거리며 설명하는 코이즈미가 너무 귀여워서 즐겁게 듣고 있는데, 갑자기 말소리가 뚝 끊겼다.

“코이즈미?”

“아이돌….”

뒤를 보자, 게시판에 붙여진 한 포스터에 눈을 빼앗긴 코이즈미가 보였다. 아, 코우사카 선배들의 라이브 공지구나. 아깐 그냥 슬쩍 보고 지나쳤지. 강당에서 라이브…, 아 코우사카 선배 곁에 있는 두 사람의 이름도 있네. 어디보자. 푸른 머리의 청초한 이미지를 가진 요조숙녀 선배가 우미 선배. 밤색 머리칼에 선배로 보이지 않는 귀여운 동안 외모, 들으면 치유되면서 녹아버릴 듯한 목소리를 지닌 선배가 코토리 선배. 하지만 이거 이름이지? 친하지도 않은데 가볍게 부르긴 좀….

어라? 자세히 보니까 아까랑 다른 것 같은…… ‘그룹 이름 모집’…떠넘긴 거냐!? 코이즈미의 상태를 보아하니 그룹 이름을 생각하는 건 아닐 테고.

“스쿨 아이돌 활동에 흥미 있어?”

“에? 아, 아니, 나는…….”

아무래도 정곡인 것 같지?

“코이즈미도 해보는 게 어때? 얼굴 귀엽지, 스타일 좋지. 목소리도 괜찮은 걸. 하겠다고 하면 진심을 다해 응원해줄게. 아마 선배들도 쌍수 들고 환영해줄 걸?”

인원 부족으로 고생하고 있는 모양이니까 말이지. 그리고 코이즈미가 아이돌에 적합하다는 건 겉치레가 아닌 진심이다. 소심한 성격만 고치면…, 아니, 반대로 스쿨 아이돌 활동을 하면서 자신의 성격을 적극적으로 바꿔나갈 수도 있는 거고.

“나, 같은 건…… 그…, 별로 어울리지 않아…….”

“그래? 나는 어울린다고 생각하는데. 예전부터 아이돌 하지 않은 게 이상할 정도로.”

칭찬을 너무 과하게 한 건지, 코이즈미가 갑자기 고개를 푹 숙였다. 반대로 풀 죽게 만든 건가? 그럴 생각은 없었는데….

“뭐, 결국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의 마음이니까. 코이즈미가 하기 싫다면 어쩔 수 없지만, 도전해보고 싶다면 망설이지 말고 언제든 해봐. 분명 잘 될 거야.”

“…응.”

“카요칭~!”

코이즈미를 달랬다 싶으니, 이번엔 활기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빼꼼, 복도 모퉁이에 머리카락이 살랑이면서 장난스러운 고양이 같은 얼굴의 호시조라가 뛰쳐나왔다.

“린쨩!?”

“무슨 일이야?”

“엣, 아, 으응, 아무것도 아니야.”

그리고 시선을 돌려, 나와 눈을 마주친다. 그러더니 깜짝 놀란 표정을 짓고는,

“에루 군도 있었다냥!?”

“…냥? 응, 있었어.”

“왜 두 사람이 함께 있는 거야?” 놀란 표정이 노려보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데이트!? 두, 두 사람은 역시 사귀는 거였다냥!”

왜 화내는 거야, 호시조라. 아직 코이즈미랑 그렇게 친하지도 않다고! 아니, 친해져도 사귈까 말까는 별개고, 일단 코이즈미의 의사도 중요하고, 나를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코이즈미가 나와 사귈 리가 없고….

“…그, 그냥 친구일 뿐이야! 진정해, 린쨩!”

“엣, 그런 거야?”

“어, 그랬어!?”

“에루 군이 왜 놀라는 거냥?! 봐, 역시!”

코이즈미가 나를 친구로 생각해주고 있었어!

“에, 에루 군, 린쨩한테 제대로 설명해줘!”

이야, 코이즈미와는 벌써 친구인 건가. 헤헤, 기쁘다.

기뻐하는 나와 코이즈미를 잡고 흔드는 호시조라.

“…흑, 누가 좀 도와줘~~!”

마치 혼돈 그 자체였다. 정신이 없는 상황에 완전히 기운이 빠진 코이즈미는 눈에 약간 눈물을 머금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고, 나와 호시조라가 정신을 차린 건 그로부터 약 10분 후였다.

나와 코이즈미의 설명을 들은 호시조라는, 겨우 의심의 눈을 거두고는 손을 번쩍 들고 말했다.

“그럼, 린도 같이 가겠다냐! 카요칭과 단 둘이 있게 하지 않을 테니까!”

조심스레 나를 올려다보는 코이즈미의 시선이 ‘같이 가도 괜찮아?’라고 묻는 것 같아 나는 웃음을 지었다. 이렇게 유쾌한 아이를 같이 데려가지 않으면 손해잖아. 게다가 난 코이즈미뿐 아니라, 호시조라와도 친구가 되고 싶었으니까.

“응, 가자.”

“린은 라면이 먹고 싶다냐!”

“에, 에엣…… 하, 하나요는 하얀 쌀밥이…….”

“으음, 그럼 라면과 쌀밥 둘 다!”

둘 다 먹을 수 있는 거냐. 왜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는 거야, 코이즈미? 그런데 라면도 제가 내는 건가요? ……뭐, 그렇겠죠.

나와 코이즈미, 호시조라는 가장 먼저 코이즈미가 말한 맛있는 밥집을 들르기로 했다. 대부분의 맛집은 아키하바라 거리에 모여 있지만, 지금 우리가 걷고 있는 곳은 아직 과거의 시간이 멈추어 있는 동네였다. 코이즈미가 말하길 몇십 년의 전통을 지닌 그곳은 노하우가 그대로 담겨 있는 밥이 나온다고 한다.

“쨘!”

확실히, 옛날부터 전통을 이어왔다고 말해주는 듯한 가옥의 생김새는 상당히 믿음직스러웠다. 음식점의 내부도 어딘가 향토적인 분위기가 풍겨 고급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이 그리운 느낌은 나쁘지 않았다.

“어서 오세요!”

코이즈미는 내게 작게 웃어 보이며 어떤 것이든 맛있다고 속삭였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초심자에게 권할만한 것은 무난한 오야코동. 불면 날아갈 것 같은 이슬 같은 밥알에 육즙이 골고루 스며들어 그 맛은 가히 천상의 맛이라고 한다. 코이즈미가 이 가게에서 마음에 들어 하는 TOP3의 하나라고…. 뭐, 가격도 저렴하고 맛은 코이즈미가 보장한다고 하니 나와 호시조라는 반강제로 오야코동을 먹게 되었다.

“저는 주먹밥 특 곱빼기로!”

“주문 받았습니다!”

“코이즈미, 너는 오야코동으로 하지 않는 거야?”

“맞다냥! 카요칭만 치사해!”

쯧쯧, 하고 집게손가락을 흔드는 코이즈미. 넌 밥과 관련되면 정말 어디까지든 이미지가 바뀌는구나. 아직도 놀랄만한 면이 있다니.

“오야코동은 확실히 맛있어요. 이곳의 오야코동은 일품이예요. 하지만! 하지만 진정한 밥을 느끼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가장 밥의 맛을 느끼기에 특화된 주먹밥을 먹을 필요가 있어요! 주먹밥이야말로 최고의 음식이에요!”

“틀려! 최고의 음식은 라면이다냥!”

“우읏…, 린쨩이라도 이건 양보 안 할 테니까?”

그렇게 두 사람은 고작 밥이 나오기까지 몇 분 사이에, 라면과 밥을 수만의 말로 찬미하며 엄청난 공방을 벌였다. 주문한 게 나오지 않았다면 이거 계속 했을 지도……. 밥이나 먹자.

한 입을 크게 먹고, 눈이 저절로 커졌다. 전혀 찐득하지 않고 입 안을 굴러다니는 밥알들이, 달콤하게 섞인 고기의 육즙과 뜨거운 계란과 소스를 입안 전체에 퍼지도록 했다. 고기는 부드러워, 씹는 감각이 튀지 않아 척척 조화를 이룬다. 밥을 먹는 게 아니라, 밥을 마시는 느낌이라고 하면 이해할 수 있을까? 거기에 양심적인 양. 한참 먹을 때인 고등학생 남자가 한 그릇으로 포만감을 얻을 수 있을 정도였다. 호시조라도 만족했는지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이제 라면의 훌륭함을 알려줄 때가 왔다냐~!”

왜 논리가 그쪽으로 귀결 되는가는 둘째 치고, 나 지금 엄청나게 배부른데? 거기에 두 사람은 라면을 더 먹겠다고? 허….

“라면은 다른 배다냥!”

호시조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늘어놓으면서 나와 하나요의 손목을 꽉 잡고는 라면가게를 향했다. 돈은 미리 테이블 위에 올려놨으니 괜찮겠지…?

라면가게는 가게를 나와 (호시조라의 속도로)1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었다. 거침없이 문을 열어 들어가는 호시조라.

“저기, 나 진짜 배부른데?”

“응? 라면과 밥은 별개다냐?”

“너만 그렇다고!”

“…에?”

“…코이즈미도!? 둘 다 얼마나 먹는 거야….”

“아, 아니, 그건, 우으…….”

두 사람 다, 먹는 양은 나보다 많은데 살 안 찌는 걸까? 보통 걱정하지 않아?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지만…. 어쨌든 여자아이에게 이런 말을 하는 건 실례지.

“농담이야. 성장기니까, 많이 먹으면 좋지. 난 충분하니까 둘이 먹어. 너무 신경 쓰지 말구.”

“그, 그건 조금 미안하다고 할까….”

“맞아! 그리고 카요칭의 밥만 맛보다니 치사하다냐! 라면도 제대로 맛 봐줬으면 좋겠다냐!”

호시조라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이 추천하는 라면을 세 개 주문했다. 주방장 아저씨가 호시조라와 친분이 있는지 무어라 서로 사이좋게 얘기한다. 그리고 나온 라면은 절체절명이란 말이 생각날 정도로 절망적인 양이었다.

“나, 난 여기서 나가야겠어!”

“냥? 들어올 땐 마음대로였겠지만, 나갈 땐 아니다냥! 앉아서 먹는거다냥!”

화내는 것처럼도 보이는 호시조라의 열정에 밀려, 평소보다 2배의 시간을 들이면서까지 어떻게든 라면을 뱃속에 채워 넣었다. 처음엔 호시조라가 멋대로 주문해준 것이 납득 갈만큼 맛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배가 부르면 맛있는 것도 보기 싫어지는 법. 도중부터는 혀와 위장에 감각이 없어져 내가 라면을 먹고 있는 건지조차 모를 지경에 이르렀다.

“후우, 만족, 만족!”

“…응! 린쨩이 말한 대로 정말 맛있었어!”

쓰러지기 직전인 내 몸 상태와는 정반대로, 웃으며 얘기하는 두 사람. 진심으로 무섭다고 생각했다.

“자, 이제 소화도 시킬 겸 게임 센터로 GO다냥!”

네? “에?”

내 마음속의 소리와 코이즈미의 목소리가 겹쳤다. 당연하지. 당장 움직이는 건 어떻게든 기합으로 되겠지만, 게임 센터까지 가도 돈이 없다. 이래봬도 6인분의 음식 값을 낸 거라고. 집을 나올 때 가져온 돈이 있다곤 해도 절약하지 않으면 위험하다. 아직 아르바이트도 못 구했고 말이야.

이런 내 마음을 꿰뚫어 본 건지 몰라도, 호시조라가 의외로 기특한 의견을 꺼냈다.

“지금까지 에루 군한테 얻어먹었잖아? 너무 얻어먹은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그 만회를 조금….”

아하. 요컨대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있다는 걸까나. 같은 나이로서 이런 말을 하면 안 되겠지만, 볼을 살짝 긁으며 말을 흐리는 호시조라가 어쩐지 대견스럽게 느껴졌다. 호시조라와 친했다면 나도 모르게 머리를 쓰다듬었겠지, 이거.

호시조라의 말을 들은 코이즈미는 아, 하고는 밝은 얼굴로 찬성했다.

“…응! 에루 군, 이번엔 나와 린쨩이 부담할 테니까, 마음껏 즐겨주세요.”

그런데 나 분명 답례가 하고 싶어서 밥을 쏜 건데, 이렇게 되면 다시 플러스마이너스 제로 아냐? 딱히 미안함을 느낄 필요는 없지만, 두 사람이 그렇게 하고 싶다니까 거절은 안 할 건데?

“거절 선택지는 처음부터 없다냐! 그럼, 렛츠 고!”

“…리, 린쨩! 너무 당기지 말아줘~!”

“얘, 얘들아! 잠, 호시조라, 코이즈미, 조금만 천천히! 나 아직 움직이기 힘들다고!”

“풉, 에루 군, 엄청 한심하다냐~ 남자 주제에~.”

“남녀차별은 반대합니다!”

Love Live!

 

발걸음을 돌려 아키하바라에 도착한 우리들. 방과 후라 그런지 역시 게임 센터엔 사람이 바글댔다.

“미아가 되지 않도록 너무 돌아다니진….”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호시조라는 코이즈미의 손목을 이끌곤 인파 사이를 뛰쳐나갔다. 마치 장난감 가게에 온 어린아이 같이, 얼굴엔 미소와 기대감이 한가득 부풀어 있었다. 코이즈미는 호시조라완 다르게 얼굴에 다 드러나진 않았지만, 눈이 빛나고 있는 걸 보아 즐길 생각으로 가득 차있는 듯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인가. 내 입가에 번진 미소를 눈치 채기 까지 시간은 걸리지 않았다.

“어이, 호시조라! 가뜩이나 무일푼인데, 버리고 가면 어떻게 해!”

“에루 군도 얼른 따라오라냥~!”

“알고 있어!”

두 사람과 함께 게임 센터 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둘러보았다. 그래봤자 나는 두 사람의 뒤를 따라다녔을 뿐이지만. 그것도 그런 게, 게임 센터는 어렸을 적 이후로 처음 와본단 말이지. 예전에 했던 격투 게임도 이제는 이름만 남아있을 뿐, 그래픽이나 음향, 캐릭터도 전부 바뀌었다. 게임 센터는, 내가 모르는 것들로 가득했다.

사격, 비디오 게임, 리듬 게임, 카드 게임, 코인 게임 등. 호시조라는 어떤 게임을 할지 망설였다. 그런 와중에 코이즈미의 시선은 크레인 게임, 소위 UFO캐쳐라고 불리는 인형 뽑기에 못이 박혀있었다.

크레인 게임의 유리판 너머로는 갈색 줄무늬와 흰색 줄무늬가 대조를 이루는 나른한 표정의 고양이 인형이나, 안대를 하고 있는 사나운 눈길의 판다곰, 개뼈다귀를 무기처럼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 강아지 같은 묘한 생물(?)이 주를 이루었다. 그 안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인형은 밥이었다.

응?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밥이다, 밥. 옅은 초록색 그릇에 꽃이 자수되어 있고, 그 위로는 하얀색 밥알이 쓸데없이 굉장한 퀄리티로 완성되어 있는 밥의 인형. 그리고 코이즈미는 크레인 게임, 정확히는 이 밥 인형에서 눈을 뗄 줄 몰랐다. 이야, 굉장히 알기 쉬운 성격이구나, 코이즈미. 정신이 팔려 있는 코이즈미 몰래 호시조라에게 다가가 속삭였다.

“호시조라, 호시조라.”

“응? 무슨 일이냥?”

“코이즈미 봐봐. UFO캐쳐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내 말에 코이즈미에게로 시선을 옮기는 호시조라. 그리고는 풉, 하고 웃음을 터뜨린다.

“카요칭, 너무 귀엽다냥~! 좋았어! 있잖아, 카요칭! 그렇게 마음에 들면 한 번 해보는 건 어때~?”

“에, 엣?! 아, 아니, 나는, 그게, 우으…….”

호시조라가 부추기고, 나는 옆에서 그걸 돕는다.

“마음에 들었잖아? 한 번 해봐. 잘 안 되면 우리도 도울 테니까.”

등을 떠밀린 코이즈미는 작게 주먹을 쥐고선 응,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난 해본 적 없어서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진 않지만. 어쨌든 게임이니까, 가벼운 마음으로 하면 적당히 손에 들어오겠지.

……그리고 쓴웃음을 짓는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두 여자 동급생. 제 3자의 입장에서 본 나는 어떤 모습이려나. 각설하고, 말할 것도 없겠지만 코이즈미와 호시조라는 UFO캐쳐에서 밥 인형을 꺼내는 데에 실패했다. 철저하게, 완벽하게 깨져버렸다. 이래도 되는 건가 싶은 정도로 두 사람에겐 게임의 재능이 없었다.

처음엔 코이즈미가 한 번, 두 번 실패하고,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호시조라가 웃으며 대타로 들어갔지만 그마저도 좌절되었다. 나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고 극구 사양. 결국 아무도 성공하지 못한 채 이 지경에 이르렀다.

“우으, 마지막으로,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도박에 중독된다는 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전혀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서 깨달았다.

“리, 린쨩…, 나는 괜찮아. 이제 그만하자, 응?”

한 번 더 실패하면 우린 오락실에서 다른 오락은 보지도 못한 채 나가게 된다. 그것을 알고 있는 코이즈미는 어떻게든 호시조라를 말려보려고 했지만, 호시조라는 단호했다.

“그럼 딱 한 번. 마지막으로! 아직 에루 군이 못 해봤으니까, 에루 군이 하는 걸로! 어때?”

“어엇, 나? 내가 해도 괜찮은 거야? 마지막 찬스인데?”

“응! 그걸로 타협본 거니까 괜찮다냐! 자, 어서! ……아, 동전이 다 떨어졌네.”

주머니를 뒤지던 호시조라의 텐션이 낮아지는 게 보였다. 감정의 기복이 확실히 드러나 보는 사람은 상당히 즐겁다. 고양이를 닮았다고 할까. 전에 아키하바라의 상점에서 뇌파에 따라 움직이는 고양이귀를 본 것 같은데…, 그거 달았다면 축 쳐졌겠지, 지금. 상당히 귀여울 것 같다. 발견하면 꼭 선물해줘야지.

“내가 바꿔올 테니까.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

“응!”

“조, 조심해서 다녀와. 사람 많으니까….”

생각보다 사람이 많으니까, 부딪치거나 그러면 확실히 사상자가 생기겠지. 코이즈미 말대로 조심해서 환전 기계까지 도착했다. 각 층마다 환전 기계가 있었고, 물론 인형 뽑기가 있는 이 2층 또한 말할 것도 없다. 오히려 이곳은 두 개의 환전 기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행렬을 이루고 있었다.

“이런…. 조금 기다려야 할 것 같은데.”

낭패다. 다른 층으로 갈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벌써 뒤에는 줄이 생겼다. 앞뒤, 양옆으로 공간이 막혀버렸다. 기다려봐야 7분 정도겠지만…, 두 사람이 지루해하진 않을까 걱정이다. 특히 호시조라. 괜찮을라나?

 

정확히 7분. 환전 기계 앞에 도착한 나는 돈을 바꾼 뒤 급하게 뛰어갔다. 벌써부터 호시조라에게 한 소리 들을 것을 생각하고 간 탓일까, 멀리서 호시조라의 높은 목소리가 들렸다. 이런, 큰일이다. 호시조라에게 뭐라고 사과한담…. 조금 주눅이 들어 발걸음을 옮기자, 호시조라와 코이즈미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낌새가 이상했다. 아무래도 호시조라가 소리친 대상은 아무래도 내가 아닌 것 같았다. 호시조라의 뒤에 숨어 벌벌 떨면서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은 코이즈미, 그리고 그 앞을 가로막듯 서있으면서도, 무서운 건 어쩔 수 없는지 떨리는 몸을 애써 감추려 입술을 꽉 깨물고 있는 호시조라. 그 앞에 껄렁하게 생긴 남자 두 명. 딱 봐도 심상치 않은 상황임은 확실했다.

“마침 2:2니까 잘 됐네. 응? 우리랑 같이 놀자.”

“건들지 마! 카요칭에게 손가락 하나라도 댔다간, 정말로 물어뜯을 거다냥!”

“냥? 풉, 겉모습은 보이시한 주제에 꽤나 귀여운 말투를 쓰잖아. 나 이런 거 상당히 취미라고. 이런 애들이 침대 위에서는 진지한 말투로 ‘상냥하게 해줘.’라는 모습이 말이야.”

“무, 무슨…, 귀, 귀엽지 않아! 얼른 비켜!”

“리, 린쨩, 너무 화나게 하면….”

“응. 너무 화나게 하면 못쓰지. 너도 즐기고 싶어서 게임 센터에 온 거잖아? 같이 즐기자고. 밥도 같이 먹으면 맛있고, 게임도 같이 하면 즐겁고. 그렇지?”

“놔! 카요칭에게도 손대지 마!”

“우, 우으, 누, 누가…….”

코이즈미에게 더러운 시선을 보내면서 싱긋 웃는 피어싱한 남자. 강제로 호시조라의 손목을 잡고는 혀로 핥는 듯 몸 전체를 훑어보는 붉은 머리의 남자. 호시조라의 얼굴에는 혐오의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처음으로 오토노키에서 사귄 친구들이다.

반 아이들이 말 걸기를 꺼려하는 분위기 속에서도 호시조라는 내게 스스럼없이 대해주었다. 호시조라와도 금방 친구가 될 수 있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를 어려워하면서도, 나와 친해지려고 노력하고, 친구라고 말해준 코이즈미. 멋대로 코이즈미에게서 망설이기보단, 생각하기보단 나아가야 한다는 행동력을 배웠다.

두 사람 다 나를 받쳐준, 은인이나 마찬가지다.

주먹을 꽉 쥐고, 뒤돌아선다. 감정에 일을 맡겼다간 되는 일도 되지 않는 법. 나는 근처의 점원을 찾아 신고를 한 뒤, 다시 두 사람에게 뛰어갔다.

“린, 하나요!”

“에, 에루 군?!”

“응? 넌 뭐야?”

가시 돋친 시선이 날아드는 건 당연한 일. 나는 애써 웃음으로 무마하며 호시조라의 손을 잡은 남자의 손을 떼어 놓고, 코이즈미에게서도 남자를 떨어뜨렸다.

“죄송한데, 이 아이들은 제 친척이거든요. 게임 센터를 가고 싶다 길래 데려 왔는데, 사람이 많아 길을 잃었네요. 지금까지 저 대신 봐주신 거죠? 고맙습니다. 가자, 린, 하나요.”

“엣, 잠….”

“에루 군…….”

호시조라와 코이즈미를 억지로 끌고 가려했지만,

“잠깐 기다려. 지금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장난 하는 게 아니지. 나도 속으로는 엄청나게 무섭다고. 역시 쉽게 될 리는 없지. 하지만 수는 준비해두었다. 마침, 아까 내 신고를 받은 점원이 여러 명을 데리고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아, 점원 씨! 여기에요, 여기. 친척 찾았어요!”

“점원…?”

“쳇, 꼬였네. 야, 그냥 가자.”

“쯧, 아, 짜증나네. 다음에 보면…….”

통렬하게 혀를 찬 두 양아치는 몸을 돌려 우리의 반대편으로 사라졌다. 나는 호시조라와 코이즈미의 팔을 이끌고 조금 더 걸어 이야기하기 편한, 조금 한적한 곳으로 이동했다.

“…………후아아아아아, 진짜 쫄았다아아아!”

한숨을 내쉬며 나온 내 첫 마디는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진심인 걸, 뭐 어떡해. 호시조라는 이 상황이 조금 못마땅했는지 볼을 부풀리곤 뾰로통한 표정을 지었다.

“에루 군, 남자답지 못하다냥….”

“아니, 그게… 나도 좀 무서웠다고 할까….”

“린의 백마 탄 왕자님은 멋지게 달려와서 한 방 먹여줬을 텐데!”

누구야, 그게.

“린쨩! 도와준 에루 군에게 그런 말 하면 안 돼. …에루 군, 고마워.”

상냥하게 웃어주는 코이즈미. 아뇨아뇨, 호시조라의 말대로 멋있게 구해주지 못해 제 쪽이 미안할 따름입니다. 코이즈미의 커버에도, 호시조라는 표정을 풀지 않았다.

“갑자기 이름으로 부르고….”

그건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렇게 친하지도 않은데 갑자기 이름을 불러서 정말 죄송합니닷!

“…응, 그건 나도 깜짝 놀라버렸어.”

“미안해. 갑자기 기분 나빴지? 그게, 변명을 하자면 호시조라와 코이즈미는 이름으로 쓰지 않잖아? 하지만 친척간인데 이름으로 안 부르면 이상할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미안, 두 사람 다.”

“아, 아냐! 기, 기분 나쁘다든가 그런 게 아니야…. 그냥 조금 부끄러웠다고 할까…, 갑자기 불려서 놀랐다고 할까……. 하지만 기분 나쁘진 않았으니까, 사과할 필욘 없어.”

“린은 린이라고 불러도 상관 없다냥? 친구이고!”

“어, 친구?”

호시조라에게 친구로 인정받았다, 야호!

“응, 친구!”

친구라는 어감이 이렇게나 좋은 것이었다니…. 아, 아니야. 난 친구가 없었던 게 아니라고. 어릴 때부터 영재교육 때문에 차로 학교를 다녀서 놀 사람이 없었던 것뿐이니까. 반에서 짝꿍이랑 자주 말도 했다고!

“하지만, 봐. 난 반에서 조금 그런 취급 받으니까…. 그런 애한테 갑자기 이름으로 불리면 좀 그렇잖아?”

“응? 그런 취급이랑 좀 그렇다는 게 뭐가 그렇다는 거다냥?”

고개를 갸웃하는 호시조라. 정말로 모르는 눈치다. 코이즈미가 쓴웃음을 지으며 호시조라에게 설명했다.

“그, 에루 군은 반에서 한 명밖에 없는 남자니까 모두들 거리를 두는 분위기잖아, 린쨩. 그런데 갑자기 반에서 린쨩이랑 에루 군이 서로 이름으로 부르면 모두들 어떻게 생각하겠어? 조, 조금 특별한 관계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특별한, 관계?”

“예, 예를 들어…… 그…… 남자친구…… 라거나….”

저기, 코이즈미 양? 전혀 그런 의도는 없었는데요?! 갑자기 이름으로 불리면 다들 호시조라한테도 같이 거리를 두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밖엔 없었는데요?! 가뜩이나 반에서도 친화감 넘버 1인데, 시선이 바뀌면 호시조라도 큰일이니까…. 하지만 내 의도를 전혀 파악할 낌새도 없이, 호시조라는 곰곰이 코이즈미의 말을 생각하더니 얼굴을 빨갛게 물들였다.

“냐, 냥!? 무, 무슨 소리다냥! 에루 군과 린이 서로 연인 사이라니, 그거야말로 말도 안 된다냥! 그, 리, 린은 전혀 귀엽지도 않고! 남자아이 같고! 남자친구라니, 린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냥! 오히려 카요칭이 에루 군의 여자친구라고 생각되는 거 아니냥?! 카요칭이 더 귀여우니까!”

“에, 에에에~? 나, 나는 그, 어, 엄청 소심하고, 여자로서 매력도 없고, 예쁘지도 않고, 목소리도 작고 또, 또…….”

왜 갑자기 자기비하 시간이 시작된 겁니까. 그보다 요점은 거기가 아니고.

“둘 다 진정해. 내 말은, 난 반에서 조금 겉도니까, 두 사람도 그런 겉도는 애와 친해지면 같이 겉도는 게 아닌가, 그런 말이었다고. 게다가 너희 둘 다 여자로서 매력은 충분한 거 아냐?”

“…엣?”

동시에 놀라는 코이즈미와 호시조라. 야, 진짜로 자기 자신을 그렇게 생각했던 거냐.

“그런 녀석들이였지만, 어쨌든 헌팅을 받았잖아? 그건 실제로 대단한 일이라고. 웬만하면 헌팅 같은 건 한 번도 못 받는 사람도 있으니까. 두 사람이 충분히 귀엽고, 예쁘고, 매력적이니까 헌팅 받은 거라고 생각해. 뭐, 저 녀석들은 노는 것 이외에 다른 게 목적이었을 것 같다만. 적어도 나는 순수하게, 코이즈미와 호시조라가 예쁘다고 생각하는 걸.”

“……………….”

“우으………….”

갑자기 얼굴을 가리면서 뒤를 돌아보는 두 사람. 그러더니 나를 빼놓고서 속닥거리기 시작했다.

“저건 분명 자각하고 하는 말이 아니다냥….

“…응. 그래서 더 진심이라는 게 느껴져서… 우으…… 부끄러워어어…….”

“린은 그렇게 귀엽지 않은데……. 그치만 진심이 담긴 말을 들어버리면….”

“저기요~? 나 여기서도 왕따 당하는 건가….”

조금 풀 죽을 뻔했지만, 다시 돌아서는 두 사람. 조명 때문인지, 두 사람의 얼굴은 좀 전보다 확실히 빨개져있었다. 응? 조명 탓인가, 이거?

“둘 다, 얼굴이 빨간데? 갑자기 감기에 걸린 건 아닐 테고….”

“조, 조, 조명 탓이다냥!”

“으, 으응! 마, 맞아! 조명 탓이야! 그것보다 어서 놀자, 응?!”

두 사람에게 밀려 다시 게임들이 즐비한 곳으로 돌아갔다. 인형 뽑기는 빙산의 일각. 우리는 본격적으로 게임을 순회하기 시작했다.

 

 

“이건 어때?”

둘러보는 도중, 호시조라가 무언가를 발견하곤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커다란 비디오 화면에 징그럽게 생긴 좀비들이 여럿 나와 플레이어를 향해 돌진한다. 플레이어는 게임기와 이어져 있는 총으로 좀비를 쏘며 앞으로 나아가는 비디오 게임이었다. 게임과는 거리를 두고 살아와서 굉장히 신선하게 다가왔다.

“재, 재미있어 보여!”

“그렇지? 그렇지!?”

호시조라와 의기투합! 손을 마주치고 하이터치하며 웃는 나와 호시조라에 반해 옆에서 코이즈미가 음울한 오라를 풍기며 슬금슬금 뒤로 빼고 있었다. 얼굴에서 배어나오는 땀은 당황했다고 대놓고 선전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나와 호시조라는 서로를 몇 초간 마주보고는…… 동시에 장난기 가득한 사악한 웃음을 지었다.

“그럼 선두 타자!”

“카요칭이다냐~!”

“에, 에에에에~! 시, 싫어, 이런 거! 나, 무서운 건……! 게다가 이거 처음이라구~!”

눈물을 머금고 결단코 거부하는 코이즈미. 하지만 호시조라는 신경도 쓰지 않고 코이즈미에게 억지로 총을 쥐었다. 그리고 나는 코인을 집어 넣으며 싱긋 웃었다.

“걱정마, 코이즈미. 죽을 땐 함께야. 나도 이 게임 처음이니까.”

“더 싫어어어어어어어~!”

STAGE 1도 클리어하기 전에 라이프가 점점 줄어가는 나와는 다르게, 코이즈미는 눈을 감고 쏘는데도 불구하고 앞에 있는 좀비를 전부 쓰러뜨려 라이프는 나보다도 훨씬 많았다.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는 게 이런 거구나.

필사즉생 필생즉사의 정신으로 이 게임은 코이즈미의 독무대가 되었다. 도중부터 호시조라와 바꾸어 구경했지만, 호시조라조차 코이즈미의 점수를 따라가진 못했다. 게다가 상당히 어려운 스테이지에선 운동신경이 좋은 호시조라조차 반응을 놓쳐 라이프가 줄어들었다.

……코이즈미, 여러 가지 의미로 대단하다, 진짜. 코이즈미의 폭주는 마지막 스테이지의 보스를 처치하고 나서야 겨우 끝났다. 신기록 갱신이라니, 이래도 되는 거야? 오늘 처음 하는 초보자가 눈 감고, 겁에 질린 채로 막 쏴서 기록 갱신할 정도라니… 아니, 그럴 리가 없잖아. 어떻게 봐도 코이즈미의 재능이 비정상적인 것이다. 같이 한 내가 보증한다. 이거 절대 초보자가 못 깨.

무서워했음에도 불구하고 고득점을 따낸 코이즈미는, 우리가 장난 쳤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눈을 가늘게 뜨고 삐쳤다는 듯 양 볼을 부풀렸다. 가뜩이나 만지면 부드러울 것 같은 코이즈미의 볼이 찰떡같이 변해, 보는 이로 하여금 만지고 싶은 정도가 아닌 빨고 싶다고 생각하게 될 정도로…… 무슨 소리야! 어쨌든 삐친 코이즈미에게 게임 선택권을 양보해, 다음 게임은 조금 수수한 퀴즈 게임이 되었다.

제목은 스쿨 아이돌 퀴즈 아카데미! ~전국 편~.

이러면 꼭 스쿨 아이돌끼리 전국에서 싸우는 것 같잖아. 여러 가지 마음이 하나로 모인 전국 대회. 어떤 아이는 언니를 만나기 위해, 어떤 아이는 어릴 때 헤어진 친구와의 약속을 위해, 어떤 아이는 고교 생활 마지막 인터 하이를 위해. 괴물들이 잔뜩 모일 것 같다. 평범한 사람이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스쿨 아이돌에 인터 하이가 있을 리 없잖아.

장난은 이쯤하고. 아무래도 호시조라에겐 특별히 관심이 없는 분야였나 보다. 퀴즈가 다 나오기 전에 벌써 태세를 잡고 있는 코이즈미를 시큰둥하게 쳐다본다.

“나도 전문지식이 있는 건 아니지만, 즐길 만큼 즐기자고, 호시조라.”

“부우.”

팀은 다시 나와 호시조라. 코이즈미가 혼자인 2:1 구도가 되었다. 뭐, 당연한 거겠지. 대결 방식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이길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니까. 하지만 즐기겠어. 즐기는 자가 승리한 거니까! 나도 앞으로 숙여, 얼른 버튼을 누를 수 있는 위치에 섰다. 이윽고 게임기에서 음성으로 문제가 흘러나왔다.

[첫 번째 문제. 도쿄의 대표적인 스쿨 아이…]

딩동!

빠르다고! 아직 문제의 절반도 안 나온 것 같은데!?

“정답! A-RISE!”

[정답입니다!]

정답인 거냐고! 잘못 생각했다. 코이즈미 상대로 즐길 수 있을 리 없잖아! 일방적이라는 걸 알고 있는 게임은 더 이상 게임이 아니다. 학살이야! 그러나 코이즈미는 웃으면서 버튼을 연타해댔다.

“미드나이트 캣츠!”

[정답입니다!]

“닌자!”

[정답입니다!]

“Private Wars!”

[정답입니다!]

“2인조!”

[정답입니다!]

“………죄송합니다만, 코이즈미 양! 저희의 패배이옵니다! 그러니까 제발 다른 게임 좀…!”

“…엣, 나…… 아……, 미, 미안!”

정신없이 정답을 맞추어나가던 코이즈미가 나의 절에 눈을 떴다. 즐기고 있던 게 자신뿐이었다는 걸 눈치 챈 거겠지.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연신 고개를 숙이는 코이즈미. 뭐, 이성을 잃을 정도로 즐겼을 테니 그걸로 됐어. 게임 센터엔 다른 게임도 아직 많으니까. 다른 것도 즐기면 되는 거잖아.

“괜찮아. 아! 저거 재밌을 것 같지 않아?”

이번에 내가 찾아낸 건 북이 달려 있는 리듬 게임. 내려오는 노트에 맞춰 북을 치는 심플한 게임이다. 난이도가 낮은 것도 제법 있어, 초심자가 하기에도 괜찮아 보인다. 스쿨 아이돌뿐 아니라, 현재 활동하고 있는 아이돌. 그리고 게임 음악까지도 폭 넓게 수렴하고 있어 코이즈미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지 않을까.

“후후, 설마 운동신경으로 판가름이 나는 게임을 고를 줄이야. 에루 군은 린을 얕봐도 너무 얕봤다냥!”

“언제부터 승부가 되어버린 거야…. 코이즈미, 너무 신경 쓰지 말고 나름대로 즐기면 돼.”

“으, 응.”

이외에도 몸을 움직여서 하는 어트랙션 게임, 슈팅 게임, 액션 게임까지. 완전히 섭렵했을 쯤엔 이미 해도 저 멀리 스러져 희미한 빛만이 세계를 비추고 있었다.

“하아, 잘 놀았다.”

“응…. 하지만 시간도 시간이고, 이제 슬슬 돌아가지 않으면….”

“린은 조금 아쉽다냐~.”

“그렇게 놀아놓고!?”

이렇게 말했지만, 코이즈미도, 나도 마찬가지다. 감추려 해도, 미소가 씁쓸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엄청나게 즐거웠으니까. 즐거운 시간이 끝나는 건 슬픈 일이다. 반대로 짧은 시간이기에 즐겁다는 의견도 있지만.

셋 다 쉽사리 걸음을 떼지 못했다. 한 걸음만 더 가면, 게임 센터의 밖인데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들은 다 함께 입을 열었다.

“““마지막으로….”””

풉. 동시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자 우리는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더 하기로 했다. 게임 센터의 가장 위층으로 올라, 안쪽으로 들어간다.

“스티커 사진이라는 거다냥.”

두 사람을 따라 들어가자, 막이 쳐져 있는 네모난 부스가 여러 곳에 설치되어 있었고, 이 층에 있는 손님들은 80% 커플, 19%는 여성끼리였다. 1%는 나와 코이즈미, 호시조라 같은 친구. 이런 분위기는 처음인지라 머뭇거리며 요리조리 둘러보던 나를 끌고서, 두 사람은 부스를 하나 골라 들어갔다.

안쪽은 심플했다. 사진기가 있고, 밑의 액정화면에 사진기에서 비친 것이 그대로 나온다. 옆에 있는 펜은 아무래도 사진을 꾸밀 수 있는 도구 같았다.

“자, 찍는다냥?”

“…응!”

“버, 벌써?!”

사진기에서 귀여운 음성이 흘러나온다.

[준비~! 하나, 둘, 셋! 피스!]

당황한 채로 포즈를 잡는다. 내 왼쪽에는 코이즈미가 상냥하게 웃으며 피스를 그리고 있었고, 오른쪽에는 호시조라가 즐겁게 웃으며 하늘 높이 손을 뻗고 있었다.

[이제 예쁘게 꾸며주세요!]

“되, 된 건가?”

“응! 린이 꾸며준다냥!”

총 9장의 사진이 나와, 한 장 한 장마다 여러 가지로 꾸밀 수 있게끔 되어 있다. 린은 능숙한 움직임으로 펜을 움직여 별이라든가, 하트를 그려 넣고 직접 글씨를 써 넣었다.

호시조라에게 받은 사진 하나하나엔 전부 다른 코멘트가 쓰여 있었다.

‘친☆구!’ ‘카요칭X린X에루!’ ‘1학년 단짝!’

단짝…, 인가.

“아아~ 에루 군 얼굴이 음흉하다냥! 음흉하게 웃고 있다냥!”

“음흉하지 않거든! 그냥 조금… 저기 해서 그래.”

“…엣? 저기라니?”

어물쩍 넘기려고 했지만, 코이즈미는 악의가 없이 순수하게 파고들어왔다. 으으, 대답 안 해주면 내가 진짜 음흉하게 웃은 꼴이 되잖아.

“……기쁘…다고…. 아무래도 여자만 있는 반에 남자가 나 하나다 보니까 친구 만들기는 글렀다고 생각했거든. 다가오기 어려웠을 텐데도, 친구가 되어주어서 정말 고마워. 아, 정말…….”

점점 이런 말을 하는 게 낯부끄러워져 나는 살짝 고개를 돌렸다. 지금 난 어떤 얼굴을 하고 있으려나.

“남자한테 이런 말 시키지 말라고… 부끄럽게….”

코이즈미와 호시조라는 부끄러워하는 나를 보면서 옅은 웃음을 지었다.

“으응. 나야말로 에루 군 같은 멋진 사람과 친구가 되어서 기뻐.”

“후훗,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냐?”

포근한 미소가 마음을 맴돌았다. 누군가를 위해 이렇게 웃어줄 수 있는 사람과 친구가 되어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그건 그렇고. 에루 군, 방금 엄청나게 귀여웠다냐!”

“무, 슨……!”

“…응. 에루 군, 귀여웠어.”

코이즈미까지! …역시 말하지 말 걸 그랬다!

“빨리 나가자!”

“당황해하는 에루 군도 귀엽다냐~!”

나와 호시조라, 코이즈미는 게임 센터를 나와 걷기 시작했다. 사람이 왕래하는 번화가를 지나, 조금씩 인파가 줄어드는 거리로 접어들었더니, 곧 주위가 전통가옥으로 된 우리들의 거리에 도착했다. 여기까지 어느 정도 거리가 있었지만, 정신없이 얘기하다보니 시간 가는 줄조차 몰랐다.

갈림길. 코이즈미와 호시조라가 멈추어 섰다.

“그럼, 여기서.”

“…에루 군. 내일 봐.”

두 사람은 집이 같은 방향, 나는 여기서 꺾어 들어가야 했다. 순간 바래다줄까 생각했지만 역시 그만두었다. 부회장이 말했던 대로 이 거리엔 위험한 사람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걸 떠나서, 친구란 갈림길에서 서로 마주보고 웃으며 ‘내일 봐’라는 인사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내일 만나, 또 함께 걷는 것이 친구다. 바래다주는 건 눈치가 없는 짓이겠지.

나도 두 사람에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응. 내일 보자.”

이쪽에 와서, 이렇게 좋은 시간을 가진 건 처음이구나. 뭐, 도중부터는 나도 돈을 내기 시작해서 이젠 빈털터리가 되었지만…. 그러고 보니 슬슬 통장 잔고도 위험하다. 그 말은 내 생활에 적색경보가 울린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정말 아르바이트 구해야겠는 걸. 어쩌지? 누군가 좋은 자리를 알고 있다면 좋을 텐데…. 아니, 일단 지금 생각하는 건 그만두자.

신나게 놀면 논만큼, 그 시간이 끝나면 엄청난 피곤함이 반동해서 몰려온다. 집에 들어가는 것만 생각하자. 그리고 푹신한 침대에 몸을 묻고, 꿀 맛 같은 잠을 즐긴다. 완벽하다. 아르바이트는 내일 생각하는 걸로.

그렇게 나는 얼른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Love Live!

 

코이즈미, 호시조라와 놀고 난 이튿날 방과 후. 오늘은 청소당번을 맡게 되었다. 기다리겠다는 코이즈미와 호시조라에게 학생회 일이 있다며 얼른 집으로 보내고, 나와 함께 청소당번을 맡게 되어 어색한 반 친구(라고 하기엔 대화도 나눠본 적이 없는) 아이를 위해 재빨리 청소를 끝마쳤다. 서로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인사까지 마친 뒤에야 나는 학생회실에 갈 수 있었다.

어제 했던 걱정에 대해서 말해보자면, 코이즈미, 호시조라와 내가 친해진 것이 교실에서 나쁜 분위기를 야기 시킨 것 같진 않았다. 아니. 나쁜 분위기보단 경계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분위기를 읽는 분위기. 뭐라는 거니.

‘저 세 사람, 저렇게 친했었나?’ 하는 분위기와 동시에 ‘접근해도 되는 걸까?’하면서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는 단계다. 완전히 공기 취급을 당했던 어제에 비하면 그나마 경계심을 사는 것이 낫다. 무관심은 토끼도 죽인다니까. 정말로 다행이라 말할 수 있겠지. 코이즈미, 호시조라가 이상한 추궁을 당하지 않으면 좋으련만. 으음, 이건 좀 자의식 과잉일까.

“늦어서 죄송해요.”

부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회장이 쾌활하게 미소를 지으며 손을 살며시 들었다.

“어서와, 에루 군.”

회장은 전용 자리인 상석에 앉아 노트북을 만지고 있었다. 오늘도 회장은 예쁘구나, 라니 헤키요의 부회장도 아니고 내가 그런 생각을 할 리가 없잖아. 아니, 예쁘다고는 생각하지만 그것보다도 내 눈을 빼앗은 건, 회장의 양 옆으로 가득히 늘어선 하얀색의 종이뭉치였다. 보기만 해도 현기증이 일어나 시선이 아득해질 정도로 많은 양이었다. 어제 하루 쉬어서 그런가.

위화감이 느껴졌다. 이렇게 많은 양인데, 학생회실에는 회장이 혼자 앉아 있었다.

“저어, 회장? 다른 분들은?”

“아아, 다른 학생회 임원이라면 먼저 갔어.”

“아…, ……니, 납득할 거라 생각하셨어요!? 그 많은 양, 회장이 혼자서 처리하기엔 시간이 너무 걸리잖아요. 다른 사람 좀 의지하시라구요, 회장. 학생회장이 학생회임원을 부려먹는 건 당연한 거라구요.”

한숨을 내쉬자, 회장은 깜짝 놀란 듯한 얼굴을 하더니 이내 곧 웃음을 터뜨렸다.

“후훗, 걱정해준 거니? 고마워, 에루 군. 하지만 네가 있잖니. 혼자가 아니야. 그리고… 그 애들에겐 충분히 도움을 받았어. 이 보고서들 전부 노조미와 다른 두 명이 점심시간에 정리해준 거야. 개요, 짜임새 등. 나는 노트북에 그걸 요약하면 되는 거고.”

“그렇… 군요.”

다행이다. 이렇게라도 말해두지 않으면, 회장은 왠지 모르게 전부 혼자 끌어안고, 짊어지고, 그리고 부서질 것만 같아서 무서운 느낌이 들었다.

“…딱히 걱정 같은 건 안 했거든요. 그보다, 저 오실 때까지 회장이 다 한 거죠? 이젠 제가 할 테니까 조금 쉬고 계세요.”

“아, 아니, 그럴 순….”

“괜찮다니까요.”

“꺄앗…!”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으려는 회장의 등 뒤로 돌아가, 팔을 잡고 억지로 일으켰다. 회장의 맨살에 손이 닿자, 서늘한 감촉이 느껴지면서 원래부터 체온이 살짝 높은 내게 계속 닿고 싶다는 이상한 욕망을 심어주었다. 그것만이라면 쭉 만지고 싶었지만, 회장의 팔을 잡았을 때 회장이 낸 묘하게 선정적인 신음과, 그걸 참으려고 입을 꾹 다문 모습. 부끄럽다는 듯 얼굴에 번진 홍조 때문에, 나도 회장의 팔의 부드러움을 의식하게 되었다.

하지만 도중에 그만두는 건, 내가 이상한 생각을 품었다는 걸 내 입으로 말하는 것과 같다. 그러면 학생회실 안에는 어색한 침묵이 감돌 것이고, 난 그걸 감당할 자신이 없다. 회장과 단 둘이 조마조마 두근두근한 청춘 러브 코메디는 역시 잘못됐다. 학생회와 학생회임원이라는 직에 있는 이상, 항상 바람직한 관계를 추구해야지, 암.

“자, 회장.”

회장을 일으킨 다음, 옆의 의자를 꺼내어 그쪽에 앉도록 유도했다. 나는 그대로 회장이 앉던 자리에 몸을 맡겼다. 의자가 살짝 따뜻한…… 아니, 자꾸 이럴래? 후우, 한 번 심호흡. 그리고 노트북을 보자 거기에 떠 있는 건 보고서의 정리 같은 게 아닌, 스쿨 아이돌을 단번에 볼 수 있는 사이트였다.

“……회장.”

“웃, 그, 저기……….”

“…뭐, 쉬고 싶을 때도 있는 법이니까요.”

“…면목 없습니다.”

그나저나 이런 게 있었구나. 화면에는 오토노키자카 고등학교 아이돌 부가 떠 있다. 그 밑에는 RANK. 랭크인가. 옆에는 숫자로 순위가 표시되는 거겠지. 지금은 순위권 외니까 숫자가 뜨지 않는 거고. 그보다 순위권 외 옆에 (>_<) 이 아이콘은 뭐야…. 사람 놀리는 거냐. 무엇보다도 의문인 건….

“대체 누가 여기에 저희 스쿨 아이돌을 등록한 걸까요?”

“글쎄….”

딱히 나서서 찾을 필요는 없지만. 우리 학교에도 이렇게 스쿨 아이돌 활동에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이 있어 기쁠 따름이다. 아이돌 부, 라면 코우사카 선배와 그 두 사람을 말하는 건가? 그런데 아이돌 부라니, 아직 설립 안 됐다고…. 으음, 아이돌 부를 만들었다고 그 세 사람이 말하고 다닌 걸까. 뭐, 그 사람들이라면 분명 두 사람을 더 데려와 만들어내겠지. 비록 지금은 등록되어 있는 곡은 0 건이고, 어필할 수 있는 PV도 아무것도 없지만.

“슬슬 일, 시작할까요.”

“응, 그러네. 오늘은 에루 군 대신 내가 차를 타 줄까나?”

“정말요? 회장이 타준 차, 마시고 싶어요. 고마워요, 회장.”

“얘는. 티백으로 타는 거니까 맛은 똑같다구?”

“술 마시는 것도, 술이 아닌 분위기에 취한다고들 하잖아요. 아니면 같은 도시락도 좋아하는 사람과 먹으면 더 맛있게 느껴진다거나. 그거랑 같은 게 아닐까요? 회장이 타준 차는 더 맛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조, 좋아하는 사람과 같이라니….”

차를 따르다 말고 동작을 멈춘 회장. 찻잔에서 흘러나온 물이 바닥을 적시기 시작했다.

“회장!”

다급하게 부르자, 회장은 움찔 하고 어깨를 떨더니 곧바로 정신을 차렸다.

“미, 미안!”

회장도 평소 똑 부러진 성격으로, 주어진 일이라면 가히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일을 해치운다. 뿐 아니라, 사람 위에 설 줄 안다. 현명한 선택으로, 올바른 판단을 내리고, 감탄이 나올 만큼 귀여운, 어디도 흠잡을 데 없는 멋있는 우리의 회장이지만, 가끔 회장은 엄청 멍 때리거나, 실수 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 보여주는 귀여운 얼굴이나 행동거지를 나는 마음의 양식과 정신 회복제로 쓰고 있다. 그 갭모에가 진짜로 귀엽단 말이지….

“정신 차려주세요.”

“으, 응….”

회장은 묵묵히 청소. 나는 회장이 타준 차를 마시며 노트북을 만졌다. 침묵 속에서 딸깍 딸깍 노트북의 타자소리만이 규칙적으로 들려온다. 나름 머리를 쓰는 게 아닌, 평범하게 글을 옮기는 단순 작업이라 잡생각이 스멀스멀 뇌의 뒤편에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래봤자 어제 미루어둔 생활비 문제가 99%다만. 단순 작업은 역시 딴 생각 하는 데 있어 최고다. 잠자는 건 자야한다는 생각을 해야 하지만, 단순 작업은 의식이 깨어 있어야 하니까.

이런 내 걱정이 어느새 한숨에 섞여 흘러나왔다. 무의식중에 내뱉은 거라 눈치 채지 못했는데, 어느새 다가온 회장이 톡, 하고 이마를 때리곤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에잇. 학생회 일을 하는 도중에 한숨 쉬는 거 아니야.”

“아…. 죄송해요.”

“무슨 일 있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조심스레 물어오는 회장. 걱정을 끼쳐버렸다. 하지만 같은 학생에게 돈 얘기로 한탄한다니, 말도 안 되지. 회장이 걱정해주는 것도 미안하고.

“아무 일도 없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러니? 그치만 한숨 쉬는 거, 굉장히 신경 쓰이는 걸. 사실 학생회는 다른 학생의 상담역도 하고 있어서 말이지? 언제나 학생의 일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입장인데, 학생회 임원이 걱정거리를 안고 있으면, 자기 일부터 먼저 처리하라구! 같은 느낌이 들지 않을까…. 조금 믿음직스럽지 못할 지도 모르지만, 학생회장인 내게 상담해주면 기쁠 거야. 에루 군에겐 받기만 했으니까, 나도 도움을 주고 싶고.”

쑥스러운 듯한 웃음을 지으면서도, 올곧은 마음을 그대로 내게 부딪쳐 온다. 이거 치사하지 않나? 난 걱정 시키고 싶지 않은 건데, 회장은 오히려 말해주길 바라고 있고. 게다가 은혜 갚기로 호소해오면, 말할 수밖에 없잖아.

“아, 으음…. 뭐라 할까….”

쳐다보는 눈이 부담스러운데요. 생활비가 슬슬 위험하다는 건 말하지 말고, 돈이 필요하다고만 해둘까. 구태여 전부 말할 필욘 없으니까.

“너무 놀아서, 용돈이 거의 떨어졌거든요. 그래서 아르바이트를 찾고 싶은데, 고등학생을 써줄 만한 곳이 있을까, 생각해서요.”

“그렇구나…. 으흠, 에루 군.”

“네?”

헛기침을 하고 목소리 톤을 바꾼 뒤, 검지손가락을 똑바로 세우고 타이르듯 조곤조곤 말하는 회장. 아마 누나가 있다면 이런 기분이겠지, 분명.

“일부러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학생의 본분은 공부입니다. 너무 놀아서 용돈이 떨어졌다니…. 물론, 공부로 인한 스트레스도 있으니 잠깐 리프레쉬하는 정도는 괜찮아. 하지만 용돈이 떨어질 정도로 논다는 건, 거의 매일 논다는 거 아니니?”

아뇨, 하루 놀았는데요. 사실 당장 생활비가 바닥을 치는 건 아니다. 이대로 아르바이트를 안 하고 있다간 한 달 안에 없어질 게 뻔하기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려는 것이다. 라고 말해도, 왠지 들어줄 것 같지 않지?

“학생회 임원이니까, 조금은 모범을 보이는 게 좋지 않겠니? 아직 들어온 지도 얼마 안 됐으니까. …그, 학생회 일이 끝나고 같이 돌아가자.”

“……네?”

하아? 중간에 내가 못 들은 게 있나? 갑자기 이야기가 이상한 데로 뛰었는뎁쇼. 내가 고개를 갸웃하자, 회장은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홱 돌렸다.

“따, 딱히 이상한 뜻이 아니라! 감시야, 감시! 에루 군, 학생회 임원이면서 학생회 일이 끝나곤 놀러 다니는 것 같으니까. 제대로 아르바이트 하는 곳까지 데려다줄 테니까.”

아니아니, 아르바이트 하는 곳이 없다니까요. 의문을 가득히 담아 시선을 보내자, 회장은 시원하게 그것을 깨버렸다.

“노조미가 신사에서 일하고 있거든. 노조미에게 부탁하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아르바이트.”

“확실히 그건 좋은 아이디어지만…, 회장 분명 사거리에서 밑으로 내려가야 집이 나오지 않았나요?”

오토노키에서 나와, 횡단보도를 건너면 계단이 있다. 그곳을 내려가 오른쪽 돌담을 더듬어 걷다보면 금방 차가 많이 다니는 사거리가 보인다. 나와 부회장은 여기서 횡단보도를 건너 쭉 오른쪽, 회장은 횡단보도를 건너지 않고 밑으로 내려가야 한다. 그런데 회장은 나를 신사까지 데려다주겠다고 말하고 있다. 남자면서 여자에게 배웅 받는 게 조금 부끄럽기도 하고, 솔직하게 말해 민폐를 끼치는 것 같아 미안하다. 오해라고 말해도, 자신이 인정할 때까지 완고하게 따라다닐 것 같고.

“괜찮아. 귀여운 후배를 위해서라면 10분 정도 시간 내는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은 걸.”

“회장이 괜찮다면야. 저도 예쁜 미인인 회장과 조금이라곤 해도 함께 집에 갈 수 있어서 좋은 걸요?”

“에, 그…, 엣….”

귀까지 빨갛게 물들어, 얼마나 당황했는지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실은 회장이 내게 장난치려고 했던 것 같지만, 그걸 되받아쳐 곱절로 당황한 거겠지. 아아, 회장 정말로 귀엽습니다. 차마 말로는 못하지만. 말하면 죽을 지도….

딴 생각을 하는 사이 벌써 반이나 종이가 사라져 있었다. 아직 허둥대는 회장을 쭉 보고 있고 싶지만, 너무 늦어지면 안 되겠지. 팔을 위로 쭉 뻗자, 찌뿌둥한 몸이 기분 좋은 비명을 질렀다.

“슬슬 라스트 스퍼트 가볼까요?”

“아, 으, 응!”

“회장 말대로 부회장에게 말해보는 게 좋을 것 같네요. 내일 부탁해볼게요.”

“응, 분명 긍정적인 방향으로 검토해줄 거야. 노조미는 기본 장난스러운 아이지만, 남 돌보는 건 의외로 특기니까.”

나한테 참견하거나, 나를 도와준 걸 생각하면, 확실히 남 돌보는 건 특기일지도. 부회장에겐 고마울 따름이다. 어떻게 보답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지만,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다보면 언젠가 보답할 수 있는 날도 있겠지. 그러니까 우선은 후딱 서류를 정리하기로 하자. 내일 부회장에게 아르바이트를 소개 시켜달라고 하면 곤란해 하시려나.

 

이튿날. 부회장에게 어떤 식으로 물꼬를 터야 할지 생각하는 사이, 1교시, 2교시, 3교시가 빠르게 지나갔다. 다음 교과목이 뭐였는지 애매해진 나는, 코이즈미, 그리고 함께 그녀와 함께 있는 호시조라에게 다가갔다.

“있잖아.”

“아, 에루 군.”

“무슨 일이다냥?”

“다음 교시 말인데….”

 

“실례합니다!”

 

말을 끝마치지도 못했는데, 쾌활한 목소리가 교실에 들려오는가 싶더니 교실의 앞문이 활짝 열리며 각양각색의 얼굴 표정을 한 세 사람이 교단에 올라섰다.

내 말허리를 자른 범인은 오렌지색 머리에, 노란색 리본으로 한쪽을 묶어 올려 발랄한 매력을 뽐내는 득의양양한 얼굴의 코우사카 선배임이 틀림없었다.

갑작스런 등장에 나는 물론이고, 우리 1학년들은 모두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교복에 달린 리본의 색깔을 보고 알았겠지만 저 사람들은 2학년이다. 2학년이 1학년의 반에 오는 건 굉장히 드문 일. 반 아이들의 경계를 사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호기심 반, 경계심 반이다. 뭐, 다들 매점에 가거나, 도서관에 가거나, 놀러 나가느라 정작 반 안에는 얼마 사람이 없었지만.

“1학년 여러분, 안녕하세요? 스쿨 아이돌, 코우사카 호노카입니다!”

……………. 절망적일 정도의 정적이 흘렀다. 코우사카 선배와 두 사람이 스쿨 아이돌 활동을 하고, 아니, 하려하고 있다고 알고 있던 나조차도 반응 못 할 정도로 당돌하고, 또한 어이가 없었다. 다른 아이들의 분위기를 살펴보니, ‘스쿨 아이돌? 우리 학교에 그런 게 있었어?’ ‘갑자기 교실에 들어와선 뭐라는 거야?’라는 진의가 가득 담긴 눈초리를 하고 있었다. 이렇게 빠른 전개로 나오면 다들 반응하기 어렵다고요.

“어라!? ‘움찔’도 안 해?!”

“당연하지요!”

만담그룹입니까! 코우사카 선배의 오른쪽에 있던 코토리 선배는 이래선 언제까지고 화제가 이어질 거라 생각했는지 얼른 끼어들어 화제를 전환했다.

“그래서… 호노카쨩이 말했던 노래 잘하는 아이는 누구야?”

노래를 잘 하는 아이? 그런 애가 우리 반에… 아, 그거 니시키노를 말하는 건가? 코우사카 선배가 그걸 어떻게 아는 거지? ……아. 저번에 코이즈미와 단둘이 니시키노의 노래를 들었을 때, 잠깐 음악실이 소란스러웠는데, 그거 코우사카 선배였던 건가…. 지금 니시키노는 교실에 없는데.

이런 내 걱정은 기우로 끝났다. 니시키노도 양반은 못 되는지, 이름이 불리자마자 바로 교실 앞문에 니시키노가 나타났다. 잠깐 화장실을 다녀온 거겠지. 니시키노는 교단에 서 있는 세 사람을 못보고 자리로 들어가려 했지만, 코우사카 선배는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니시키노에게 웃는 얼굴로 달려들었다.

“너! 잠깐 괜찮을까?”

“우에엣!? 저요?”

긴히 할 얘기가 있다며 세 사람은 니시키노를 어디론가 끌고 가기 시작했다. 2학년 선배가 1학년 아이를 끌고 어딘가에 향한다…. 혹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 아니겠지? 학생회 임원으로서 사건은 곤란하다. 나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니시키노와 세 사람을 쫓아갔다. 물론 독단으로 처리하기 힘든 일일 수도 있으니 메일로 회장에게 보고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나 완전 모범 학생.

 

계단을 끝까지 올라, 네 사람은 옥상에 도착했다. 바깥으로 나가는 모습을 지켜본 뒤에 다가가 문에 살며시 귀를 대었다. 문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지 이야기는 확실하게 들려왔다. 퉁명스럽게 거절하는 니시키노의 목소리도 말이다.

“거절하겠습니다!”

“부탁할게! 네가 작곡해줬으면 해!”

아아, 그런 거였구나. 저 세 사람은 단순히 니시키노에게 작곡을 맡기러 온 것뿐이었다. 곡은 스쿨 아이돌 활동에 필수불가결한 것. 누군가를 모방하지 않고, 조금 서툴더라도 자신들만의 오리지널 곡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마음을 전한다. 이건 스쿨 아이돌만이 가진 수많은 매력 중 하나일 테지.

“거절하겠습니다!”

하지만 니시키노의 반응은 차가웠다. 뭐, 저게 평범한 반응일까. 일단 니시키노는 스쿨 아이돌도 아니고, 작곡은 굉장히 힘든 일이라 들었으니까.

“아, 혹시 노래만 할 줄 알고, 작곡은 못하는 거야?”

코우사카 선배, 왜 일부러 도발하는 듯한 말을…. 당연하지만, 자존심이 엄청 셀 것 같은 니시키노는 욱, 하고 화를 냈다.

“못할 리가 없잖아요! 그냥 하고 싶지 않은 거예요, 그딴 거.”

코우사카 선배도 주눅들지 않고 자신의 주장을 밀고 나갔다.

“학교에 학생을 모으기 위해서라구? 그 노래로 학생이 모인다면…!”

“흥미 없어요.”

곧장 들려오는 발소리. 나는 순간 당황해 서둘러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건장한 남자 고등학생 한 명이 숨을 수 있을 만한 적당한 장소는 없었다. 그리고 옥상의 문이 열려, 나와 니시키노의 눈이 마주쳤다.

“……저기.”

“……훔쳐 듣기? 좋은 취미는 아니네. 스토커?”

매서운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던 니시키노는 나직이 중얼거리더니 자리를 떴다. 스토커라니, 내가? 니시키노의? 확실히 니시키노를 쫓아온 건 맞지만, 반은 걱정돼서 그런 건데. 게다가 처음으로 나눈 말이 ‘저기’ 와 ‘훔쳐 듣기? 좋은 취미는 아니네. 스토커?’라니 반 친구 이하잖아! 이따 오해를 풀어두지 않으면….

울적한 기분이 들어 축 쳐져 있자니, 니시키노와 자리를 바꾸듯 회장이 계단을 올라왔다. 나는 회장의 모습을 보자마자 달려들었다.

“웃, 회장!”

“어, 어머, 무, 무슨 일이니? 아, 아니, 일단 조금 떨어져 주지 않을래? 거, 거긴….”

“죄송해요. 조금 축 쳐질만한 일이 있어서….”

냉정하지 못했다. 내가 떨어지자, 회장은 헛기침을 한 후, 자세를 가다듬었다.

“……방금 내려간 그 아이가 니시키노구나. 저 아이에게 작곡을 부탁한 거니?”

“네. 니시키노는 노래도 잘하고, 피아노도 잘 치거든요. 작곡도 방금 스스로 할 줄 안다고 선언했구요. 음악 쪽으로는 무적이 아닐까요?”

“그렇구나. …라이브까지 얼마 시간이 안 남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지금 저 아이에게 부탁하는 거니?”

게다가 거절당했고…, 라고 머리를 감싸며 나직이 중얼거리는 회장. 응, 회장의 마음은 알아요. 코우사카 선배들이 작곡을 부탁했다는 건, 당연하지만 아직 만들어 둔 오리지널 곡이 없다는 것과 같다. 하지만 거절당했다. 즉, 이 경우 선배들은 자신들의 노래가 아닌, 타 학교의 스쿨 아이돌 노래를 사용해서 라이브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메리트보다는 디메리트가 훨씬 큰 도박과 마찬가지다.

막 설립한 스쿨 아이돌이, 신입생 환영회에서 팬층이 두꺼운 스쿨 아이돌의 노래를 부른다고 해보자. 가장 먼저 왜 우리 학교의 아이돌이라는 사람들이 다른 스쿨 아이돌의 노래를 부르냐는 생각이 떠오를 것이다. 이건 스쿨 아이돌에 임하는 진심, 성의, 능력에도 이어진다.

스쿨 아이돌은 말 그대로 학교의 학생들이 스스로 나서서 아이돌을 하는 것. 학교는 후원을 해줄 수 있을 만큼은 해주지만, 작사, 작곡, 의상 같은 디테일한 부분까지 간섭하진 않는다. 즉, 다른 학교의 노래를 부를 정도로 작사, 작곡을 못하는, 혹은 성의가 없는 스쿨 아이돌로 생각되어 질 가능성이 있다.

가령 라이브를 성공적으로 했다고 해도, 과연 신입생들은 우리 스쿨 아이돌을 봐주고 있는 건가. 단순히 다른 인기 스쿨 아이돌의 노래라서 열광한 건지, 우리 학교 스쿨 아이돌의 퍼포먼스가 대단해서 열광한 건지, 회의감이 머리를 엉망진창으로 돌아다니겠지.

스쿨 아이돌을 전력으로 밀고 있고, 코우사카 선배들을 응원하는 내 입장에서도 솔직한 감상을 말해보자면─

“─이건 위험하네요.”

…완벽히 외통수, 라고 밖엔 할 말이 없다. 나와 같은 기분을 공유한 회장은 낮게 한숨을 내쉬고는 단호한 얼굴로 옥상의 문을 열었다.

“아앗, 안 됩니다!”

“어째서! 곡이 완성되면 모두의 앞에서 노래한다고?!”

“그건 그렇지만!”

여전히 훌륭한 팀워크네요. 아무도 없는 곳에서도 으레 평소와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세 사람. 장난치는 모습은 보기 좋지만, 지금의 회장에겐 진지하지 않은 세 사람의 모습이 보기 좋게 보이진 않겠지. 실제로 회장은 심기가 불편한 얼굴이었다.

“아, 회장 선배…?”

“잠깐 괜찮을까.”

회장, 얼굴 무서워요, 얼굴.

“지금까지 스쿨 아이돌이 없던 이 학교에서 해보았지만 역시 안 되겠어요…, 라는 결과가 되면 모두 어떻게 생각할까? 너희들이 하는 짓은 역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항상 염두에 둬야해. 나도 이 학교가 없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까, 너희들이 가볍게 일을 생각하지 않았으면 하는 거야.”

“…….”

뾰로통한 얼굴의 코우사카 선배. 하지만 짐작 가는 것이 있는지 회장의 말에는 조금도 반박하지 않았다. 자기가 꺼낸 말 때문이지만, 숙연해진 분위기가 버거웠는지 회장은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말을 이었다.

“그런 거니까, 아이돌 활동에 대해선 다시 한 번 재고해주길 바래. 그럼.”

먼저 자리를 떠난 회장. 나는 옥상 문이 닫히는 걸 보고서는 다시 몸을 빙글 돌렸다.

“저는 저희 학교의 스쿨 아이돌이 자신만의 노래로, 자신만의 목소리로, 자신만의 퍼포먼스로 모두에게 진심을 전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회장도 말은 저렇게 하시지만 분명 응원하고 계실 거예요. 힘내세요. 힘내서 꼭, 라이브 성공하길 바랄게요. 그럼 슬슬 가볼게요. 무슨 일이 있으면 불러주세요. 저는 코우사카 선배, 우미 선배, 코토리 선배 응원하고 있으니까, 힘이 닿는 한 도와드릴게요. 무슨 일이든 맡겨만 주세요!”

“…응.”

힘겹게 미소 짓는 코우사카 선배. 나는 문고리를 잡고 열려다가 그대로 멈추었다.

“아…, 그러고 보니 잊고 있었네요. 우미 선배, 코토리 선배. 성, 알려주시겠어요? 계속 이름으로 부를 순 없으니까요…. 네?”

 

Love Live!

방과 후, 나와 코이즈미는 청소 당번을 마치고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늘 옥상에서 연습하고 있대.”

“우리 학교에서 스쿨 아이돌을 하는 사람이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어.”

코이즈미의 시선은 복도 사물함에 고정되어 있었지만, 저 대화에 주의가 끌렸다는 건 누가 봐도 쉽게 알 수 있었다. 뭐, 이상하게 생각하긴 했지. 이렇게나 아이돌을 좋아하고, 자세히 알고 있고, 아이돌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데 정작 스스로는 아이돌을 하지 않는다.

아이돌의 팬이 아니다. 이 정도로 아이돌을 좋아할 수 있고, 공부할 수 있는 건, 아마도 스스로 하려 했던 적이 있는 건 아닐까? 혹은 지금도 준비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코이즈미에 대해서는 아는 건 없지만, 코이즈미는 스쿨 아이돌에 맞는다고 생각한다. 진짜 아이돌이었으면 다른 스쿨 아이돌도 전부 탈락이나 마찬가지인걸. 하지만 서투르면서도 열정을 앞세워 자신들을 전하는 것은 스쿨 아이돌만의 전매특허다. 서툴러도 된다. 틀려도 된다.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분명 스쿨 아이돌이란 그런 것이다.

하지만.

난 전에도 분명 코이즈미에게 ‘스쿨 아이돌 활동’을 하지 않느냐고 물어봤었지. 코이즈미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코이즈미에게 부족한 건 용기가 아닐까. 난 코이즈미에게 생각하기보단 망설이지 않고 나아가는 행동력을 배웠다. 코이즈미는 잘 모르는 것 같지만. 그렇다면 이 마음이 코이즈미에게 닿을 수 있도록, 코이즈미가 스스로 앞으로 나아가길 마음먹었지만 그래도 움직일 수 없을 때, 그 등 뒤를 살짝 밀어주자.

그거면, 그거라면 분명 코이즈미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아직 이대로….

“카요치, 돌아가자냥~.”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할지 고민하던 중, 마침 타이밍 좋게 호시조라가 왔다. 아니, 타이밍 좋게는 아닌가. 호시조라는 우리가 청소당번 끝낼 때까지 운동부 구경하고 있었으니까. 활동적인 호시조라답다.

“으, 응!”

깊이 생각하고 있던 탓인가, 멀리서 부르는 호시조라의 부름에 몸을 움찔 떨고는 당황한 기색으로 말을 더듬는 코이즈미. 오늘도 두 사람 다 절호조로 귀엽다.

“아!”

“응? 무슨 일이야?”

깜짝 놀라는 코이즈미의 시선 끝을 쫓아가자, 총총총 달려와 1학년 교실의 문을 여는 낯익은 선배의 모습이 보였다.

“…아, 코우사카 선배구나.”

“아까 스쿨 아이돌이라고 소개하셨던 그 사람이다냥.”

코우사카 선배는 교실을 둘러보더니 아쉬운 한숨을 뱉었다.

“후아… 아무도 없네.”

“냥?”

호시조라가 그 옆으로 다가가자, 코우사카 선배는 오, 하고 고개를 돌리더니 놀라지도 않고 곧바로 질문했다.

“저기, 그 애는?”

“그 애?”

고개를 갸웃하는 호시조라 대신에 대답한 건 멀찍이 떨어져 보고 있던 코이즈미였다.

“니시키노를 말하는 거죠? 노래를 잘하는….”

“응, 응! 니시키노라고 하는 구나!”

“네에…, 니시키노, 마키라고 해요.”

코이즈미의 어투가 약간 긴장되어 보이는 건, 분명 코우사카 선배가 선배라서 그런 것만은 아닐 것이다. 발그레 옅은 분홍을 띤 볼과, 반짝반짝 빛나는 눈은 코이즈미가 스쿨 아이돌을 얼마나 동경하는지 확연하게 보여주었다. 뭐, 호시조라나 코우사카 선배는 눈치 못 챈 것 같지만. 아니, 내가 오히려 너무 자세하게 보는 건가? ……니시키노의 스토커라는 말이 왜 떠오르는 걸까.

“볼 일이 있었는데, 이건 벌써 돌아간 것 같네. 다핫~.”

…저기? 방금 그 ‘다핫~’은 뭔가요. 살짝 자신의 머리를 치며 실수를 귀엽게 만회하는 코우사카 선배. 선배의 그런 모습이 신선하게 다가와 가슴을 움켜쥐었다. 뭡니까, 이 귀여운 생물은?

여자들에겐 별 감흥이 없었는지, 호시조라는 내가 여운에 빠질 틈도 주지 않고 코우사카 선배에게 말했다.

“음악실이 아닐까요?”

“음악실?”

“그 애, 다른 애들하곤 그다지 얘기하지 않아요. 쉬는 시간에는 늘 도서관에 가고, 방과후엔 음악실엔 가요.”

“…그렇구나. 세 사람 다 고마워!”

멀뚱히 쳐다보기만 한 나에게까지 고마움을 표시한 코우사카 선배. 아니아니, 저는 정말로 숨쉬기밖엔 하지 않았대두요?

“…저기!”

달려나가는 코우사카 선배를, 떨리는 목소리로 부른 코이즈미. 심호흡을 하고, 단호한 표정을 짓고서 척 앞으로 나섰다.

“히, 힘내세요! 아이돌….”

갈수록 목소리가 작아졌지만, 충분히 합격점이다. 코이즈미의 응원을 들은 코우사카 선배의 얼굴에는 상냥함이 깃들어있었다.

“응! 힘낼게!”

아까 회장에게 충고 받았을 때의 코우사카 선배랑은 완전히 딴판이다. 기운을 차린 것 같아서 다행이다. 나도 위로한답시고 말은 했지만, 내 말은 들리지 않았겠지. 그 뒤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듣고선 이렇게나 기운을 차린 걸까? 코우사카 선배에게도 이런 저런 사정이나 일이 있었을 테지. 구태여 묻지 않는 게 예의란 것이다.

이대로 두면 코우사카 선배는 니시키노에게 가겠지. 니시키노는 분명 또 거절할 테지만…, 코우사카 선배가 어떤 식으로 나오는지 보고 싶어졌다.

“미안, 코이즈미, 호시조라. 나 학생회로 빨리 오라고 갑자기 문자가 와서…. 먼저 가볼게.”

거짓말은 안 했어, 거짓말은! 그렇게 나 자신에게 타이르며 코우사카 선배의 뒤를 쫓아갔다. 솔직히, 엄청나게 걱정되거든. 코우사카 선배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지금까지 내 앞에서 보여준 행동을 토대로 분석해 한 마디로 압축하자면, 막무가내라는 말이 가장 어울린다. 이러니 걱정이 안 될 리가 있나. 스쿨 아이돌을 지지하는 사람으로서 혹시 힘이 될 일이 있을 지도 모른다.

음악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가 끝나자, 코우사카 선배는 황홀한 표정으로 박수를 치면서 노크도 없이 벌컥 문을 열곤 안으로 들어갔다. 노크 정도는 하자구요, 선배. 들어간 건 어쩔 수 없지. 나는 소리를 내지 않고 살짝 음악실 문에 기대어 섰다.

“무슨 볼일이에요?”

커다란 음악실에 단 두 사람. 목소리는 울려, 아무도 없는 복도를 메우듯 달려 나갔다. 여담이지만, 회장에게 들은 바로는 오토노키자카는 예전엔 음악을 중심으로 한 예술적 측면의 색채가 강했다고 한다. 지금은 학생이 많이 줄어, 커다란 음악실과 미술실은 괜히 쓸쓸해 보이기도 한다.

창문으로 슬쩍 보자, 피아노 의자에 다리를 꼬고 니시키노가 앉아 있었다. 선배를 앞에 두고도 물러서지 않는 저 당당함은 니시키노가 본연에 가지고 있는 자신감에서 나오는 무의식적인 행동일 것이다. 그보다 누가 의식적으로 선배 앞에서 건방진 태도를 취할 수 있겠냐고.

“역시 한 번 더 부탁해볼까나~ 해서 말이야.”

“끈질기네요.”

“그렇지? 우미쨩에게 늘 혼나곤 해.”

“저는 아이돌틱한 곡은 일체 듣지 않거든요? 듣는 건, 클래식이나 재즈 같은….”

어디 사시는 공주님이신가요? 아니, 이름은 진짜 공주님이었나. 실제로 공주는 아니더라도 어쩐지 아가씨의 느낌이 물씬 풍긴다.

“헤에, 어째서?”

“아이돌틱한 노래는 가볍잖아요! 뭔가 경박하고…, 그냥 노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일반적으로 대중이 갖고 있는 생각이다. 가볍고, 노는 것 같고. 듣는 사람은 즐기면 되고, 부르는 사람도 즐기는 것이 우선이다. 모두들 그렇게 생각할 테지. 하지만 스쿨 아이돌에 관한 지식을 코이즈미에게 듣고, 책으로 인터뷰를 보고. 무엇보다도 연습하는 모습을 본 적은 없지만, 코우사카 선배들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그 열정을 알 수 있었다.

“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어. 뭔가 이렇게, 축제처럼 퍼엉~! 하고 불타올라서 즐겁게 노래하면 되는 걸까나? 하고 말이야. 그런데… 꽤나 힘들더라고. 있잖아! 팔굽혀펴기 할 줄 알아?”

“하아?”

하아? 니시키노와 싱크로가 맞아버렸다. 뜬금없이 무슨 소릴 하시는 겁니까.

“못하는 구나~?”

“하, 할 줄 안다고요, 그 정돈!”

선배의 얄팍한 도발에 걸려든 니시키노. 확실히 자존심이 세고 아가씨 같지만 의외로 다루기는 쉬운 성격인가. 이렇게 보면 귀여운 면모도 있네. 솔직히 니시키노는 무섭다고 생각했거든. 게다가 초면에 나한테 스토커라고 말할 정도면 사고도 꽤나 자기중심이고. 다가가기 어려운 오라가 있지.

다시 창문 사이로 시선을 옮기자, 니시키노가 윗옷을 벗고는 본격적으로 팔굽혀펴기를 하고 있었다.

“하나, 둘, 셋… 이걸로 됐죠?”

“오, 굉장해! 나보다 잘하네!”

나보다 잘한다니…, 선배 설마 세 개도 못하시는 건가요…. 진심으로 놀라고 있는 코우사카 선배를 보니 니시키노를 띄워주기 위한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았다. 상상 이상으로 약한 코우사카 선배의 체력!

“당연하죠! 저는 이래봬도….”

“있지, 그 상태에서 한 번 미소지어볼래?”

“에? 어째서?”

“괜찮으니까~.”

니시키노는 코우사카 선배의 말대로 엎드린 상태에서 미소를 짓고는 다시 팔굽혀펴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대로 잘 되진 않는지 몇 번이고 미소가 일그러진다. 이야, 그래도 선배의 말은 듣는구나. 반항하는 척하면서 고분고분 말을 듣다니, 니시키노가 진심으로 귀엽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말 웃으면서 하는 팔굽혀펴기랑 그냥 팔굽혀펴기가 그렇게 다른가? 니시키노도 생각보다 어려워하는 눈치고. 나중에 집에가서 몰래 해봐야겠다.

슬슬 니시키노가 지칠 때가 되자 코우사카 선배는 옆에 슬쩍 쭈그려 앉더니 만면에 미소를 띠우곤 말했다.

“그지? 아이돌 힘들지?”

“무슨 소리예요!”

무슨 소리예요? …역시 코우사카 선배. 도저히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다. 뭐, 착하고, 열정이 넘치고, …내가 꿈꾸는 멋있는 사람인 건 알겠지만. 코우사카 선배의 거침없는 추진력은 예전의 나, 아니, 지금도 마찬가지다. 기업의 중대 프로젝트를 맡아 진행해야 하는 나는 머뭇거릴 시간조차 없었다. 거침없이 나아가지 못하는 건, 팀원들의 신뢰와도 곧장 직결되는 문제이기도 하니까. …아직 기업에 돌아갈 수 없다. 너무나 부족한 나 자신이기에. 뭐, 추진력이고 뭐고, 일단 자신감이 없는 게 가장 큰 문젠가….

“자, 가사. 한 번 읽어봐.”

“그러니까 전….”

“읽는 것뿐이라면 괜찮잖아? 다음번에 다시 부탁하러 올 테니까. 그 때 안 된다고 하면, 깨끗이 포기할게.”

코우사카 선배 치고는 보기 드문 진지한 모습. 니시키노는 어떻게 느꼈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가사가 적힌 종이를 받아들었다.

“제 대답이 바뀌는 일은 없을 거라 생각하는데요.”

“그래도 괜찮아. 또 노래를 들려줬으면 해. 나, 니시키노의 노랫소리 정말 좋아해. 그 노래와 피아노 소리에 감동받아서 작곡을 부탁하고 싶어진 거야!”

“…….”

나는 슬쩍 음악실의 문에서 등을 떼었다. 코우사카 선배의 꾸밈없는 진솔한 마음. 진심에서 우러나온 저 말에, 움직이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자존심이 세고, 아가씨 같은 취미를 갖고 있고, 접근하기 어려운 것 같으면서도 막상 얘기해보면 (내가 얘기하진 않았지만) 귀여운 구석이 있는 니시키노.

…니시키노는 어째서 방과 후에 피아노를 치고 있던 걸까? 나는 니시키노의 마음을 모른다. 분명 한 마디로는 말할 수 없는 여러 복잡한 마음이 있겠지. 그래도 피아노를 치고 있는 니시키노를 보면 한 가지, 얼마나 피아노를 좋아하는지 만큼은 노랫소리와 피아노 소리가 전해준다. 그런 니시키노에게 꾸밈없는 코우사카 선배의 칭찬은 분명 마음을 움직일 계기가 되리라 믿는다.

“……아. 학생회 어쩌지?”

코우사카 선배를 걱정한 나머지, 내 일은 뒷전에 둔 바보가 여기에 있었다.

곧장 복도를 가로질러 학생회실의 문을 벌컥 열었다.

“마이 늦었구마, 에루 군.”

“……째릿.”

“죄, 죄송합니다아아아아아아아!”

90도로 고개를 숙여 사죄하자, 두 사람에게서 각기 다른 반응이 돌아왔다.

“뭐, 됐대이. 오늘은 신입생 환영회의 팜플렛 구도를 잡았을 뿐잉께, 나와 에릿치 둘이서도 할 수 있는 일이었구마. 남자 힘이 필요한 일은 읎대이.”

“노조미. 내 말은 그게 아니잖니. 일은 분명 둘이서도 충분히 끝낼 수 있지만,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알구 있다 안 카나. 에루 군이 보고 싶었던 거제?”

“뭇…!? 노조미…!”

회장이 얼굴을 붉히며 책상을 치고 일어난다. 부회장은 엇차, 하면서 슬쩍 뒤로 물러나며 키득하고 웃었다.

“뭐뭐, 그리 화내지 말그라. 농담인 거 다 알믄서. 말은 같은 맥락이잖아? 에루 군. 에릿치가 하고 싶은 말은, 일단 니도 학생회 멤버니께 할 일은 없더라도 학생회실에 얼굴은 비추란 소리인기라.”

“맥락이 어디가 같다는 거니! 참…. 에헴, 어제는 에루 군이 많이 힘내줬으니까 봐주겠지만,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부탁할게.”

“네에….”

“뭐어, 오늘은 일 다 끝냈응께, 다 같이 돌아갈까?”

부회장의 제안으로, 우리들은 각자 정리를 끝내고 교문으로 모였다.

“참, 에릿치는 도중에 방향이 갈리지?”

“아, 그게 말이지. 나 오늘부터 신사까지만 같이 가도 될까, 노조미?”

“응? 물론 대환영이지만, 무슨 바람이 불은 기가?”

내게 고개를 돌리며 부회장에게 얼른 말하라고 재촉하는 눈빛을 보낸다. 그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부회장은 놀란 듯이 입을 가렸다.

“서, 설마 두 사람 진짜로…!?”

부회장, 말투 바뀌었다고요. 대체 무슨 착각을 하시는 거예요. 봐요, 회장도 완전히 질렸다는 얼굴을 하고 있잖아요!

“그게 아니라! 제가 부회장에게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서요. 저어…, 아르바이트에 대해서 말인데요….”

말 꺼내기가 껄끄럽다. ‘부회장이 지금 하고 있는 아르바이트 소개시켜주시면 안 될까요?’라니 이 무슨 뻔뻔함이냐고. 내가 머뭇머뭇 거리자 부회장은 오, 하고 손바닥을 짝, 마주치더니 미소를 지었다.

“오, 그런 거였구마. 알긋다. 신관 자리는 다 찼지만 단순히 도와주는 거라면 뭔가 일이 있을 기다. 그래두 커다란 신사니께, 연중은 아니지만 바쁠 때가 많거든.”

“앗, 감사합니다!”

“괜찮대이, 괜찮대이. 신사 들를까? 에릿치는 우짤래?”

“신사 앞까지만 같이 갈게. 최근 에루 군은 조금 빠져 있으니까, 며칠간은 이렇게 하려고.”

“후후, 걱정은. 알겠대이.”

 

신사 앞에서 회장과 헤어진 우리는 계단을 올랐다.

“올 때 얘기한 것만 잘 하면 신사 일을 하는 데엔 크게 무리가 없을 기라. 그 외에 질문 같은 거 있나?”

“저어… 아직 합격하지 않았는데요?”

“뭐뭐, 내가 소개시켜주믄 합격한 거나 마찬가지니께, 마음 편히 가지라. 것보다 여기서 일하믄 재미있는 광경을 볼 수 있는데. 시간은… 아직 쪼끔 남았네. 일단 인사하고 얼추 돌아다니면서 일 배우믄 딱 될 것 같대이.”

부회장은 그렇게 말하며 나를 끌고 이곳저곳을 돌았다. 가장 먼저 신님이 계신 곳에 들어가 기도를 올리고, 새전. 무녀님들이 계신 곳으로 들어가 인사만 했는데, 왠지 모르게 바로 신관 옷을 입혀주셨다. 동시에 꺅, 하고 좋아하시는 무녀님들. 이거 채용 된 거 맞지? 그 다음 청소할 곳을 돌아보면서, 에마가 걸린 곳, 오미쿠지를 걸어놓는 곳을 구경. 웬 귀여운 망아지와 돌보고 있는 신관님이 계셔서 망아지에게 먹이 주기 체험을 했다.

“우땠노? 윤곽은 잡혔나?”

“네. 왠지… 편해서 좋아요. 아, 일이 편하다는 게 아니라, 그, 분위기가….”

“응,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고 있대이. 가슴 언저리가 따뜻해지는 그 느낌을 말하는 거 아이가. 내도 이 신사의 분들은 이젠 가족과 같대이.”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실까. 저 멀리서 오렌지색의 따뜻한 빛이 세상을 감싸 돌았다. 몸을 웅크린 태양 너머로 시선을 옮긴 부회장. 내리쬐는 따뜻한 열기에 맞지 않는 차가운 봄바람이 나를 가로질렀다.

“슬슬 시간이구마. 함 따라 올래?”

이번에 부회장이 나를 끌고 간 곳은 신사의 계단 아래쪽.

“이곳을 돌면… 어라. 오늘은 더 재미있는 상황을 볼 수 있을 것 같구마?”

부회장의 악마 같은 웃음. 그 눈동자에 담긴 건, 코너에 숨어서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는 니시키노였다. 코우사카 선배의 말에 그래도 마음이 흔들리긴 했나보네. 훈훈하다. 어떻게 말을 걸까, 고민하고 있는데 갑자기 부회장이 몸을 조용히 수그린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니시키노에게 다가가더니 갑자기 뒤에서 가슴을 확 잡아챘다. ─엥? 가슴?!

“꺄아─악!”

가뜩이나 가창력이 좋은 니시키노의 목소리가 정숙함을 가득 채운 거리를 찢어버리듯 퍼져나갔다.

“뭐, 뭐하는 거야!?”

뒤를 돌아보곤 내 얼굴을 확인하는 것과 동시에 냅다 따귀를 날린다. 짝! 소리가 귀에 울린다. 아… 으…… 크읏…… 니시키노, 손 엄청 매워…! 고통을 참기 위해 입술을 깨물고 일단 바닥에 쭈그려 앉았다. 내가 앉은 것과 반대로 부회장은 천천히 일어서서 입을 열었다.

“아직 발전 도중, 이라고 할 수 있겠구마.”

“하아!?”

이번엔 나와 부회장을 번갈아 보는 니시키노. 그러고는 범인이 부회장이었다는 걸 깨달았는지 입을 연신 벙끗 거린다.

“하지만, 꿈은 버리지 않아도 괜찮대이. 점점 커질 가능성은 있으니께.”

“아, 그, 저기….”

부회장도 눈치 챘는지 씨익 웃는다.

“어라, 에루 군. 왜 그래 앉아 있노? 참, 방금 신랄하게 따귀 맞은 참이었제? 근디 무슨 일을 했는데 저 아가 화를 내는 기가?”

“이, 이게 다 당신 때문이잖아! 그, 미, 미안…. 그보다 무슨 소리야!”

부회장에게 화를 내랴 물어보랴, 내게 사과하랴, 여러모로 바쁜 니시키노였다. 정말 아팠지만, 뭐, 저 자존심 센 니시키노에게 사과 받았으니까 괜찮다고 칠까…. 아우… 조금 부은 것 같기도 하고….

“부끄럽다면 몰래, 라는 수단도 있다는 거대이.”

“에? 그러니까 무슨….”

“이미 알고 있을 기다.”

부회장은 그렇게 말하며 신사의 계단을 올랐다. 부회장도 니시키노를 알고 있었구나. 아니, 일이 이렇게 될 것도 알고 있었던 것 같은 말투인데…. 독자적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있는 건가…? 나도 천천히 일어나 부회장의 뒤를 쫓았다. 코너를 돌기 직전까지도 망연히 고개를 숙이고 있는 니시키노.

“조금만 더 솔직해져도 괜찮지 않을까?”

“……에?”

“아아, 그리고 나 때린 거 별로 신경 쓰지 않으니까. 그건 진짜로 부회장이 나쁜 거니까 너도 너무 신경 쓰지 마.”

부회장과 너무 떨어져 버리는 것도 곤란하기에 얼른 그 뒤를 쫓았다. 자, 이 앞으로는 니시키노가 하기 나름이다. 하지만 그녀라면 분명….

“후후, 재미있는 광경 봤제?”

부회장을 따라잡자 빙글 하고, 장난스러운 미소를 보여준다.

“재미있었지만…, 대가가 너무 아프다고요. 다음에 또 보여준다고 하면 거절할 거니까요.”

“재미있는 건 하나 더 있대이? 일단 올라와보래이.”

계단을 다 올라가자, 체육복을 입은 2학년 선배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완전히 늘어져 있는 코우사카 선배. 그 옆에 앉아 웃음을 띠우곤 있지만 얼굴에서는 땀이 흐르는 미나미 선배. 흐트러진 모습조차 보여주지 않는 소노다 선배.

“안녕하세요.”

“앗, 에루 군! 와 준 거야!?”

“호노카 쨩, 그렇게 누워서 말하는 건 조금….”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드려 죄송할 따름입니다. 아직 두 번 정도 왕복을 더 해야 하지만, 호노카가 떼를 쓰는 바람에 그만. 그런데… 에루 군이 입고 있는 건 신관 분들이 입는 옷이 아닌가요?”

살짝 고개를 기울이며 내게 물어오는 소노다 선배. 그러자 코우사카 선배도, 미나미 선배도 벌떡 일어나 눈을 빛내며 다가왔다.

“오오, 진짜다! 신관이 된 거야, 에루 군!?”

“멋있다아~! 여자가 남자 옷을 입는 것도 연구해보고 싶은 분야였는데…, 에루 군이 모델이 되어주면 기쁘겠는 걸~? 정장이라든가!”

“저, 저기 선배들 잠깐….”

“후후후, 재미있는 광경이제?”

“재미있다는 게, 선배들이 트레이닝 하는 상황이 아니라, 선배들이 저를 가지고 노는 상황이었습니까! 하나도 재미없어요!”

“에, 그런가? 내는 재미있는데? 뭐, 쪼끔만 이대로 있어도 괜찮지 않나?”

“안 괜찮다구요!”

라고 말은 했지만, 결국 선배 세 사람의 연습이 끝나고까지 구경거리가 되어버렸다. 부회장은 수고했다고 말했지만, 생각해보면 부회장이 전부 꾸민 일이잖아. 하지만 세 사람의 트레이닝 하는 모습은 볼 수 있었다. 저 정도 열정이면 도중에 포기하는 일은 없겠지. 응, 저 세 사람이라면 분명 제대로 해낼 수 있을 것이다.

돌아가는 길. 나는 휴대폰을 켜고서 스쿨 아이돌 사이트에 접속했다. 즐겨찾기를 해놓은 곳으로 들어가자, 어느새 이름이 바뀌어있었다.

“μ‘s….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9명의 여신들인가. 3명밖에 없으면서 꽤 스케일이 큰 이름이네요.”

하지만 코우사카 선배답다. 앞으로 고생할 것을 생각하면 이 정도의 포부가 적당하겠지. 정말이지, 멋있는 이름이다. 이 μ‘s는 앞으로 1명, 1명씩 더 늘어나겠지. 언젠가는 9명이 모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녀들은 오토노키자카에 새로운 역사를 써나가겠지. 그런 예감이 든다.

휴대폰을 몇 번 터치하자, 발랄한 효과음이 울리면서 하나의 팝업창이 떠올랐다.

 

[응원하시겠습니까? 예 / 아니오]

 

나 한 사람의 응원으로 랭킹은 올라가지 않겠지만. 선배들, 힘내세요. 마음을 담아, 나는 힘껏 [예]를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