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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라이브 IF

[팬픽] 러브라이브! IF ~만일 학교가 남녀공학이 된다면~

러브라이브! IF

~만일 학교가 남녀공학이 된다면~ START:DASH!

 

1장, 이루고 싶은! 나의 꿈ㅡ

 

“왜냐면 가능성을 느꼈어. 그래… 나아가자! 후회하고 싶지 않아, 눈앞에는 우리들의 길이 있어!”

창문을 통해 희미하게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잘 들리진 않지만, 힘이 담겨 있다는 건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이런 때에 저런 활기찬 목소리를 낼 수 있다니,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폐교를 저지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꾹꾹 눌러 담겨 있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포기할 생각은 없나보네요.”

작게 한숨을 내쉰 나는 회장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회장, 오늘은 돌아가 보겠습니다.”

“응, 수고했어. 학생회에 들어와 줘서 정말 고마워.”

“회장은 안 가시나요?”

“할 일을 마치고 돌아가려고.”

“그럼.”

살짝 목례를 하고 학생회실의 문을 닫는다.

복도를 걸으며 창문 밖을 바라보니, 교정으로 가는 길에는 벚꽃이 아직 만개해있었다. 하지만 그 길을 걷는 오토노키자카의 학생들의 어깨는 생각보다 기운이 없어 보였다. 걷는 것도 즐거워야 할 하굣길이 재미없다. 그게 당연하겠지.

나야 뭐, 도망치고, 도망쳐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학교긴 하지만. 도망치겠다는 생각만으로 들어온 학교지만. 그렇게 선택한 학교라도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이, 학교가 사라지는 것이 싫다. 도망치려 했던 내가 싫다. 아무 것도 안 하려 했던 내가 싫다. 회장과 부회장을 만나 그걸 깨달았다.

……이제야 그 사실을 인정했다. 오토노키자카에 입학한 지 얼마 안 됐지만, 여긴 좋은 학교라고 생각한다. 다른 데선 느낄 수 없는 따뜻함이 있다. 그러니까 회장님의 폐교 저지. 끝까지 따라가 볼까나.

Love Live!

 

이야기는 돌아가 어제, 우리 오토노키자카 학원에 다니는 학생들이 전원 체육관에 집합한 일이 있었다. 이런 이벤트 자체는 희귀했기에, 체육관에 모인 아이들은 모두 무슨 일일까 하며 잔뜩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이사장님을 바라보았지만, 이사장님의 입에서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가 튀어나왔다.

“학교를 폐교하겠습니다.”

단숨에 술렁이는 아이들. 동요하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도쿄, 치요다구. 아키하바라와 칸다, 진보쵸라는 3개의 마을 사이에 학교가 하나 있다.

계속 진화하는 최신 문화의 거리ㆍ아키하바라와 역사와 전통의 거리ㆍ칸다, 그리고 조용한 어른의 책의 거리ㆍ진보쵸의 사이에 마치 에어 포켓과 같이 뻥 뚫려있는, 사람의 그림자도 드문 그 거리의 중심으로 옛날부터 존재하는 전통교 오토노키자카 학원.

그러나 이렇다 할 특색도 없고 단순히 평범함을 칭송하고 있던 오토노키자카 학원은 소자녀화와 도너츠화의 물결에 밀려 근년에 들어서는 학생 수가 격감했다. 어떻게든 학생 수를 늘리기 위해, 여학교인 것을 남녀공학으로 바꾸어봤지만, 어찌 된 일인지 학교에 입학한 남학생 수는 1명.

그게 바로 나다. 어째서 이 학원으로 들어왔냐고 묻는다면, 딱히 흑심 같은 건 없고. 사람이 많이 없기에 이곳으로 온 것이지만 도리어 사람이 없는 것이 내 발목을 잡고야 말았다. 아니, 입학한 남학생 수가 나 하나인 걸 봐서는 곧 소식이 들려오지 않을까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말이야. 오토노키자카가 폐교되면 어디로 가야하는 걸까. 그런 것을 생각할 때쯤 이사장님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조용히.”

웅성거림이 작아진다. 이사장님은 한 번 둘러보고 난 뒤, 입을 열었다.

“지금 당장 폐교한다는 게 아닙니다. 만일 내년에 입학 희망자가 정원수를 밑돌았을 경우에 폐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이죠. 그렇게 된다면 오토노키자카는 내년 학생을 받지 않고, 지금 여기 있는 학생들이 전원 졸업할 때 까지만 학교를 존속시킬 생각입니다. 그러니까 너무 당황해하지 마시고, 지금밖에 없는 학창생활을 보람차게 보내길 바랍니다. 이상.”

 

 

당장은 짐을 안 싸도 된다는 말이구나. 일단 그건 다행스러운 소식이다. 하지만 뭐랄까, 최후의 방파제가 무너진 느낌이 들었다. 개운치 않았다. 복도에 붙여진 벽보를 보니, 그 느낌은 더욱 강해졌다.

반에 돌아온 후에도, 소란스러운 건 여전했다.

“호에~ 카요칭! 어쩌지, 어쩌지? 폐교래!”

“으, 응…. 그러네….”

“우으, 카요칭, 너무해! 학교가 없어지면 다른 학교에 들어가야 되는 거라구? 편입시험이라든가 전혀 공부해두지 않았다냥! 우으으~.”

“리, 린쨩, 지, 진정해~. 우, 우리들이 졸업할 때까지는 폐교하지 않겠대.”

“저, 정말!? 다행이다냥~! 이제 안심하고 점심을 먹을 수 있겠다냥!”

“후훗, 린쨩도 참.”

여기저기 소란스러운 대화를 들으며 매점에서 사온 빵을 뜯었다. 대부분의 의견은 당장 폐교가 되지 않아서 다행이다, 라는 것이다. 그러나 몇몇 아이들은 내년부터 점점 사람이 적어져가는 학교를 걱정하고 있다. 우리가 1학년이기에 느낄 수 있는 가까운 현실이겠지. 내년엔 우리와 지금의 2학년. 내후년엔 우리밖에 남지 않는다.

넓은 학교인데, 우리들밖에 없다니 쓸쓸하지 않을 리가 없지. 일종의 납득을 하며 크게 빵을 한 입 물었다. 그것과 동시에 드르륵, 하고 교실의 앞문이 활짝 열린다. 그리고 마치 자신의 교실인 마냥 당연하게 들어오는 두 사람. 그 걸음걸이에는 일말의 망설임조차 없다. 그런 당당한 행보에 ‘이런 사람이 우리 교실에 있었나?’하고 멍하니 생각에 잠겼고, 그 두 사람이 내 앞에 왔다는 것을 눈치 채기 까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저기.”

“……?”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애석하게도 사람은 나 혼자. 그렇다는 건, 즉 이 사람은 나를 보며 말하고 있다.

이제 슬슬 친구 한 두 명은 만들고 싶은데 말이지…. 혼자서 먹는 밥은 맛없다, 라는 건 아니지만 조금 불쌍하게 여겨진다. 나 스스로도.

“잠깐 시간 괜찮을까?”

“아, 네.”

정신줄을 놓을 뻔했다. 가까이서 보니, 이 사람. 엄청난 미인이다.

딱 봐도 물들인 게 아닌, 자연스럽고 깔끔한 블론드. 계속 보고 있으면 금방이라도 빠질 것 같은, 맑고 푸른 눈동자. 여성치고는 키가 큰 편에 속하지만, 그저 크기만 한 편이 아니다. 날씬하게 뻗어 나온 하얀 다리. 군더더기 없이 매끄럽게 이어진 허리는 무엇인가 스포츠를 했었던 게 아닌가 생각된다. 또한 가슴은 얌전하게 교복 아래 숨어있지만, 분명 벗으면 누구보다도 대담해질 것이 틀림없다. 말하자면 당장이라도 모델에서 스카우트해갈만 한 균형 잡힌 몸매. 귀엽다는 말보다는 예쁘다는 말이 어울리겠지.

그렇다고 옆의 있는 사람이 뒤처져 보이는 건 아니다. 오히려 다른 방향이지만 동등할 정도의 매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허리 밑까지 내려오는 바이올렛의 머리를 양 갈래로 묶어 귀여움에 포인트 업. 얼굴에 띤 여유로운 미소는 모든 것을 감싸줄 것만 같았다. 그 특징은 미소에서만 나타나는 게 아니다. 조금 더 밑으로 내려가면, 교복으로도 감출 수 없는 가슴 라인을 엿볼 수 있다. 감출 생각은 전혀 없는 듯, 당당한 태도가 포용력과 동시에 만질 수 없다는 신성함을 부여한다. 키는 옆의 사람보다는 좀 더 작아 언뜻 통통한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얕은 지식에서 나온 편견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언밸런스한 균형이긴 해도, 오히려 언밸런스한 쪽이 좋은 것이다.

“후후, 한창 때의 청소년이라는 건, 참말로 건강하구마.”

내 시선에 눈치 챘는지, 바이올렛 머리의 사람이 심술궂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옆의 블론드의 사람은 전혀 눈치 채지 못한 듯,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다. 어쩐지 죄책감이 들어, 나는 얼른 화제를 돌렸다.

“저어, 무슨 용건이시죠?”

두 사람은 잠시 서로를 바라보고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너, 학생회에 들어오지 않겠니?”

“……네?”

Love Live!

 

점심시간도 조금 남았기에, 나와 두 사람은 자리를 옮겨 얘기를 계속했다.

“갑작스럽게 이런 부탁을 해서 미안해. 나는 아야세 에리, 3학년. 이 학교의 학생회장을 맡고 있어.”

이어서,

“내는 토죠 노조미. 에리치와 같은 3학년. 일단은 부회장을 맡고 있대이. 잘 부탁한대이.”

하고, 두 사람이 먼저 자기소개를 끝마쳤다.

아까 교실에서는 몰랐는데, 지금 보니 두 사람의 리본은 초록색. 즉, 나보다 선배라는 말이다. 당당한 모습이, 처음부터 선배의 냄새가 풍기긴 했지만.

참고로 말해두자면 오토노키자카는 학년 별로 교복의 다는 리본의 색이 다르다. 방금 말했듯, 초록색은 3학년. 자줏빛깔이 도는 붉은색은 2학년. 나와 같은 1학년들은 모두 하늘색이다.

“저는 에루라고 합니다.”

“응. 알고 있어. 오토노키자카가 남녀 공학으로 바뀌면서 들어온 유일한 남학생이지?”

“후후, 무엇을 목적으로 들어온 걸까나~?”

“딱히 이상한 목적을 갖고 들어온 건 아닌데요. ……아니, 처음부터 목적 같은 건 없었어요. 그냥, 도망치듯 온 거니까요.”

현실에 짓눌려버릴 것만 같아서 도망쳐왔다. 아무런 목적도 없다. 하고 싶은 일도 없었다.

“그런 저보고 학생회에 들어오라는 건가요?”

“억지로 들어오라고는 말하지 않아. 그저, 네 힘이 필요해.”

“이야기 정도라면 들을 수 있지 않긋나?”

두 사람의 진지한 눈빛. 그 눈빛에 못 이긴 나는 결국 미약한 한숨을 내쉬며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뭐, 이야기 정도라면….”

“고마워. 현재 오토노키자카가 폐교 위기에 처해있다는 건 알고 있지? 그에 우리 학생회에는 지금 하는 일 외에, 독자적으로 폐교를 저지하려고 생각하고 있어. 그러려면 보다 다양한 의견이 필요한 게 사실이고.”

“그런데 지금의 학생회엔 여자밖에 없다 아이가. 그니께 다른 관점을 가진 ‘남자’학생을 학생회에 불러, 보다 양질의 의견을 듣고 싶은 기라. 힘쓰는 일이 있을 지도 모르고.”

“그렇…군요.”

확실히 여자와 남자의 뇌 구조는 달랐지. 내가 있다면 독특한 의견을 낼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내가 ‘할 마음’이 있을 때의 얘기가 아닐까. 할 마음도 없는 녀석이 어중간하게 자기가 다니는 학교랍시고 폐교를 저지해보겠어! 라는 가벼운 기분으로 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저는… 오토노키자카의 신입생이지만, 딱히 오토노키자카에서 무엇을 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들어온 것도 아니기에 이 학교에 별다른 미련은 없습니다. 폐교가 되는 건 개운치 않지만, 제가 나서서 저지해야 된다는 의무감도 없고요. 그런 제가 오토노키자카 학교의 폐교를 저지하겠다니, 오히려 오토노키자카에 실례가 되는 건 아닐까요? 그리고 그 이전에, 저는 아직 제가 하고 싶은 일조차 찾지 못했어요. 이런 상태에서 다른 일에 신경 쓴다는 건….”

빙 돌려 거절하는 나의 말에 쓴웃음을 짓는 학생회장.

“어쩔 수 없지. 억지로 들어오게 할 순 없으니까. 하지만 그럴 맘이 들면 찾아와줘. 우리 학생회실은 언제든 열려있으니까.”

그러나 부회장은 아직 포기하지 않았는지 내 등 뒤로 다가와 어깨를 주무르며 귀에 속삭였다.

“그럼 한 번 견학한다는 것으로, 조금 구경하고 가는 건 어떻노? 학생회는 전원 여자. 남자는 에루 군 혼자. 주물주물 같은 걸 할 기회가 있을 지도 모른대이?”

“견학하는데 그런 기회가 있으면 문제잖아요!”

“그럼 진짜 들어오면 주물주물 같은 걸 할 기회가 있을 지도 모른대이?”

“견학이든 진짜 들어가든 똑같잖아요! 그럴 거면 진짜 들어가고 말…지…… 윽!”

“후훗, 한 입으로 두 말하긴 없기대이.”

뭐랄까, 이 부회장님한테는 정말이지 절대로 이기지 못할 것 같은 그런 오오라를 느낀다. 지금 여기서도 거절했다간 이상한 일을 당할 것 같은 예감이 들어,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견학뿐이에요. 뭘 하면 되죠?”

“정말이니? 다행이다. 그럼 일단 학생회실에서 기다려주겠니? 나와 노조미는 잠깐 다녀올 데가 있거든.”

“쪼매만 기다리래이. 아주 좋~은 일, 해주꾸마.”

거절하지 않아도 이상한 일을 당하는 건가. 등줄기를 달리는 오한에 몸을 움츠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얼른 학생회실을 향했다.

 

학생회실의 문을 열자, П자 형식으로 되어있는 테이블에, 학생회장과 부회장이 앉아 도시락을 까놓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생각보다 많이 늦어져서 마음이 바뀐 건가하고 생각했어, 에루 군.”

“수상한 일을 하고 온 기가?”

면목이 없습니다. 일을 보고 온 두 사람보다 늦었으니 할 말이 없다. 그치만 이 학교….

“그게 아니라… 단순히 학교가 너무 커서 길을 잃었어요. 학생회실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고 무작정 걸어 다니기만 했거든요.”

내 말에 학생회장은 기가 막힌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입학할 때 나누어준 팜플렛에 지도가 있었는데, 한 번도 보지 않았던 거니?”

가전제품을 사도 설명서는 읽지 않는 주의라 말이죠. 죄송합니다. 길치는 아니니까 빠르게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후후, 어쩔 수 없구마. 어차피 방과후에는 발품을 팔 생각이었고. 덤으로 에루 군을 함께 데리고 다니면서 학교 소개를 하는 건 어떻노, 에리치?”

“응, 그래야겠네. 우리 오토노키자카의 학생으로서 본분이 되어 있질 않아. 학생회의 가입 여부를 떠나 학교 소개를 받아줘야겠어.”

단호한 학생회장에 표정. 아무래도 거부권은 없는 것 같다.

“그런데, 발품을 팔 생각이었다고 하셨죠? 그건….”

“자자, 에루 군. 그렇게 재촉하지 말래이. 일단 같이 앉아서 밥이라도 묵재이.”

“아까 빵 먹었는데요?”

“한창 자랄 때인 남자아이가 고작 빵 정도로 배부르다 말하는 건 아니겄제? 내 걸 조금 나눠줄 테니 묵으라~.”

부드러운 가슴을 과시하듯 내 팔에 슬쩍 달라붙으며 젓가락으로 음식을 집어 ‘앙~’하고 들이미는 부회장. 저기요, 옆에서 회장이 엄청나게 노려봅니다만?

“노조미! 그런 파, 파렴치한 행위는 그만둬!”

“흐음? 어디가 파렴치한 행위꼬? 내는 단지 한쪽 팔을 움직이지 못하는 에루 군에게 음식을 멕여주는 것뿐이대이?”

그 한쪽 팔을 못 움직이게 만든 게 당신이라고! 회장님이 “정말!” 이라고 말하자 부회장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팔짱을 풀었다.

“에릿치도 함 해볼텨?”

“엣? 나, 나는 괜찮아…….”

당황하면서도 얼버무리지 않고 제대로 대답해주는 성실함이 그녀를 학생회장까지 이끌어준 걸까. 뭐, 상관없지만. 그것보다도 궁금한 것이 있었다. 눈동자를 굴려 학생회실을 둘러보았다. 학생회장과 부회장, 그리고 나. 총 5개의 의자 중에 2개가 비어 있었다.

“저, 회장. 학생회에 다른 사람은 없나요?”

“음? 아아… 있어. 학생회에 소속되어 있다고 해서 꼭 학생회실에서 밥을 먹으란 규칙은 없으니까. 나랑 노조미같은 경우 회장, 부회장이다 보니 쌓인 업무 같은 건 주로 우리가 처리해야 하거든. 신학기라 서류의 양도 많고, 차라리 여기서 밥을 먹으면서 처리하는 게 훨씬 편해.”

확실히, 저 바구니에 놓인 서류의 양은 장난이 아니다. 아무리 봐도 하루에 만에 끝낼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바구니 안에 있는 서류를 하나 집어 들고 내용을 보자,

“동아리 예산 신청서….”

이건 꽤 고생하겠는걸. 어느새 곁에 다가온 부회장이 내 표정을 읽었는지 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매년 하는 일이라케도 역시 익숙해지지 않아. 이 시기 만큼은 학생회는 모두의 적이나 마찬가지니께 말이제.”

학생회는 적인가…. 시선을 돌려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성실해 보이는 회장은 밥도 제대로 먹지 않고 서류와 눈싸움을 하고 있다. 나에게 장난만 걸어오던 부회장은 서류를 볼 때만큼은 굉장히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저기.”

“응? 아 참, 불러놓고 너무 일만 하고 있었네. 미안미안. 견학이라곤 해도 맡길 만한 일이…….”

면목 없다는 얼굴로 이리저리 주위를 둘러보는 회장. 그 모습이 조금 귀여워 회장이 무언가 찾을 때까지 놔둘까 싶었지만, 점심시간도 그다지 남지 않은 것 같고….

“작년도 동아리 예산안을 보고 싶은데요. 그리고 각 동아리의 인원수, 활동하는 회원 수도 알 수 있다면 좋구요.”

“으음? 그 말인즉 학생회에 들어올 맘이 들은기가?”

“힘들어 보이니까, 그냥 조금 도와줄 생각이 든 것뿐이에요. 얼른 주세요.”

우후훗, 하고 입꼬리를 올리는 부회장. 윽, 그 전부 알고 있다는 얼굴 굉장히 심기에 걸리거든요!

“일단 할 수 있는 데까지만 해볼게요. 회장 그 서류도 주세요.”

“이, 이것도? 마음만으로도 괜찮은데.”

“후훗, 완전히 넘어온 거나 마찬가지구마.”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야 알아주시렵니까, 부회장.

 

“하, 하라쇼….”

“진짜 대단하구마…, 이 많은 서류를 하나로 통합해뿟다. 게다가 예산도 적절. 정말이지 이 이상 완벽할 순 없대이!”

두 사람보다 수업이 일찍 끝난 나는, 선생님께 학생회의 임원이 되어(물론 아직 된 건 아니다.)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열쇠를 달라고 부탁해 먼저 학생회실을 향했다. 두 번째라 길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문제는 방대한 양의 서류. 일단 동아리 예산 신청서는 물론이고, 동아리 신청서나, 학생의 의견, 교실 사용 신청서 같은 것이 있었는데 서류가 있어 절차가 복잡해진 것과, 꼭 서류가 필요하지만 기재해야 할 내용 자체가 복잡한 것으로 나누니 보기가 한결 나아졌다. 그걸 그대로 정리, 선생님께 말해 이사장님과 만나 서류 양식을 다시 작성하고 거의 통합하다시피 했다.

“양식이 많이 바뀐 것 같은데…?”

“아아, 전의 것과 비교하면서 써주세요. 이사장님에게 의견을 말씀드려야 하니까요.”

“이사장님도 만나고 왔나?!”

물론 당장은 서류를 바꿀 수 없다는 이사장님의 의견이 있었지만, 먼저 임시로 이쪽을 써보고 학생회의 의견을 들어 천천히 바꾸어나가면 된다고 말씀드렸더니 마지못해 승낙해주셨다.

“다른 학생회 임원도 있는데, 이 양의 서류 정돈 도와달라고 부탁하세요.”

“그러고 싶지만, 왠지 미안한걸….”

같은 학생회 간부인데도!

“에릿치는 그런 부분도 있으니께. 어쨌든 다시 한 번 고맙대이. 이걸로 오토노키자카 폐교 저지 쪽에 전념할 수 있겄지.”

“응, 그러네. 서류 건에 대해서는 꼭 답례를 하도록 할게. 미안해. 협력한다는 면목으로 이런 걸 시켜서.”

“아뇨. 제가 하고 싶어서 한 거니까요. 그보다 점심시간에 말했던 발품 파는 일에 대해서는….”

회장은 깜짝 놀란 얼굴로 손을 저었다.

“그건 괜찮아. 원래는 에루 군에게 학교를 안내함과 동시에, 나와 노조미가 학교의 좋은 점을 직접 돌아다니면서 다시 봐두려고 했거든. 그런데 봐, 오토노키자카 폐교 저지에 관련된 일이잖아. 에루 군은 아까 오토노키자카 폐교 저지에는 참가하고 싶지 않다고 했으니까, 무리하게 할 필요 없어.”

그런가. 그럼 슬슬 집에….

“아니제. 에릿치, 그거랑 그거랑은 완전히 다르다 안 카나. 학교 안내는 학생회로서, 학교의 지리를 잘 모르는 학생이 있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대이. 나중에 에루 군이 또 길을 잃으면 곤란하지 않겄나? 에루 군은 우릴 따라다니는 것만으로 충분하니께, 같이 다니는 건 어떻노?”

내가 서류를 도와준 건 오늘 하루 만에 처리하기엔 불가능한 양이기도 하고, 점심을 먹으면서도 열심히 하려는 두 사람의 모습이 멋…, 불쌍해서 그랬기 때문이다. 절대로 마음이 움직이거나 한 건 아니다. 하지만 학교 안내는 굳이 받을 필요성을 못 느낀다. 두 사람의 오토노키자카 폐교 저지 이야기엔 끼어들 수도 없고, 학교는 다니다보면 익숙해지기 마련이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부회장이 뭔가를 꾸미는 것 같아서 싫었다.

이 얘긴 각하다. 나는 재빨리 문고리를 돌려 나가려고 했지만, 부회장은 재빠르게 내 손목을 낚아채었다. 그리고는 환하게 웃는 얼굴로….

“응? 어떻노?”

“아니, 저기…….”

놔줄 생각은 추호도 없는 것 같았다. 게다가 왠지 모르겠는데 힘도 안 들어가.

“알겠으니까 놔주세요….”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지만, 대조적으로 회장과 부회장의 얼굴은 밝아졌다.

나와 회장, 부회장은 학생회실에 가방을 두고 안내 겸, 오토노키자카의 좋은 점을 찾으러 밖으로 나왔다.

“이사장님은 입학 희망자가 정원수를 밑돌았을 경우 폐교할 수밖에 없다고 발표하셨어. 그렇다는 건, 입학 희망자가 모이면 폐교가 안 된다는 뜻으로 해석이 가능해.”

“즉, 이 학교의 좋은 점을 어필해 입학 희망자를 모이게 하믄 된다는 것이대이.”

우리들이 가장 먼저 도착한 건 도서실. 안으로 들어가자 살짝 코끝을 찌르는 나무의 냄새와, 포근한 햇볕이 아늑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었다. 그야 사람은 굉장히 적었지만, 그래도 나는 이 분위기가 제법 마음에 들었다.

“자, 에루 군. 여기가 도서실이대이.”

“보면 아는 데요.”

“도서실엔 들른 적 있나?”

“오늘이 처음이에요.”

흐음, 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부회장.

“도서실에 발을 들였을 때 어떤 느낌이 들었나?”

“이 도서실라면 계속 있어도 질리지 않겠다는 느낌?”

나는 도서실의 안쪽을 돌면서 여기저기 책장을 살폈다. 사람의 때가 타지 않은 오래된 책이 있기도 하고, 고등학생이 보기엔 조금 어려운 책들도 많이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풍취가 있어서 좋긴 하지만, 너무 낡은 것도 고려해봐야 될 것 같아요. 책장도 어느 한 쪽만 인기가 있고, 너무 인기가 없는 부분은 새롭게 바꿔야 할 것 같구요. 그리고 이거 고등학생의 도서실이라는 점도 염두에 둬서 좀 더 학습용 책도 구하면 좋겠는데요.”

첫 느낌은 굉장히 좋지만, 도서실을 한 번 돌아보면 생각보다 읽을 책이 없어 힘이 빠진다. 게다가 어떤 책은 먼지도 쌓여 있고. 오토노키자카가 예전부터 존재하는 학교라는 건 알지만, 도서실도 예전인 채로만 있으면 안 된다.

“그렇구마. 그런디 마 그거 알구 있나? 도서실은 다른 장소보다 사람이 적지라. 그래서 말인디, 이런 저런 일도 할 수 있다 안카나?”

다시 장난기가 발동한 부회장이 슬쩍 다가와 내 귀에 속삭였다.

“정말, 노조미!”

회장의 귀에도 들렸는지 얼굴을 발갛게 물들이고 곧장 부회장을 향해 소리쳤지만, “도서실에서 책읽기를 권장한 것뿐이대이~.” 하면서 능글맞게 물러나는 부회장.

“그라믄 바로 다음 장소로 가볼까?”

그러면서 수첩에 무언가 메모하고는 활기차게 발걸음을 옮겼다. 교정을 나와, 조금 걷다보니 기분 좋은 햇살을 가득 품고 있는 안뜰에 도착했다. 방과후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학생들이 이 안뜰의 벤치나, 화단 근처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희미한 꽃향기에 절로 미소가 떠오른다.

“여긴 안뜰. 어때? 꽤 넓지? 오토노키자카의 학생들이 특히 점심시간에 많이 들르는 곳이야. 여기서 친구들과 얘기를 나누며 도시락을 먹곤 해. 오토노키자카의 카페테리아라고나 할까.”

실제로 공원에 피크닉을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싱그럽게 피어난 꽃들과 초록의 나무들. 그리고 털이 푹신푹신해 보이는 말과 먹이를 주는 사육사 등, 전체적으로 느긋하고 한가로운 분위기에 삼켜질 것 같았다. ……잠깐만. 말은 뭐지?

“저기 저 말은…….”

내 물음은 닿지 않았다. 어느새 회장과 부회장은 저만치 떨어져 있는 화단에서 마음껏 꽃을 구경하고 있었다. 이런, 혼자 용기를 내는 수밖에 없나. 하는 수 없이 혼자서 말이 있는 우리로 다가갔다. 사육사가 능숙하게 물이 담긴 페트병을 교체하고, 볏짚을 갈아주는 걸 보고 나서 말을 걸었다.

“이거 말인가요?”

“햐읏!”

움찔, 하고 가늘게 어깨를 떨면서 천천히 뒤를 돌아보는 사육사. 옅은 갈색의 머리칼이 바람에 흔들리며 얼굴이 환하게 드러났다.

“……코이즈미?”

“……에루 군…?”

언제나 같은 반에서 마주치는 굉장히 낯이 익은 얼굴이었다. 대화는 한 번도 못 해봤지만. 아니, 반 아이들과는 대화다운 대화를 한 번도 못해봤는데….

“내 이름 알고 있었구나. 반에서 아무도 선뜻 말을 안 걸어주길래 완전히 왕따 당하는 줄로만 알았어.”

그러자 코이즈미는 재빨리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마구 흔들어 부정했다.

“아, 아냐! 왕따라니…. 반 아이들 모두 에루 군과 친해지고 싶어 한다고 생각해. 단지 반에 하나밖에 없는 남자니까…… 마, 망설이는 게 아닐까…? 그, 에루 군 과묵하고… 조금 무서운 분위기이고…… 아앗, 미, 미안!”

열심히 고개를 숙이며 내게 사과하는 코이즈미. 지금까지 이렇게나 가까이서 본 적이 없어 몰랐지만, 코이즈미 실은 엄청나게 귀여운 것 같은데…. 안경을 벗고 콘택트렌즈를 끼면 응, 아이돌 같을 지도.

그것보다 내가 반에서 그런 이미지였구나…. 과묵하고 싶어서 과묵한 게 아닌데 말이지. 일단 대화 상대가 없잖아. 하지만 코이즈미의 말도 일리가 있다. 내가 마음속으로 어떻게 생각하든 사람은 가장 먼저 외모에서 판단한다. 내가 행동을 했을 때야 비로소 내 이미지는 바뀌어나가기 시작한다. 생각하기만 하고 행동으로 나서지 않으면 영영 답은 나오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오토노키자카 폐교를 저지하려는 두 사람도 생각하기보다는 이렇게 행동에 나선 게 아닐까…. 나랑은 너무나도 다르다. 도망쳐 가만히 생각만 할뿐인 나와는…….

“있잖아, 코이즈미. 이 말 같은 거 사육하는 담당이 너야?”

“아, 응…. 저어, 말이 아니라 알파카…인데…….”

“아, 알파카라고 하는구나. 혹시라도 힘쓰는 일이 있다면 사양 말고 얘기해줘. 언제든지 도와줄 테니까.”

멋대로 그렇게 말하고는 손을 흔들며 얼른 회장과 부회장에게 향했다. 뭐야, 이거. 사랑에 빠진 시골청년도 아니고. 하지만 먼저 나 자신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런 행동으로 내가 바뀔 거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회장, 부회장.”

“오, 에루 군, 좋은 시간 보내고 있길래 신경 쫌 썼는디 우땠노? 저 아랑 꽤 친해진 거 아이가?”

“무슨 소릴 하시는 거예요! 하아, 원래 같은 반이었다구요. 그것보다 얼른 다음 장소로 가요.”

“오오~? 부끄러워하고 있구마, 부끄러워하고 있어~.”

“학생으로서의 본분에 어긋난 교내 연애 행각은 금지야.”

회장까지….

“이제 됐어요. 저 슬슬 집에 가도 되나요?”

“갈까, 노조미? 다음은 학교의 시설을 소개하려고 하는데. 궁도장이나, 수영장 같은 곳 말이야. 열심히 부활동에 매진하는 아이들을 보면 정신도 맑아질 수 있고.”

무시입니까.

“응~ 그거 좋은 생각이대이! 아까 그 얌전해 보이는 아도 좋았지만, 의외로 체육 소녀도 먹힐 수 있을 지도 모르고 말이제.”

두 사람 다 대화의 핀트가 안 맞는 것 같으면서도 결국 해야 할 일은 똑같다는 게 정말이지 이상할 따름이다. 나름 학생회의 콤비라는 건가.

결국 나와 회장, 부회장은 해가 저물 때까지 여러 장소를 돌고는 다시 학생회실로 집합했다. 일단 내 가방도 거기 있고 말이지.

“안내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건 쓸데없는 말일지도 모르겠는데, 잘 생각해보면 다른 학교보다 눈에 띄는 점이 없기에 이렇게 학생도 안 모여드는 게 아닌지….”

“뭐어, 확실히….”

“그건 그러네….”

내 말에 힘없이 맞장구를 치는 두 사람.

궁도장이나 수영장, 운동장 등, 여러 부가 활동하고 있는 모습을 구경했다. 설비는 상당히 만족스러웠고, 부활동도 굉장히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였다. 청춘을 만끽하고 있다는 열기가 피부에 직접 전해질 정도로 뜨거웠다. 하지만 이건 다른 학교도 마찬가지다. 이래서야 눈에 띄기는커녕 묻힐 수밖에 없다.

오토노키자카의 설비가 만족스럽다면, 다른 학교는 호화스럽다. 그만큼 부활동에 전념하는 학생들의 열기도 뜨거울 수밖에 없고, 상대적으로 오토노키자카는 눈에 띄지 않게 된다.

다들 지쳤는지 학생회실 안에는 옅은 숨소리만이 크게 들려왔다.

“슬슬, 집에 가도록 할까?”

“그게 좋겠구마. 해도 저물기 시작했고.”

묵묵히 가방을 챙기고 교정을 나와, 횡단보도까지 아무런 말도 없이 함께 걸었다. 회장은 횡단보도에서 옆으로 꺾어, 나와 부회장을 배웅해주듯 바라보았다.

“어떻게 저지할 지는 내일 좀 더 알아보자, 노조미. 그리고 에루 군. 오늘은 고마웠어. 정말로 안내만 할 생각이었는데, 여러 가지 의견도 받아버려서….”

뭘요. 부회장은 처음부터 그럴 생각인 것 같았는데요. 오토노키자카의 폐교를 저지할 입장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덮어놓고 거부하는 건 아니니까요. 의견을 구한다면 말씀드리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어요. 함께 저지하자고 하면 역시 망설여지지만.

“혹시라도 학생회에 들어올 생각이 있거든 언제든지 말해줘. 에루 군 같은 인재는 항상 환영하니까.”

“네에….”

회장이 이야기를 마치자 타이밍 좋게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었다. 나와 부회장은 회장에게 인사를 하곤 그대로 횡단보도를 건넜다. ……부회장과 단 둘인가. 솔직히 말해 굉장히 부담스럽다. 어떤 식으로 장난쳐올지 예측할 수가 없으니….

“있잖아, 에루 군.”

몇 분쯤 아무런 말도 없이 길을 걷던 부회장이 갑자기 멈춰 섰다. 불안을 느끼며 뒤를 돌아보자, 부회장은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옆을 가리켰다.

“조금 들렀다 가지 않을래?”

 

Love Live!

 

가파른 계단, 그 위를 쭉 올려다보자 고풍스러운 느낌이 물씬 풍기는 푸른색의 커다란 지붕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이 근처에 이사 온 뒤로 어딘가에 들러본 적이 없네…. 신사는 한 번쯤 들러봤어야 하는데.

“공물, 필요해요?”

“그냥 와도 괜찮대이.”

“아뇨. 저 이 지역의 신사에 들르는 건 처음이니까…. 역시 공물 사가지고 올게요. 위에서 기다리고 계세요.”

“앗…!”

분명 이 근처에 만주가게가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집에 갈 땐 언제나 이쪽 길로 가니까,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다. 나는 곧장 달려 가옥 형식으로 되어 있는 가게에 도착했다. 간판에는 달필로 커다랗게 ‘호무라’ 라고 쓰여 있다. 아직 발을 들이기도 전인데 벌써부터 달콤한 냄새가 주위에 가득했다.

드르륵, 문을 열어 조심스레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

“으앙, 팥소 이젠 질렸어! 훨씬 더 질렸어~!”

라는 목소리가 가장 먼저 들렸다. 뭐가 더 질렸다는 걸까?

“저어….”

“죄, 죄송합니다! 마음껏 고르고 계세요.”

카운터를 보던 아주머니가 쓴웃음을 지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호노카! 화과자 가게의 딸이 팥소 질렸다느니 말하는 거 아냐! 가게에 들려버리잖니!”

굉장히 고생하시네요, 호무라 가게 아주머니. 아니, 남의 집안사정을 신경 써서 뭐하는 거야, 나. 다시 돌아온 아주머니는 “죄송해요.” 라고 한 번 더 고개를 숙였다. 아뇨, 저는 괜찮아요.

“혹시 공물용 떡 같은 거 있나요?”

“아, 공물용이라면 이쪽에. 카가미모찌라든가, 아! 달맞이떡도 많이 사가세요.”

커다란 떡이 2개 상하로 겹쳐져 있는 것과, 동글동글하게 반죽된 예쁜 떡. 둘 다 예쁜 모양을 갖추어 굉장히 맛있어보였다. 내 마음을 눈치 챘는지, 아주머니께선 살짝 웃으며 “물론 사람이 먹어도 맛있답니다.”라고 말했다.

으음, 그러고 보니 공물을 바치고 며칠 있다가 사람이 그걸 먹는 거였나? 하지만 바깥에 두는 거니까, 하루만 놔둬도 먹기가 좀 그렇지 않을까. 다른 사람이 가져갈 염려도 있고. …형식만이라도 갖출까.

“달맞이떡엔 팥소가 안 들어있죠?”

“네. 그래서 카가미모찌보다는 단 맛이 떨어지는 편이지만, 고소하고 쫀득하기로는 일품이라 어린이들보단 어른들에게 인기가 있는 편이죠.”

단 건 그다지 먹지 않으니까, 달맞이떡으로 하자. 그렇게 마음먹고 손을 들어 달맞이떡을 가리키는 순간, 다시 안쪽에서 목소리가 커졌다.

“유키호! 너 오토노키자카 수험 안 치는 거야!?”

“시간차가 너무 심하다구!”

드르륵,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엄마, 엄마!”

“뭐니?”

“유키호, 오토노키자카 수험 안 칠거래!”

“들었어.”

“그럴 수가! 우리 집은 할머니도 엄마도 오토노키자카잖아!”

목소리의 주인은 오토노키자카에 다니는 학생인 걸까? 그나저나 할머니까지 오토노키자카에 나오셨다니, 대체 그 학교 얼마나 오래된 거야….

“그보다 오토노키자카, 없어지는 거잖아?”

“벌써 소문이!?”

“다들 얘기하고 있는걸. 그런 학교 수험 쳐도 소용없다고…. 그야 그렇잖아? 언니네 학년 같은 경우, 두 반밖에 없다구?”

“하지만 3학년은 세 반이나 있는걸!”

“1학년은?”

“……한 반.”

“보라구! 그렇다는 건 내년에 1학년은 반이 하나도 없다는 거잖아!”

“그렇지 않아! 코토리 쨩이랑 우미 쨩과 함께 없어지지 않도록 생각하고 있어! 그러니까 없어지지 않아!”

……오토노키자카 폐교에 대해 생각해주는 사람이 더 있었구나. 아니,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자신의 학교가 없어지는데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을까? 학교는 제 2의 고향이나 마찬가지다. 청춘을 바치는 곳이다. 집을 제외하면 가장 오래 생활하는 곳이다. 없어지는 건 그 학교의 학생에 있어 굉장히 불합리한 일일 것이다.

폐교를 저지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내가 마음속으로 방황을 하고 있더라도, 그런 마음으로 오토노키자카 폐교에 대해 생각하는 건 실례가 되는 일이 아니다. 그런 건,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솔직하게 말해서 도망친 것이다.

어떤 일에서 도망쳐와 오토노키자카에 입학하고, 도망친 주제에 바보 같이 그 일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방황하고, 그 와중에 회장과 부회장에게 부탁 받은 학생회에 들어가는 일조차 마음이 싱숭생숭한 것을 핑계로 삼아 또 도망치고….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언니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

여동생의 말도 틀린 건 없었다. 일개 학생이 자신의 학교가 폐교가 되게 하지 않기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하지만 내 경우는, 내가 나를 바꾸면 되는 일일 텐데도…, 답은 나와 있는데도 아무것도 못 하고 있었다.

“저어… 손님?”

“아, 죄송해요. 달맞이떡으로 주시겠어요?”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와주세요~.”

봉지에 정성스레 담은 떡을 갖고, 나는 빠르게 신사까지 뛰었다. 떡을 사는데 시간을 꽤 지체하고 말았다. 부회장께 기다리라고 했는데…. 쉬지 않고 계단까지 뛰어올라간 나는 겨우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죄, 죄송해요….”

차오르는 숨을 진정시키고 고개를 들자, 어느새 교복에서 무녀복으로 탈바꿈한 부회장이 빗자루를 들고 신사의 입구에 서 있었다. 저물어가는 해의 황금빛이 부회장을 따뜻하게 감싸 안았다.

선녀. 가장 적절한 단어를 찾자면 이게 아닐까. 발갛게 물든 볼을 한껏 부풀린 채 나를 바라보는 선녀의 모습에 절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저 멀리 걸린 그림자가 바람에 흔들린다. 마치 선녀의 날개옷이 일렁거리는 듯한 착각에 사로잡혀, 그대로 넋이 빠진 나를 제정신으로 되돌려 놓은 건 부회장의 떼찌였다.

콩, 하고 머리를 쥐어박는 부회장.

“무슨 생각을 그리 하노? 여자를 기다리게 하다니, 남자로서 실격이대이!”

“죄송해요.”

진심으로 사과하자, 선녀, 아니, 부회장은 뾰로통한 표정을 지우고는 머리를 쓰다듬었다.

“뭐어, 반성하고 있는 것 같으니께 한 번 정도는 용서해주꾸마. 담부턴 기다리게 하믄 안 된대이.”

“네에….”

다음?

“가서 느긋하게 떡을 골랐던 건 아닌 것 같구, 무슨 일 있었던 거 아이가?”

빗자루로는 천천히 바닥을 쓸고 있지만, 그 예리한 눈은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을 단번에 포착해냈다. 대체 정체가 뭔가요, 부회장. 딱히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제가 간 화과자 가게에 오토노키자카의 학생이 있었어요. 여동생이 오토노키자카에 수험 치지 않는 걸로 말다툼을 했는데, 여동생은 이제 곧 없어질 오토노키자카에 수험을 쳐서 뭐하냐고 말하고. 언니 쪽은 오토노키자카가 없어지지 않도록 친구와 함께 생각하고 있다고 했어요.”

“그렇구마…. 오토노키자카를 제대로 생각해주는 아가 있어서 기쁘네.”

“내심 대단하다고, 그러면서 동시에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일개 학생이 어떻게 학교의 폐교를 막을 수 있는 건지. 학교가 없어진다는 건 굉장히 큰 문제잖아요. 자신의 손에도 잡히지 않을 정도로. 여동생 쪽은 하나도 틀린 게 없었어요. 그건 언니가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고 하더라구요.”

“상식적으로 생각하믄 학생이 폐교를 저지할 수 있을 리 없다. 맞는 말이대이. 하지만 아무것도 안 해보고 나는 할 수 없어, 하고 포기하는 일보단, 성공할지 미지수지만 노력해보고, 전력으로 힘을 쏟아 붓는다. 그 쪽이 훨씬 좋지 않나?”

확실히. 아무것도 안 해보고 포기하는 건, 굉장히 꼴사나운 일이지…. 하지만, 나는….

“그 표정.”

포옥, 하고 부드러운 감촉이 볼에 닿았다. 순간적으로 일어난 탓에 아무런 반응도 못하고, 나는 그대로 부회장의 품에 안겨 들어갔다.

“부, 부회장!?”

솔직히 남자로서 딴 맘을 먹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당황하면서 올려다본 부회장의 얼굴은 굉장히 쓸쓸해보였다. 마치 내 감정을 그대로 받아준 듯이.

“알고 있나? 무녀는 신과 인간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는 거. 이 무녀님께 이야기하믄 신님께도 잘 전달된대이. 서양식으로 말하자면 수녀님이나 신부님에게 회개하는 걸까나? 그러니께 걱정 같은 게 있다면 확 털어놔도 괜찮대이?”

어째서. 아니, 어떻게 알아챈 거지? 마음속을 꿰뚫어보는 눈이라도 가진 걸까?

“별로… 그런 건….”

정곡을 찔려, 나도 모르게 부회장에게서 한 걸음 떨어졌다.

“그 표정 말이야. 아까 함께 있었을 때도 이따금씩 보였대이. 외롭고, 쓸쓸하고, 불안하고. 내가 가진 문제를 남에게 털어 놓는 건 어쩐지 죄처럼 느껴지기도 할기라. 그렇지만 마음을 열고 말하면 분명 받아주는 사람이 나타날 거고, 손을 뻗어줄 사람이 나타나.”

“부회장….”

“내가, 널 도와 주께. 아니믄 내로는 널 도와줄 수 없는 기가?”

“……아까도 그렇고. 반대로 물어볼게요. 왜 저를 가만히 두지 않는 거죠? 학생회의 꼭 필요한 인재이기 때문에? 그거라면 분명 저 말고도….”

말을 끝내기도 전에 천천히 고개를 젓는다. 그리고는 약간 쓴웃음을 머금은 채 말했다.

“예전의 내랑 너무 닮아서, 내버려둘 수 없는 기라. 외롭고, 쓸쓸하고, 불안하고, 의지할 사람은 한 명도 없고, 이해해주는 사람도 없으니 당연히 문제를 털어놓을 수 없고. 그러니까 도망치고. 도망친 곳에서도 생각날 정도로 정직하게 자기 마음과 마주보고.”

정말이지 이 사람은…. 이런 식으로 접근해오는 거, 엄청나게 치사하잖아. 나에 대해 뭘 아냐고, 따지고 들고 싶어도 부회장의 말은 정곡을 찌르는 것들뿐. 그렇다고 화내면 해결 될 일이 아니란 건 안다. 나를 위해서 말해준다는 것도 알고 있다. 닮은 건 잘 모르겠지만, 분명 부회장도 과거에 나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는 거겠지.

무엇보다도 쓸쓸한 얼굴을 하고 있는 부회장에게 정색하는 건 불가능하다.

“평소에는 이상한 장난만 쳐오면서 지금만 진지하다니… 치사해요…….”

“엣, 아, 아니, 그건 그런 게 아니대이! 그, 그저, 그게…, 남자애 대하는 방법이 서투른 것뿐이다 아이가!”

갑자기 뺨을 발갛게 물들이며 소리치는 부회장. 어라, 의외의 귀여운 반응.

“서투르다니, 아깐 절 그렇게 놀려놓고서요?”

“하, 하는 내도 부끄러웠다! 그, 그래도 에릿치 앞이니께….”

“남자에 굉장히 익숙해보였는데 그게 아니란 말씀이시죠? 부끄러웠던 거 확실해요? 회장 앞이라고 강한 척 하다니, 선배 의외로 귀여운 면이….”

“시끄럽대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날아오는 빗자루를 가볍게 피해준다. 부회장은 오기가 생겼는지 에잇! 에잇! 하고 여러 번 휘둘렀지만 스피드는 여전히 피할만한 수준. 아니, 이건 오히려 진검잡기를 해도 될 수준!

퍽.

“아….”

“…….”

“내, 내 잘못이 아니대이. 에, 에루 군이 계속 놀린 게 나쁜 거대이!”

“괜찮아요. 아픈 것보단 쪽팔린 게 더 크니까. 그러니까 모른 척해주세요.”

당황하던 부회장은 잠시 나를 바라보더니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풉, 그기 뭐꼬? 에루 군 바보 같대이! 큭큭….”

“눈물 날 정도로 웃겨요?! 아아, 정말. 그만 웃어요! 지나가는 사람들이 쳐다본다고요!”

“아, 알고 있지만, 푸훕! 그, 방금, 에루 군의 표정과 분위기가 자꾸 떠올라서…….”

“돌아갑니다.”

“미안! 미안하대이! 참말로 미안, 그만 웃을게!”

여자처자해서 겨우 진정된 부회장. 나는 한숨을 쉬며 봉지에서 떡을 하나 꺼내었다.

“이거 드세요.”

“음? 달맞이 떡 아이가? 신님한테 줄 공물 아니었나?”

“무녀와 신은 서로 이어져 있으니까. 부회장이 먹으면 신이 먹은 거나 마찬가지겠죠.”

“말은 잘 하는 구마. 뭐, 먹겠지만.”

새침한 표정을 지으며 내 손에서 떡을 빼앗아간다. 조금은 긴 이야기에 어울려주는 거니까 음식 정돈 대접하자. 그리고 나도 한 입. 어느 정도 분위기가 정리된 걸 보고 나는 입을 열었다.

 

 

“아버지께서 회사를 운영하고 계세요.”

“회사?”

“이름 댈만한 곳은 아니지만요.”

“흐음. 그렇구마. 그래서 서류도 쉽게 처리했던기가?”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하는 부회장. 쉽게, 는 빼주세요.

“이사장님께 한소리 들었다구요. 제 형이라면 좀 더 깔끔하고 잔소리 듣지 않을 정도로 멋지게 처리했을 거예요.”

“형?”

“저보다 3살 위의 형이 있어요. 저와 같이 회사를 잇기 위해 공부했지만, 완전히 차원이 달라요. 저 같은 건 발끝에도 못 미칠 정도로. 천재. 뭐든지 잘해냈어요. 어린 나이인데도 회사에는 벌써 따르는 사람이 많아요.”

푸념으로도 들리는 내 이야기에도 부회장은 말없이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표정변화는 가지각색이지만. 지금은 순수하게 감탄한 표정.

“어릴 때부터 듣고 자랐어요. ‘형만큼만 하면.’ ‘차기 회장 자리에도….’ ‘불쌍한 동생.’ 같은 거. 유일하게 제 편을 들어주는 어머니도 작년에 돌아가셔서, 프렛셔에 견디지 못한 저는 고등학교를 아버지가 지정해준 곳이 아닌 오토노키자카에 입학했어요. 꼴사납게 도망쳐버린 거예요. 그런 주제에 하고 싶은 건 아무것도 없어요. 부회장 말대로, 정말 바보 같네요, 저.”

자책하니까 더 우울해졌다. 이런 내 기분도 몰라주고, 부회장은 은은하게 미소 짓곤 말했다.

“왕바보구마.”

“윽….”

맞는 말이다. 맞는 말이긴 한데 그렇게 직구로 들으면 저 완전히 녹다운이라고요, 부회장.

“확실히, 도망치기만해선 안 된대이. 아무도 알아주지 않으니께. 하고 싶은 것도 모두, 먼저 에루 군이 스스로에게 다가가야 만날 수 있는기라.”

부회장의 말대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내가 먼저 나에게 마음을 열어야 나를 받아주는 사람이 나타나고, 내게 손을 뻗어주는 사람이 나타나는 건가.

완전히 납득. 그리고 그만큼 풀이 죽는다. 어깨를 움츠리고 땅을 바라보고 있는 나에게 부회장이 손을 내밀며 “하지만.”하고 덧붙였다.

“에루 군이라면 분명 찾을 수 있을 기다. 불안하고, 방황하게 될 것 같으믄 내한티 기대라. 에루 군을 위한 어깨는 언제든 비워놓을 테니께."

내 머리를 쓰다듬는 부회장의 손이, 내게 속삭이듯 말하는 차분한 목소리가,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져서. 지금까지 갇혀 있었던 차가운 얼음감옥을 단숨에 녹여준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역시 니는 내랑 닮았다.”

그 말이, 지금의 내게 커다란 위안과 동시에 확신을 주었다. 오토노키자카로 도망쳐서 다행이다. 이 사람과 만나서, 정말 다행이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일단 쓰다듬는 손을 살짝 피하면서 비스듬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고마워요, 부회장. 아주 조금은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요.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 보인 것 같아요. 먼저 꿈을 찾고 싶어요."

말을 꺼내는 것이 조금 낯간지러워 살짝 볼을 긁는다. 부회장은 그걸 놓치지 않고 내 정면으로 휙! 하고 뛰어들었다.

“부끄러워하고 있제? 맞제? 겸연쩍다는 표정으로 볼 긁는 거 음청 귀엽대이! 아아~ 볼도 빨갛게 물들이고~!”

“무슨 소리에요! 전혀 아니거든요? 석양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거거든요! 어, 어쨌든 다시 이야기를 돌려서! 그, 도, 와준 답례로 도와드릴게요….”

“으응? 잘 안 들린대이?”

진지한 표정에서 다시 장난스러운 미소로 바뀐 부회장. 이 사람 알고 있다. 분명히 알고 있는 얼굴이라고, 저건! 오토노키자카 폐교 저지를 끈질기게 거절한 내가 다시 말하기엔 좀 그렇다는 걸 알고서 일부러 안 들리는 척 하는 거다! 하지만 이대로 장난이 끝날 것 같지 않은 부회장의 장단에 계속 어울리다간 내가 답답해 쓰러지겠지.

한 번 심호흡을 크게 하고, 부회장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우읏, 자, 장난쳐서 화난 기가?”

“저, 학생회에 들어갈게요. 회장과 부회장의 오토노키자카 폐교 저지, 끝까지 도와드릴게요. 답례, 라는 것도 있지만 아마 이 내딛는 한 걸음이 앞으로의 저를 결정하지 않을까 생각하거든요.”

“후후, 그렇구마. 도망쳐온 학교지만, 무작정 도망친 것만이 아니라 지금의 자신을 바꾸기 위해 도망쳤다. 오토노키자카의 폐교 저지를 도와주면서 바뀌어가는 에루 군. 아주 좋대이!”

안개가 개었다. 복잡한 미로에서 빠져나와 머리가 개운해졌다. 그제야 시야가 트이고 해가 완전히 기울었다는 것을 인식했다.

“벌써 저녁이네요. 죄송해요, 시간 다 잡아먹어서. 아르바이트는 언제 끝나요?”

“음? 돌아갈 시간은 벌써 지났는디?”

“지, 진짜 죄송해요! 저 때문에……. 저…, 어두우니까 바래다드릴게요.”

“괜찮대이! 가까우니께 혼자 돌아갈 수 있다! 아니믄…, 어두운 틈을 타 뭔가 할라 하는 기가?”

이상한 손 모양을 만들고는 점점 다가오는 부회장. 나는 그대로 뒷걸음질 치며 계단을 한 칸 내려갔다. 같이 있으면 오히려 내가 위험하다는 걸 눈치 챘다.

“부회장, 내일 봬요.”

“그렇게 시원한 반응이면 장난칠 맘도 싹 사라진다 안 카나. 뭐어, 괜찮대이. 이 거리에 나쁜 사람은 없을 기다. 혼자 돌아갈 수 있으니 그리 걱정 말그라.”

“정말 괜찮은 거죠?”

“응. 괜찮대도. 알바가 늦게 끝나는 건 딱히 오늘이 처음이 아니대이. 자자, 어서 가그라.”

이번엔 등까지 떠밀면서 나를 보내는 부회장. 이렇게까지 확답하니 믿지 않을 수 없다.

“알겠어요. 아, 그리고 그 떡. 부회장이 가지셔도 되요.”

“혼자서 다 먹는 건 무리. 여기 사람들에게 나눠줄 긴데 괘안나?”

“부회장 거니까 마음대로 하세요. 그럼, 내일 뵐게요.”

부회장의 대답도 듣지 않고 나는 재빨리 신사의 계단을 내려와 그대로 달렸다. 배어나오기 시작한 땀이 선선한 봄바람에 스쳐 뺨을 차갑게 식힌다. 나쁘지 않은 기분이다. 개운해진 머릿속에 앞으로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가 어슴푸레 보인 느낌이 들었다.

내가 도망쳐온 이곳에서 무언가를 하고,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부터 어쩐지 병이라도 걸린 것처럼 가슴 언저리가 뜨거워져, 금방이라도 터질 것만 같았다. 병에 걸린 건 아니고. 아마 이건, 기쁨을 주체 못하는 거겠지. …집에 도착하면 여러 가지 찾아볼까.

Love Live!

 

다음날 아침, 나는 평소보다도 1시간 일찍 준비해 집을 나섰다.

어제 집에 도착해 가볍게 씻은 뒤, 곧장 조사에 착수한 결과 여러 가지를 알았는데, 현재 상황을 타파할 수 있는 방법은 한 가지. 바로 스쿨 아이돌이라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현실적이진 않다. 하지만 애초에 일개 학생이 학교를 바로 세운다는 것 자체가 현실적이지 않으므로 딱히 개의치 않는다. 이것이야말로 학생이 할 수 있으면서도 가장 가능성이 높은 방법임이 틀림없다.

폐교. 도쿄 같은 도심지에서 학교가 폐교되는 일은 드물다. 아니, 검색 결과 오토노키자카 외에는 없었다. 대체 얼마나 인기가 없는 거냐고. 이런 감상은 제쳐두고, 더 찾아보니 농촌 쪽에는 폐교되는 학교도 어느 정도 있었다. 폐교가 확정인 학교였는데도, 스쿨 아이돌이 있었다.

동영상에 나온 그녀들의 춤과 노래는 사실 현역 아이돌과 비교하면 상당히 덜 된 수준이다. 하지만 춤, 노래에 배어나오는, 보는 사람을 뜨겁게 만들어주는 열정, 보는 사람에게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주는 힘은 현역 아이돌에게 지지 않았다. 오히려 같은 학생이란 걸 알아서 그런지, 전달력은 훨씬 높았다. 굉장히 인기가 있었으니, 만약 저 학교가 외지가 아닌 중심지였다면 폐교는 충분히 막을 수 있었겠지.

돌아와서, 우리들은 어떨까? 노래와 춤은 연습하면 못 할 건 없다. 외모 면에서 볼 때 회장, 부회장이 다른 스쿨 아이돌에 밀리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압도한다고 자부한다. 거기에 학교는 도쿄. 충분히 가능성은 있다.

그렇더라도 문제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아니, 가장 큰 문제에 봉착한다. 도쿄에 있는 다른 학교의 스쿨 아이돌. 중심지인 만큼 학교는 많고, 스쿨 아이돌도 여럿 있다. 우리 오토노키자카는 다른 학교의 스쿨 아이돌을 뛰어넘어야 하는 입장인 것이다. 그 중에서도 입학률 톱을 자랑하는 전국구 클래스의 스쿨 아이돌 A-RISE. 도쿄지구에 있는 입학생들을 모조리 뺏어가는, 앞으로 스쿨 아이돌을 시작하면 맞붙어야 할 최고의 적이 되겠지.

적을 알고, 적에게 배운다. 마침 A-RISE가 있는 UTX고교는 가깝기도 하니 한 번쯤 견학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아니, 좋은 기회다. 앞으로 내가 내딛어야 할, 오토노키자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의 첫 걸음이 될 것이다.

…아니, 첫 걸음이 되어야 했다.

UTX고교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나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UTX가 인기 있는 이유 중엔 A-RISE가 한 몫을 톡톡히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뿐만이 아니다. 대체 뭡니까, 이 사기적인 입지조건에 최첨단 설비로 무장한 근미래적인 학교.

과연 이걸 감히 학교라고 불러도 되는 걸까? 그것조차 의문이다. 여러 지하철이 다니는 가운데에 우뚝 서 있는 커다란 빌딩. 올려다보면 햇빛에 눈이 가려 꼭대기도 보이지 않는다. 보아하니 1층부터 끝까지 전부 학교로 되어 있는 것 같은데. 오토노키자카에서 학생회실을 찾을 때만 해도 오토노키자카가 굉장히 큰 학교라고 생각했는데, 여기에 비하면 그렇게 큰 것도 아니었구나. UTX에 다니는 사람들은 전부 부잣집의 아가씨임이 틀림없겠지. 응.

계단을 올라, 교문? 아니, 입구? 쪽을 향했다. 유리로 비친 창문 너머로 하얀색의 단정하고 예쁜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휴대폰 단말을 이용해서 교내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지하철을 이용할 때처럼 휴대폰 단말을 저 기계에 갖다 대면 인식하는 모양이다.

죄송합니다. 멋대로 A-RISE 덕분에 인기 있는 학교라고 착각했습니다. 학교 스펙부터가 달랐습니다. 오토노키자카가 안 좋다는 게 아니다. 오히려 적당히 향수의 느낌이 나서 나야 좋지만, 요즘 여고생들한테는 어떨까라는 소리지. 유행에 민감한 아이들이 다니기엔 수수하다는 생각이 든다.

“UTX학원에 어서 오세요!”

문득 귀를 울리는 청량한 목소리. 그에 반응하듯 작은 환호성이 일었다.

“여러분 잘 지내고 있나요~?”

뒤로 조금 물러나자 전광판 하나가 떡하니 중앙에 자리 잡은 것을 볼 수 있었다. 저 세 명. 어제 인터넷으로 한 번 본 적 있는 사람들이다.

가운데에 있는 아이보리색의 보브컷. 나란히 서 있는 두 명에 비해 아담한 사이즈를 하고 있지만 눈에는 생기가 띠어 훨씬 반짝거린다. 그래서일까 어쩐지 존재감이 굉장히 커 보인다. 회장, 부회장보다 한 살 어린 저 아이가 리더인 걸 보면 내 기분 탓만은 아니겠지. 명랑한 스포츠소녀 타입에 가까우려나. 대인관계도 굉장히 좋을 것 같다.

키라 츠바사의 왼쪽에 있는 건 유우키 안쥬. 약간 아래로 내려간 눈에, 살짝 웨이브 진 갈색 머리, 상냥해 보이는 미소가 매력적인 스쿨 아이돌이다. 남자들에게 엄청 인기 있는 타입이지, 저거. 조금 부회장과 비슷해 보이지만, 확실히 다른 점이 있다면 색기가 아닐까. 유우키 안쥬는 행동 하나 하나가 귀여우면서도 파괴적인 매력을 갖는 반면, 부회장은 색기는 유우키 안쥬에게 밀리겠지만 안심하고 다가갈 수 있는 포용력이 있다. 젊지만 위험한 매력이 넘치는 양호 선생님 타입.

그리고 마지막. 등허리까지 내려오는 보라색 스트레이트에 치켜 올라간 눈매. 전체적으로 강한 인상을 주고, 사람을 압도하는 카리스마를 지닌 토도 에레나. 셋 다 숨을 삼키게 하는 매력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토도 에레나는 특별하다. 인상, 분위기, 퍼포먼스 이 모든 것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오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

키라 츠바사의 다가가기 쉬운 매력은 동년배나 연상을 끌어들이고, 유우키 안쥬의 부드러우면서도 달콤한 매력은 연하를 포로에 빠뜨리고, 토도 에레나의 카리스마 넘치는 매력은 여자아이들을 사로잡는다.

그야말로 스쿨 아이돌계의 소악마. 실물은 아니지만,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 굉장하다는 걸 새삼 몸으로 느낀다.

“저기, 카요칭! 지각해버린다구?”

“조금만 기다려…!”

응? 방금 익숙한 목소리가……, 하고 뒤돌아보기 직전에 전광판의 안에서 A-RISE가 소리치며 리듬이 흘러나왔다.

“Private Wars!”

이거 어제 음원으로 들었던 Private Wars의 PV영상…! 몸을 긴장시키고 무엇 하나 놓치지 않겠다는 심산으로 전광판을 노려보았다.

신비로운 스포트라이트의 빛과 함께 A-RISE의 세 사람이 조심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Can I do? I take it, baby! Can I do? I make it, baby!

Can I do? I take it, baby! Can I do? I make it, baby!

그래, 가버리는 거야? 뒤쫓지 않겠지만.

기본이야. 무리를 이루는 건 싫어.

고독의 애절함을 아는 사람이지만, 가끔씩 말을 나누며

서로의 장소에서 서로의 마음이 고조되는 each other's day!

What'cha do What'cha do? I do "Private Wars"

정의와 비열함을 손에 넣어

What'cha do What'cha do? I do "Private Wars"

원래 인생은 약간의 용기와 정열이잖아?

Can I do? I take it, baby! Can I do? I make it, baby!

Can I do? I take it, baby! Can I do? I make it, baby!

 

언제부턴가 호흡을 멈추고 보고 있었다. 크게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머릿속으로 방금 전의 영상을 재생시킨다. 변조한 순간부터 파워풀하게 바뀌는 안무. 무대 예절에 어긋나지 않는 화려한 미소. 격한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딱딱 맞아 떨어지는 세 사람의 호흡. 그리고 무엇보다도, 무대가 끝나고 나서도 귓가, 입가에 맴도는 마법의 노래.

“…완전히 압도당했다.”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는 걸 깨달았다. 허탈함을 넘어 존경할 정도다. 뛰어넘을 수 있을까? 아니, 딱히 뛰어넘지 않아도 폐교만 저지할 수 있다면…. 뛰어넘지 않아도 폐교를 저지할 수 있을 만큼 일이 쉽게 돌아갈까? 하아, 생각이 너무 많다. 일단 학교 갈까….

“……코이즈미, 호시조라?”

한숨을 내쉬며 뒤를 돌아보니, 황홀한 표정의 코이즈미와 못마땅한 표정의 호시조라가 함께 서 있었다.

호시조라. 풀네임은 호시조라 린이었던가. 나와 같은 반이지만 역시나 얘기해본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아는 게 별로 없다. 나 아직 왕따라고.

코이즈미랑은 매일 함께 다녔던 걸로 기억하고. 아, 그러고 보니 스포츠를 엄청나게 잘했었어. 일전에 한 번 체력검사를 위한 달리기를 했었는데 단독으로 톱. 그리고 제가 2등이었습니다. 여자한테 져서 죄송합니다. 변명은 아닌데, 진짜 엄청나게 빨랐다고. 완전히 스포츠소녀다. 머리가 짧은 것도 그 탓일까?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지만.

“오! 남자인데도 나한테 달리기에서 진 에루 군이다냐!”

그렇게라도 기억해줘서 고맙구나.

“…아, 안녕, 에루 군.”

“코이즈미. 좋은 아침. 여기서 뭐하고 있어?”

“에루 군이야말로….”

나? 나 요즘 스쿨 아이돌에 흥미가 생겨서. 특히 저 A-RISE라는 그룹이 신경 쓰여. 그래서 관찰하러 나왔다고나 할까, 이거 변태 같잖아. 그냥 둘러대기로 할까.

“UTX에 흥미가 있어서. 아침에 시간 내서 들러봤어.”

“에? 에루 군 전학 생각하고 있는 거냥?! 하지만 저긴 여학교인데… 호, 혹시 에루 군은 여자!?”

네, 바보 같은 말은 거기까지. 코이즈미도 진짜로 놀라지 마!

“아, 그런 게 아니면 UTX에 좋아하는 여학생이라도 있어서 그런거냥?”

“극단적이잖아! 그냥 정말로 단순하게 UTX에 흥미가 있었을 뿐이라니까. 애초에 전학 갈 생각은 없고 말이야.”

“에루 군…, 혹시 A-RISE에 관심 갖고 있었던 거 아니야…?”

살며시 정곡을 찔러오는 코이즈미. 나는 정면으로 마주보는 코이즈미에게 못 이겨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A-RISE는 대단하지!? 외모부터가 반짝반짝 빛이 나고! 안무도 굉장히 멋있고! 노래도 신이 나고! 나 A-RISE 팬이야! 에루 군도 아이돌 보는 안목이 꽤 있네!”

갑작스럽게 눈을 빛내면서 몰아치는 코이즈미. 잠, 깐만, 캐릭터 바뀌지 않았니?! 고개를 돌리자 호시조라는 또 시작했다는 듯 한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저었다. 포기하지 말라고!

“이번 A-RISE의 의상도 정말 획기적이라고 생각해! 파워풀하면서도 신비스러운 노래와 조화가….”

“코이즈미. 지각할 것 같으니까 가면서 얘기하면 듣겠는데.”

“…아, 응. 가면서 얘기할게!”

그래. 얘기 안 한다는 선택지는 없는 거구나.

결국 학교에 도착할 때까지 나는 코이즈미의 아이돌 이상론부터 시작해, 과거의 각 세대의 스쿨 아이돌의 정점과, 변천사, 사람들의 기호에 따른 노래와 안무, 의상 변화. 취향과 기호가 많이 갈리는 현대이기에 다양한 스쿨 아이돌이 나올 수 있다는 점 등 정말로 여러 가지를 들었다. 코이즈미 대단하다. 그리고 이걸 전부 들어준 나도 대단하다.

코이즈미는 자기 자리로 돌아가기 전에 스쿨 아이돌이 게재된, 엄청난 양의 잡지를 내게 떠넘겼다.

“…흐, 흥미가 있으면 읽어 볼래?”

“……응. 고마워.”

저 웃는 얼굴에 거절의 말이라도 날렸다간 큰일 나겠지…. 피곤하긴 하지만, 솔직히 말해 코이즈미에겐 정말 고마울 따름이다.

스쿨 아이돌에 관한 건 아무것도 모른다. 시작하기에 앞서 정보가 없다는 건 굉장히 안 좋은 일이다. 가장 먼저 무엇을 해야 할지, 또한 향후의 방침마저 흐지부지 되어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코이즈미의 덕분에 스쿨 아이돌에 대해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갈피를 잡은 기분이 들었다.

흐음. 일단 방과후까지 다 읽어보도록 하자.

“있잖아, 카요칭. 원래 둘이 이렇게 친했나?”

“에, 아, 아니, 그, 그게…….”

지금까지 한 짓이 엄청나게 민폐였다는 걸 깨달은 코이즈미의 볼이 빨갛게 물들었다. 캐릭터가 바뀌어버린 자신을 보여준 게 부끄러웠던 거겠지. 눈이 마주치자 재빨리 돌려버린다.

아하하, 그거 상처 입는 다고. 눈을 피하는 코이즈미와는 반대로 의심이 가득한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는 호시조라. 나는 코이즈미에게 받은 잡지를 펴면서 구태여 시선을 무시했다.

“흠흠, 후쿠오카의 아이돌. 이건 오사카의 아이돌이군.”

“그거 일부러? 오히려 엄청 수상하다냐!”

호시조라의 추궁과 동시에 교실의 앞문이 열리며 선생님께서 들어오셨다. 굿 잡, 나이스 타이밍!

“자, 그럼 조례 시작할게요!”

“네!”

“어머, 에루 군. 웬일로 기합이 다 들어가 있네요? 후후.”

“아, 아니… 죄송합니다.”

Love Live!

 

방과후. 쉬는 시간에 놀 사람이 없는 나는, 틈틈이 잡지를 펴서 읽으며 전국의 스쿨 아이돌을 보았다. 확실히 코이즈미가 말했던 대로 요즘 다양해진 사람들의 취향과 기호에 맞춰 스쿨 아이돌의 방향성도 굉장히 여러 가지였다. 귀여움, 섹시, 천연, 츤데레, 쿨데레 등.

“코이즈미. 이거 하루만 더 빌려도 될까?”

회장이 허락만 한다면, 앞으로의 방침에 대해 얘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응! 물론!”

흔쾌히. 아니, 기쁘게(?) 승낙해준 코이즈미. 왜 그렇게 기뻐 보이는 거야? 그리고 무서워. 눈이 무서워. 새로운 세계로의 한 걸음을 재촉하는 그 손짓도 무서우니까 그만둬!

“혹시 더 알고 싶은 게 있으면 언제든 물어봐줘.”

역시. 완전히 캐릭터가 바뀌었다. 평소 발표할 때 보면 굉장히 소극적인데 말이지. 하지만 눈에 생기가 있어서, 굉장히 보기 좋은 모습이다. 응.

“응, 그럴게. 고마워, 코이즈미. 서로 돕는 처지가 됐네. 나는 코이즈미의 알파카 돌보기를 거들고, 코이즈미는 내가 모르는 아이돌의 세계를 알려주고.”

“…에? 아, ……응. 그, 그러네…….”

그 반응은, 설마하니 까먹고 있었냐!

“내 말 진심으로 안 받아들였구나. 혹시 사육당번 하는 거 오늘?”

“아, 아니… 오, 오늘은 아니지만…….”

아쉽군. 오늘이었다면 내 말이 진심이었다는 걸 보여줬을 텐데.

“그럼 사육당번일 때 정말, 진짜로 꼭 말해줘. 코이즈미에겐 여러 가지로 도움 받았으니까. 그 답례를 하고 싶어.”

“그렇게 대단한 일도 아닌 걸….”

“아니아니, 내게 있어선 대단한 일이라고.”

아이돌도 대단하지만, 무엇보다도 내게 행동하라고 깨닫게 해준 건 너니까. 물론 의식해서 그런 건 아니겠지만. 그리고 부회장이 자상하게 나를 감싸주었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결심이 섰어. 이 학교에 와서, 정말 이래저래 도움만 받네. 그렇기에 더더욱, 오토노키자카를 폐교시키지 않겠다는 일념이 불타오른다. 도움만 받은 채로 끝낼 순 없으니까.

“슬슬 가볼게. 코이즈미도 너무 늦게 들어가면 위험하니까 일찍 들어가. 그리고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꼭 불러줘. 알겠지?”

“으, 응…….”

코이즈미에게 일침을 놓고 교실을 나왔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까먹는다는 건 있을 수 없어. 모른 척한다면 그건 일부러 그러는 걸 거고, 그 말은 즉 내 도움 따위 필요 없으니까 친한 척 기어오르지 말라는……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친한 척 굴었지요. 급 우울모드 스위치가 들어가 버렸다….

“안녕하세요…….”

학생회실의 문을 열자 폭죽과 함께 묘한 팡파르가 귀를 때렸다.

“에루 군. 학생회에 온 걸 환영해.”

“에루 군, 학생회 가입 축하한대이─… 아니, 시작하기도 전부터 와 그래 침울해 있는 긴데?”

들어오자마자 가장 먼저 보였던 부회장의 장난기 가득한 얼굴이 금세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변해있었다. 회장은 “여, 역시 노조미가 강요한 거니? 그런 거니?” 하며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안절부절 못했다.

“그냥… 같은 반 여자애와 조금 친해진 것 같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저 엄청 말 걸고, 완전 민폐였네, 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어제의 포지티브는 다 어데갔노…. 같은 반 아면 어제 안뜰에서 얘기하고 있던 그 아 맞제? 속으로 그런 생각할 아로는 안 보이는 데?”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도 있잖아요.”

“그렇게 어려운 말도 알고 있구나.”

“아니, 회장. 고등학생쯤 돼서 모르는 게 더 이상한 거 같은데요.”

“엣? 그러니? 으음, 에루 군을 보면 나도 모르게 동생처럼 대하고 싶어진단 말이지. 왜일까?”

고개를 갸웃하는 회장. 이야, 정말 왜일까요? 그보다 회장 동생이 있었나요? 회장이랑 같은 블론드 머리이려나. 보고 싶다아.

“머, 나이도 한 살 차이밖에 안 나니께 그런 거 아이가? 피는 안 이어져 있지만 동생뻘이 맞구마.”

“어? 회장 동생은 오토노키자카의 2학년인가요?”

“아니, 너보다 한 살 아래야. 지금 중학생 3학년. 오토노키자카가 없어지지 않도록 힘내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해. 내년 오토노키자카에 꼭 와줬으면 좋겠거든.”

새삼 오토노키자카의 폐교 저지에는 여러 마음이 쌓아올려져 있다는 걸 깨달았다. 회장의 마음. 부회장의 마음. 본 적은 없지만, 내가 갔던 화과자 집의 사람이나, 그 사람의 친구들도 나름 생각하고 있는 게 있을 것이다. 그런 마음들이 하나로 합쳐지면 좋을 텐데…. 하기야 다 모르는 사인데 그런 식으로 일이 쉽게 풀릴까. 나는 지금 내가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회장. 말이 나와서 그런데, 제가 어제 조금 조사해봤어요. 오토노키자카가 폐교를 하는 데에 있어 과연 우리들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학생이기에 할 수 있는 범주는 거의 없었지만, 학생이기에 할 수 있는 일을 찾았어요.”

“정말이니!?”

잠, 그, 그렇게 기대하시면 조금 곤란한데요. 애초에 회장이 허락해줄지, 아닐지도 미묘한 거라서 조금 간을 보는 건데.

나는 가방에서 코이즈미가 빌려준 잡지들을 꺼내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이건?”

“아이돌이에요. 스쿨 아이돌이라고 해서 학교 안에서 학생끼리 아이돌 그룹을 만들어 활동하는 걸 말해요. 이쪽은 오사카의 아이돌. 이쪽은 후쿠오카의 스쿨 아이돌. 상당히 많은 수의 스쿨 아이돌들이 활동하고 있어요. 저희가 눈여겨봐야 할 점은 이 기사. 스쿨 아이돌 그룹 중에서도 상당히 인기 있는 그룹이 재학 중인 학교에는 입학 희망자가 점점 늘고 있다고 하더라구요.”

“흐응. 그래서 그 스쿨 아이돌이라는 걸 한다고? 에루 군이?”

“어째서 접니까! 아니 뭐, 남자 아이돌이 있어도 이상할 건 없지만! 스쿨 아이돌 중에 남자 아이돌은 한 명도 없다구요!”

“전대미문의 스쿨 아이돌! 굉장히 좋지 않니? 여장남자도 허용해줄 수 있어.”

“제 자존심이 허용하지 않는데요!?”

“인기도 끌고 좋을 것 같은데.”

“제 외모를 보고 말하세요. 진심으로 말하는 건 아니죠? 그렇다고 해주세요!”

절대로 여장에 어울릴 외모가 아니라고요! 마음속의 외침을 들었는지, 부회장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려주었다.

“뭐어, 장난은 그쯤 하고. 에릿치, 진짜로 우짤래? 에루 군이 말한 스쿨 아이돌. 지금 할 수 있고, 단기간에 최대한의 효과를 뽑아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한대이.”

“저는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어떤 스쿨 아이돌을 찾아봐도, 회장과 부회장이 더 예쁘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아이돌은 외모가 전부는 아니지만, 예쁜 사람을 선호하는 건 모두 똑같아요. 그런 면에서 볼 때 두 분은 확실히 주목을 끌 거에요. 그것이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느냐, 나쁜 방향으로 발전하느냐는 그 뒤의 이야기죠.”

“우읏…….”

“에, 에루 군. 그런 부끄러운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믄 우짜노….”

“네?”

나 그렇게 이상한 말 했던가? 열정적으로 스쿨 아이돌 설명하고 있었을 텐데? 너무 집중했더니 무슨 말 했는지 기억이 안 나네.

“어쨌든 시도해볼만 한 가치는 있다고 생각해요. 회장과 부회장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내는 괜찮은 시도, 아니, 이것 외에 길은 없다 생각한대이. 에릿치는?”

“…알겠어. 한 번 해보자. 유닛은 이렇게 셋이니?”

“글쎄 왜 자꾸 저를 포함하시는 거예요!?”

 

어느 정도 회의를 마치고 각오를 다진 우리들은 활동의 허가를 받기 위해 이사장실을 향했다. 회장의 노크를 신호로 발을 맞추어 안으로 들어간다.

“실례합니다.”

“어머, 아야세 양에 토죠 양. 그리고 에루 군까지? 학생회를 시작했다는 게 진짜였구나. 1학년인데 열정이 대단하네. 그래서 이렇게 셋이 모여 어쩐 일이니?”

우리 세 사람은 한 번 씩 눈을 마주치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는 회장이 앞으로 한 발짝 나서며 이야기를 꺼냈다.

“학생회로서 학교 존속을 목표로 활동을 해나가고자 합니다. 발표에서는 입학 희망자가 정원을 밑돌았을 경우 폐교라는 결정을 할 수밖에 없다고 공시되어 있었습니다.”

“즉, 정원을 웃돈다면.”

“폐교를 철퇴할 수 있다는 거죠.”

태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이사장님.

“확실히 그렇지요. 하지만 그렇게 간단히 학생이 모이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되어버린 겁니다. 무언가 좋은 방법이라도 있나요?”

본론이 왔다. 부회장은 답지 않게 조금 긴장된 모습을 보였고, 회장은 선뜻 말하는 것을 망설이고 있는 것 같았다. 그야 그렇겠지. 이사장님 앞에서 그것도 폐교 저지를 위해 아이돌이라니, 우리가 아무리 진심이라 외쳐도, 장난으로 받아들이면 할 말이 없다. 어쩔 수 없지. 애초에 스쿨 아이돌 제안은 내가 낸 것이다. 당연히 말하는 것도 내가 해야지.

“스쿨 아이돌이에요.”

“스쿨… 아이돌…?”

역시 이사장님도 자세하게 알고 계신 눈치는 아니다. 그렇다면 일단 밀고 나갈까.

“요즘 중, 고등학생 사이에서 가장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 스쿨 아이돌이에요. 진짜 아이돌과는 다르게 학교에서 학생이 시작하는 아이돌이기에 가장 나이대가 가까운 중, 고등학생들이 주목하고 있죠. 특히 중학생들 사이에서는 인기 있는 스쿨 아이돌의 학교에 입학하자는 붐이 일어나고 있기도 해요. 여기서 아이디어를 가져왔어요. 만일 우리 오토노키자카에도 스쿨 아이돌이 있고, 그 스쿨 아이돌이 인기를 끌기만 한다면 분명 입학생들이 많아질 거예요.”

“과연. 일리가 있군요. 게다가 많은 조사를 했어요. 그래서 그 굉장한 열정을 가진 에루 군이 스쿨 아이돌을 하는 건가요?”

“아니, 왜 아까부터 다들 절 스쿨 아이돌로 만들고 싶어 하는 거죠? 남자 스쿨 아이돌은 전대미문이에요.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나올지 미지수라구요.”

“어머, 그랬었나요?”

후후훗, 하고 입가를 가리고 웃는 이사장님. 묘하게 남자의 가슴을 움직이는 매력이 있단 말이지, 우리 이사장님. 웃는 모습이나, 말하는 모습이나 굉장히 어른스럽고 예쁘다. 상당히 동안인 점까지 전부 연심을 자극한다. 그렇지만 뭐, 이사장님이 스쿨 아이돌 하는 건 굉장히 무리수지. 응. 상상해버렸다.

“그럼 에루 군이 최초로 남성 스쿨 아이돌이 되면 되잖아요. 올해부터 남녀공학이 되긴 했지만, 그래봐야 남자는 에루 군 한 사람. 거의 여학교나 다름없지요. 거기에 최초 남자 스쿨 아이돌이 있다면….”

“저라면 웬 변태가 있냐고 생각할 겁니다.”

“…분명 인기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사장님이 말할 타이밍을 가늠해, 이사장님의 말 위에 내 말을 덮어씌웠다. 생각해보라고! 남자 한 명에 나머지 여자. 거기에 스쿨 아이돌이 남자. 보통 얼마나 흑심이 있는 거냐고 생각하잖아! 얼마나 인기 얻고 싶은 거냐고 생각하잖아!

“변태라…. 그 부분은 인식의 차이겠지요. 에루 군, 외모는 괜찮으니까 아마 춤, 노래실력에서 갈릴 거라고 생각하는데, 거기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 분명 인기를 얻고 변태보단 멋있는 스쿨 아이돌 오빠라고 생각될 거예요. 반면 외모는 그럭저럭인 남자가 노래도 적당하게 부르고, 춤도 남들만큼 추면 변태라고 생각되겠죠?”

“허들 높다고요! 은근슬쩍 그렇게 말해 부담 주는 것도 잊지 않고, 대단하네요!”

“장난은 이쯤하고. 냉정하게 판단을 내리자면 그 아이디어는 각하입니다. 즉흥적인 착상으로 행동하더라도 상황은 간단히 변하지 않아요. 학생회는 지금 있는 학생의 학원 생활을 보다 좋게 하는 것을 생각해야합니다.”

어른의 상식적이고 모범적인 답안. 그렇기에 정론이다. 정론은 물론 나쁘지 않지만, 정론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일이 많다. 이사장님도 그건 깨닫고 계시겠지.

“아야세 양은 누굴 위해 학교를 존속시키려고 하는 거죠?”

“학교, 그리고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을 위해서입니다.”

회장의 대답도 굉장히 모범적인 답안이었다. 하지만 이사장님은 그 답변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이번에는 나를 보면서 물었다.

“에루 군은?”

나야 정해져 있다. 내가 어째서 오토노키자카의 폐교를 막으려는 건지, 그 첫 번째 이유는.

“저를 위해서입니다.”

내가 꿈으로 다가가기 위한 포석. 그것을 위한 오토노키자카의 폐교 저지. 하지만 입 밖으로 내고 보니 너무 노골적이었다는 생각이 들어 나도 모르게 입을 가려버렸다.

조금 놀란 표정의 이사장님. 하지만 그 얼굴은 금세 웃음을 터뜨리며 무너졌다.

“후훗, 그런가요? 음,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내린 답은 바뀌지 않아요. 아마 그 스쿨 아이돌을 하는 아이들은 어중간한 마음으로 하는 게 아닌, 프로와 비슷할 정도로 노력하고 진지하게 해왔던 사람들일 거예요. 호기심만으로 시작해서 잘 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이대로 아무것도 안 할 순─!”

“─에릿치!”

감정이 폭주하는 회장. 부회장의 일침에 순간 몸을 움찔하며 뒤로 물러선다. 이사장님에게 소리친 건 회장의 잘못이고, 본인도 그걸 이해한 거겠지. 절대로 흔들리지 않고, 매사에 쿨하게 대처할 것 같은 회장에게 이런 일면도 있구나.

이사장님은 회장의 폭주에도 불구하고 어른스럽게 웃으며 대처했다.

“고마워요, 아야세 양. 그 마음만 받아둘게요. 하지만 에루 군이 아이돌을 한다면 검토 해봐도 될 것 같네요. 최초의 남자 아이돌이 싫다면 여장해도 상관없어요.”

아니, 왜 이야기가 그렇게 귀결됩니까. 여장은 더 싫을 게 뻔하잖아요. 목까지 올라온 내 외침은 이사장님의 진지한 눈빛에 도로 들어갔다. 저 사람 진심이다…….

도망치듯 이사장실에서 빠져나와 두 사람이 나오는 걸 기다렸다. 다른 얘기는 안 한 건지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죄송해요, 회장. 이렇게 되어버려서….”

“아냐.”

조금 씁쓸한 웃음과 함께 고개를 가로젓는 회장. 그 모습을 보니 더 풀이 죽어버린다.

“에루 군의 아이디어, 못 밀어줘서 내가 미안하지.”

좋은 계획이라고 생각했는데, 거절당한 이유가 뭘까? 단순히 ‘즉흥적인 생각’이라는 것뿐? 아니야. 이사장님도 알고 계실 터이다. 즉흥적인 생각일지라도 지금은 폐교를 위해 무언가 행동이라도 해보는 것이 가장 좋다는 걸. 그러면 우리들이 진지하게 하지 않을 것 같아서? 선생이 학생을 못 믿으면 어떻게 해. 이사장님과 얘기를 나눈 건 몇 번 안 되지만, 그럴 분이 아니라는 건 확실하다. 그럼 이사장님은 학교가 폐교되길 원하는 걸까? 아니. 학생을 믿고 좋아하는 분이다. 이 선택지는 처음부터 없어.

그렇다면 남은 건, 무언가의 ‘핑계’라는 것. 우리에게 시키지 않은 다른 이유가 있다. 그걸 알아내야 한다. 그걸 알아내면 자연스레 행동 방침도 정할 수 있을 테지.

“……회장, 부회장. 저 잠시 바람 좀 쐬고 올게요.”

일단 머리를 식히는 게 좋겠지. 천천히 생각하자. 아직 시간은 있다.

 

Love Live!

 

카페테리아보단 시원할 것 같아 옥상으로 올라왔는데, 아무래도 먼저 온 손님이 있었나보다. 옥상 문을 열자마자 딱 눈이 마주쳐버렸다. 오렌지색의 머리가 인상적인 2학년이었다.

“남자?”

“어… 으음…, 옥상에서 혼자 바람을 맞으며 조금 애달픈 얼굴로 사색에 잠겨 있는 걸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나가볼게요.”

“잠깐잠깐잠깐! 그런 짓 안 했다구우~! 그보다 남자? 와아, 교복도 오토노키자카 걸 입고 있어! 우리 여학교 아니었나?”

올해부터 공학입니다. ……남자는 저밖에 없지만. 으음, 이 사람 어디선가 마주친 적이 있었나? 목소리를 들어본 듯한 느낌이….

“뭐, 됐어!”

엄청 대충이다!

“그것보다 자, 봐봐!”

무엇을? 그렇게 말하기 전에 선배는 옥상의 중앙으로 쪼르르 달려가 섰다. 그리고는 크게 한 번 심호흡을 하고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갔다가 스텝을 밟으며 다시 뒤로. 그러면서 빙글, 한 바퀴를 돈다. 다음 안무는 조금 침착해진다. 앙증맞고 귀여우면서도 잔뜩 기합이 들어가 있다. 보는 입장으로선 굉장히 서투르다. 하지만 이렇게나 기운이 나는 건 어째서일까.

“짠! 어때? 어때~?”

그렇게 자신만만한 얼굴 하셔도 말이죠….

“서투르네요.”

“으에…… 역시 그래?”

“그래도 덕분에 기운이 났어요. 고마워요, 선배.”

“정말!?”

침울해졌다가, 기운 차렸다가. 감정표현이 굉장히 바쁜 사람이다. 뭐, 그래도 기분전환이 되었다. 답례로 부회장처럼 고민을 들어주고 싶지만, 지금은 할 일이 있으니까.

“죄송하지만 저 이만 내려가 볼게요.”

“엣, 벌써? 옥상에 볼 일이 있었던 거 아냐?”

“딱히 옥상에 볼 일이 있었던 게 아니라….”

머리만 식힐 수 있다면 어디든 상관없었다. 그래서 비교적 바람이 많이 부는 옥상을 선택했는데. 그러고 보니, 춤을 보고 감상까지 다 말하고 나서 죄송합니다만 나 춤 왜 보고 있던 거지…. 그리고 선배는 왜 춤을 춘 겁니까…. 완전히 분위기의 주도권을 빼앗겨 버렸었다.

“어쨌든 저, 정말로 내려가 볼게요. 그럼, 안녕히 계세요!”

“앗!”

이대로 있다간 다른 일에도 휘말려 버릴 것 같아 얼른 계단을 내려왔다. 뭐랄까, 험담하는 건 아니다만. 으음, 이상한 사람이다. 나쁘지 않은 쪽으로. 계속 같이 있으면 정신없이 여러 가지 휘말려 버리는 스타일. 다시 기회가 온다면 얘기해보고 싶지만 지금은 이사장님이 거절한 이유를 찾는 게 급선무니까….

 

사랑해, 만세! 이곳이라 다행이야. 우리들의 현재가 이곳에 있어─

 

학생회실에 가기 위해 계단을 내려가는 도중, 묘하게 마음을 울리는 피아노 소리가 아무도 없는 복도를 맴돌았다.

“음악실…?”

피아노 소리와, 맑은 노랫소리는 꽃의 달콤한 향기처럼 몸에 스며들었다. 누가 부르는 걸까, 이런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그저 좀 더 듣고 싶다는 마음이 내 발걸음을 멋대로 움직였다.

다음을 돌면 바로 음악실이 나온다. 잔뜩 기대를 품고 코너를 돌았을 때, 예상치도 못한 인물이 음악실의 벽에 기대어 서 있었다.

“코이즈미!?”

나도 모르게 나온 큰 소리. 눈을 감고 벽에 기대어 서 있던 코이즈미는 깜짝 놀란 듯 몸을 떨더니 나와 음악실을 번갈아본다. 연주가 끊기고 발소리가 들린다. 코이즈미는 ‘하와와!?’ 하고 잠시 당황하더니 곧장 내 손목을 끌고 옆의 빈 교실로 들어갔다. 우리들이 들어간 것과 음악실의 문이 열리는 건 거의 동시에 일어난 일이었다.

“쉬─잇!”

내 어깨가 코이즈미의 어깨에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지만, 코이즈미는 음악실에 신경이 기울어 아무래도 눈치 채지 못한 것 같다. 이, 이건 너무 가깝다고! 조, 좋은 향기가 나는 것 같은…… 변태냐!

나도 최대한 신경 쓰지 않도록 고개를 돌리고서는 교실 밖에 고개를 살짝 내밀었다.

만지면 타오를 것만 같은 붉은 머리색. 눈매가 조금 치켜 올라가 있고, 팔짱을 낀 그녀의 인상은 차갑게 다가왔다. 그녀는 주위를 한 번 살피더니, 어깨를 들썩이곤 다시 음악실 안으로 들어간다. ……진지하게 놀랐다.

“…방금 니시키노 맞지?”

“으, 응….”

“그럼 그 아름다운 연주나 목소리도 니시키노의 것이라고?”

“나도 처음에 들었을 땐 놀랐지만…. 그 뒤로, 니시키노가 연주하고 부르는 노래가 너무 좋아서 방과 후엔 거의 매일 음악실에 들르곤 해.”

그렇구나. 그래서 여기에…. 확실히 평소의 니시키노를 보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목소리와 연주였다.

반에서 나를 빼면 유일하게 친구를 사귀지 않는 니시키노. 뭐, 난 다가가고 싶지만 다가갈 수 없다는 점과 니시키노는 다가오지 말라는 분위기를 풍기는 점이 다르지만. 어쨌든 니시키노는 반에서도 굉장히 차가운 인상을 준다.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 때 거의 반에 있는 걸 본 적이 없고, 수업 외에는 말하는 걸 본 적이 없다. 그야말로 외톨이 직행 코스를 질주하고 있다.

“설마 그 니시키노가 방과 후에 이런 걸 하고 있었을 줄이야….”

나와 코이즈미의 소란 때문에 멈추었던 연주가 다시 시작되었다.

감미로운 피아노 소리와 함께, 가슴을 울리는 목소리가 허공에서 춤을 춘다.

 

사랑해, 만세! 이곳이라 다행이야. 우리들의 현재가 이곳에 있어─

사랑해 만세! 이제 겨우 시작한 거야. 내일도 잘 부탁해 아직 골은 아니야

웃어보렴. 슬픔이라면 날려버릴 수 있을 거야.

웃으면 변하는 풍경. 구름 사이로 보이는 푸른 하늘을 엿봐.

불안하지만 행복으로 연결 되는 길이 보인 것만 같은 푸른 하늘.

때로는 비가 내리지만, 물이 없으면 큰일이 나고 말아.

시들어버려선 안 돼. 모두의 꿈나무여, 자라나라!

자아, 정말 좋아해 만세! 지지 않는 용기를. 우리들은 지금을 즐기도록 하자.

정말 좋아해, 만세! 더 노력할 테니까 어제에 손을 흔들고 자, 앞을 바라봐.

 

좋은 가사…. 완전히 눈을 감고 빠져들어 버렸다. 코이즈미도 나와 비슷했는지 눈을 지그시 감고 아직 여운에 잠겨 있다. 굉장한 노래다. 아직까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노래. 니시키노의 오리지널 곡인 걸까. 만일 그렇다면 굉장한 재능이다. 반 애들에게 들려주면 금방 친구가 될 수 있을 텐데. 친구가 없는 제가 할 말은 아니지만요….

슬슬 학생회로 돌아가는 게 좋겠지. 시간을 너무 끌었다. 그런데….

“저어, 코이즈미 양?”

“…응?”

“우리 언제까지 붙어 있으면 될까?”

“……──!?”

천천히 눈을 뜬 코이즈미가 고개를 돌린다. 당연하지만 나와 눈을 마주쳤고, 그 거리는 서로 조금만 앞으로 가면 이마가 맞닿을 정도. 이런 거에 면역이 없을 것 같은 코이즈미는 그대로 얼음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머릿속에서 얼른 상황파악을 끝냈는지 빨갛게 물든 얼굴로 나를 힘껏 밀쳤다.

─아파! 그렇겠죠! 긴장 안 되면 안 되는대로 상처입지만, 이렇게 싫은 반응을 보이면 울 것 같다고!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연속으로 머리를 숙이면서 사죄하는 코이즈미에게 괜찮다는 표시로 손을 한 번 흔들어준다. 응, 생각보다 큰 부상은 아니니까. 괜찮겠지….

“코이즈미. 이다음 혹시 예정 있어?”

“으응, 집에 가려고 했는데… 왜…?”

아이돌 잡지를 돌려주려고 했지만… 지금 분명 학생회실에 있었지. 들렀다 가라고 하기엔 조금 거리가 있고…, 번거롭게 만들 순 없으니 그냥 내일 돌려주는 게 좋겠다.

“의미를 모르겠어.”

드르륵, 하고 문이 열리며 니시키노가 소리친다.

죄송합니다. 그렇겠죠? 제 3자 입장에서 보면 이거 100% 코이즈미를 꼬시는 걸로 보이겠죠? 다신 그런 말 안 꺼낼…

“…니시키노, 무슨 일이 있나?”

……나한테 한 말이 아니었구나.

“어라? 에루 군 어째서 고개를 숙이고 있어?”

“아, 아니, 착각을 좀. 아이돌 잡지는 내일 돌려줄게.”

“…응. 언제든 괜찮아.”

“고마워. 진짜 엄청나게 도움이 됐어! 나만 받기는 좀 그렇고…, 내일 방과 후 시간 비면 밥이라도 쏠게.”

“바, 밥!?”

뭐지? 아이돌을 얘기할 때처럼 갑자기 눈이 반짝 거린다. 밥 얘기에도 스위치가 들어가는 건가. 풉, 재미있는 애네.

“아아, 그, 그치만 이미 에루 군은 알파카 담당 도와주기로 했고 그, 저어….”

“그거라면 걱정 마. 제대로 도와줄 테니까. 서로 도움을 주기로 했으면서 왠지 모르게 내가 더 많이 받은 것 같단 말이지. 그래서 그런 거니까 부담은 안 가져줬으면….”

“그, 그래!? 밥이라…….”

완전히 혼자만의 세계로 들어가 버렸네. 좋아하는 건 밥과 아이돌이라….

“코이즈미. 나는 먼저 갈 테니까, 얼른 집에 가. 여자애니까 늦어지는 건 좋지 않잖아?”

“…으, 응! 그런데 에루 군은 집에 안 가…?”

“나는 조금 들를 데가 있어서 말이지.”

회장이랑 부회장이 나를 안 찾았으면 좋으련만.

“그럼 내일 보자.”

교실에서 나와 곧장 학생회실로 전력 대쉬! 그렇게 1분 정도가 걸려 학생회실에 도착하자 두 사람이 째릿, 하고 노려보는 것이 몸으로 느껴졌다.

“에루 군, 바람 쐬러 어데까지 갔다 왔노? 찾으러 다녔는디 어디에도 없었대이.”

“에루 군. 아직 절차 때문에 정식으로 승인된 건 아니지만, 너도 어엿한 학생회의 멤버잖니. 좀 더 책임감을 갖고 하는 게 좋지 않겠어? 네 아이디어가 기각되어 의기소침한 건 알겠지만….”

가시가 돋친 두 사람의 말이 따갑다. 책망 받아도 어쩔 수 없지. 이건 너무 늦은 내 잘못이다.

“죄송해요. 다음부턴 늦지 않도록 할게요.”

“늦으면 벌 줄 테니까.”

“후후, 착한 아이구마~. 자, 에루 군도 왔겠다. 다시 회의를 시작할까?”

활기찬 분위기로 바뀐 학생회실. 내가 착석하자 자연스레 회의도 시작되었다.

“먼저, 제가 제안한 스쿨 아이돌은 아직 더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요. 저는 좋은 아이디어라 생각하지만 아무래도 걸리는 게 있어요.”

이사장님의 말을 잘 상기해보면 이상한 점들이 꽤 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위화감이 있었던 건 진지한 얼굴로 내게 스쿨 아이돌을 하냐고 말했던 것. 보통은 회장, 부회장이라고 생각할 텐데 어째서 이사장님은 나를 보고 말했을까? 단순히 최초로 남성 스쿨 아이돌을 만들어 주목을 끌려고 했던 건가? 하지만 그러기엔 리스크가 너무나도 크다. 이사장님의 말에 어떤 진의가 들어있는지 파악하기 전엔 스쿨 아이돌은 보류해두는 게 좋을 듯하다.

“응. 이렇게 된 이상 정공법으로 나아가려고 생각해.”

“정공법, 이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인 건 부회장이었다.

“그렇대이. 학생회는 학교에서 열리는 이벤트를 가장 가까이서 접할 수 있고, 무엇보다도 정보를 가지고 있다 안 카나. 활용하지 않으면 손해겄지?”

“지금으로서 가장 가까운 이벤트는 신입생 환영회이려나.”

“신입생 환영회? 하지만 신입생 환영회는 이미 들어온 신입생들을 환영하는 거죠? 그럼 내년에 올 신입생들을 어떻게 할 순 없을 것 같은데….”

“아니. 노리는 건 가족이대이.”

“…….”

부회장이 말하니까 사악하게 들린다. 장난기 가득한 악마가 속삭이는 느낌.

“응? 왜 그런 눈으로 쳐다보는 기가?”

“아뇨, 아무것도.”

“어쨌든. 신입생 환영회도 그렇고, 앞으로 있을 이벤트에도 항상 신입생을 끌어들이기 위한 방법을 생각하고, 우리가 오토노키자카의 폐교를 저지하기 위해 활동하고 있음을 염두 해두고 있으면 될 거야.”

“네. 명심해둘게요.”

앞으로의 방침을 정하는 걸로 회의는 일단락되었다. 지금 당장 활동할 수 있는 스쿨 아이돌이 막혀버린 이상 학생회가 활동할 수 있는 범위는 그나마 학교의 이벤트에 한정된다. 학교에서 주최하는 이벤트를 유리하게 움직일 수 있는 학생회의 최선책이겠지.

“차 내올게요.”

“응, 고맙대이.”

“안 그래도 되는데….”

학생회실의 선반에 놓여 있는 포트로 차를 끓여 두 사람에게 내놓았다. 잠시 한숨을 돌리는 시간. 후루룩, 하고 느긋한 기분으로 차를 한 입 머금는 회장과 부회장. 회장은 사양했으면서도 그렇게 싫어하는 눈치는 아니다. 다행이네, 입맛에 맞는 것 같아서.

똑똑.

느긋한 분위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회장과 부회장이 찻잔을 내려놓자, 학생회실의 차가운 철문 밖에서 규칙적인 소리가 흘러들어왔다. 그에 회장과 부회장은 다소 긴장을 되찾고는 경직된 모습이 되었다.

“네. 들어오세요.”

“실례합니다! 2-2반의 코우사카 호노카라고 합니다!”

문을 열고 들어온 건, 오렌지의 머리가 인상적인… 아까 옥상에서 봤던 선배였다. 생각해보니 서로 통성명도 안한 채였구나. 저쪽도 나를 눈치 챘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내게 손가락질을 했다.

“오오오옷! 너는 아까 본 남자 1학년!”

“호노카! 사람한테 손가락질 하면 못써요!”

오렌지색 머리의 선배에게 주의를 준 사람은 푸른색의 머릿결이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푸른색의 머리라곤 해도 우리 반의 니시키노와는 다르게 차가운 분위기가 아니다. 차가운 분위기라기 보단 딱딱한 분위기라는 말이 어울리겠지. 서 있는 모습, 말하는 태도를 보기만 해도 얼마나 예절이 바른 사람인지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그에 반해 오른쪽에 있는 밤색 머리의 선배는 굉장히 상냥한 눈을 하고 있다. 코우사카라는 선배의 행동에도 쓴웃음을 지을 뿐 별다른 지적은 하지 않은 걸로 보아 친구나 다른 사람에게 심하게 말할 수 없는 타입이 아닐까.

“에루 군, 이미 면식이 있었노?”

“네에, 뭐어…….”

면식이라고 할 정도인가. 아니, 갑자기 춤까지 봤으니 면식이 맞는 건가.

“에루 군이라고 하는 구나! 잘 부탁해!”

저쪽은 딱히 신경 쓰는 눈치도 아니고. 게다가 나도 이 사람과 기회가 되면 얘기하고 싶었으니 상관없으려나. 이렇게 빨리 얘기할 기회가 찾아올 줄은 몰랐지만.

“아, 잘 부탁드려요.”

“…용건이 있어서 온 거 아니니?”

회장의 냉정한 시선과 차가운 말에 살짝 놀랐다. 나를 향해서가 아닌, 코우사카 선배를 향해서였지만. 하지만 코우사카 선배는 그런 걸 신경 쓰는, 아니, 눈치 챈 기색도 없이 “아차차!”하며 자신의 머리를 살짝 쥐어박고는 서류 하나를 회장에게 내밀었다.

흘끗 살펴보니 아무래도 새로운 부를 설립하려는 것 같았다.

“이건?”

“아이돌부! 설립 신청서입니다!”

“그건 보면 압니다.”

“그럼 인정해주시는 거죠?”

“아뇨.”

그야말로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거절의 말. 회장은 냉정하게 논리를 들이밀었다.

“부활동은 동호회라도 최저 다섯 명은 필요합니다.”

그 말에 2학년 선배들이 크게 놀란다. 아니, 당신들도 몰랐던 거냐? 나야 1학년이고, 학생회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됐기에 처음 알았다고 해도. 회장의 칼 같은 논리에 푸른색 머리를 한 요조숙녀 선배가 반박했다.

“하지만 교내에는 부원이 다섯 명 이하인 곳도 많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설립했을 당시엔 모두 다섯 명 이상 있었을 터야.”

완전히 할 말을 잃은 세 사람. 그렇겠지. 차가운 말로 논리를 들이밀며 거절하면 나 같아도 버틸 수 없을 걸. 어색한 분위기가 감도는 학생회실.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아 정적이 흐른다.

“앞으로 두 명이구마.”

그 정적 속에서 부회장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짓고는 조용히 말을 꺼냈다.

“…앞으로 두 명. 알겠습니다. 가자.”

저 사람들을, 밀어주는 건가? 우리에게서 등을 돌린 세 사람이 그대로 학생회실을 빠져나가려고 할 때, 회장이 의자에서 일어섰다.

“기다리렴. 어째서 이런 시기에 아이돌부를 시작하는 거니? 너희들, 2학년이잖아.”

“폐교를 어떻게든 저지하고 싶어서요.”

그 말을 듣고 깨달았다. ……저 목소리, 어디서 들어봤나 했더니 어제 갔었던 화과자 집의 딸이 당신이었냐! 세상, 아니, 마을 정말 좁다. 화과자 집의 딸, 코우사카 선배는 어제 여동생을 상대했던 때완 달리 주눅 든 기색은 없었다. 나처럼 어제 하루 동안 찾아내어, 도달한 해답이 있기에. 그리고 그 답이 정답이라는 것에 자신이 있으니까. 이사장님에게 거절당하기 전의 나와 너무나도 같았다.

“스쿨 아이돌은 지금 엄청나게 인기가 있어요! 그러니까…!”

하지만 회장의 입에서 나온 말은 이사장님과 같은 거절의 말이었다.

“그렇다면 설령 다섯 명을 모아오더라도 허가할 수는 없겠네.”

“에? 어째서…!?”

“부활동은 학생을 모으기 위해 하는 게 아니야. 즉흥적인 착상으로 행동하더라도 상황은 바꿀 수 없어. 이상한 생각하지 말고, 남은 2년 동안 자신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 지 잘 생각해보렴.”

실망한 표정을 지으며 학생회실을 나가는 세 사람. 잔뜩 긴장되었던 학생회실이 다시 누그러진 기분이 들었다.

“차, 식어버렸네요. 다시 내올게요.”

뭔가 굉장히 버티기 힘들었다. 특히 스쿨 아이돌은 내가 처음에 제안한 아이디어이기도 해서 다시 추진할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이런 식으로 간접적으로 거부당해 나도 살짝 실망한 감이 없진 않았다.

“방금 그거.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은 대사였구마.”

장난기가 발동한 부회장의 공격에, 회장은 살짝 얼굴을 발갛게 물들이곤 고개를 돌렸다.

“일일이 한 마디가 더 많단 말이야, 노조미는….”

“후훗, 그게 부회장의 일이니께.”

……두 사람 다 제가 옆에 있다는 거 까먹었죠? 후배 입장에서 할 말은 아니지만, 회장 진짜로 귀여웠습니다. 절대로 입 밖으로 꺼내진 않을 거지만.

“그런데 회장. 저 세 사람 진심이었어요. 쉽게 포기할 것 같진 않은데요.”

“……응. 그러네.”

“마아, 쪼금만 더 지켜보재이. 성급한 판단은 일을 그르칠 수도 있는 기라.”

……하아. 대체 어떻게 하면 좋을까. 문득 창밖을 보자 희미하게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잘 들리진 않지만, 힘이 담겨 있는 느낌. 누가 부르고 있는 지 확신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포기할 생각은 없나보네요.”

작게 한숨을 내쉰 나는 회장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회장, 오늘은 돌아가 보겠습니다.”

“응, 수고했어. 다시 한 번 말하겠지만, 학생회에 들어와 줘서 정말 고마워.”

별 거 아닌데요, 뭘.

“그것보다 회장은 아직 계실 건가요?”

“응. 할 일이 남아 있으니까. 아, 도와줄 필요는 없어. 정말 조금 남았으니까. 노조미도 먼저 돌아가도 돼.”

“그른가?”

“그럼. 사양 않고.”

살짝 목례를 하고 학생회실의 문을 닫는다.

복도를 걸으며 창문 밖을 바라보니, 교정으로 가는 길에는 벚꽃이 아직 만개해있었다. 연분홍의 꽃잎이 노래에 반응하듯 하늘 멀리 날아올랐다. 아무도 없는 교정에 세 사람의 뜨거운 마음만이 가득 일렁거렸고, 나는 아직 여름이 이른 초봄에, 아지랑이와 함께 교정에 신입생들이 가득 걷고 있는 착각을 본 것만 같아 눈을 비볐다.

 

왜냐면 가능성을 느꼈어. 그래… 나아가자!

후회하고 싶지 않아, 눈앞에는 우리들의 길이 있어!

Let's go! Do! I do! I live!

Yes, Do! I do! I live!

Let's go, Let's go! Hi!!

 

1, 2, 3, 4, Hi!

 

앞을 바라보자, 위로 바라보자! 무언가를 기다리지 말고

지금가자, 어서 가자. 어디라도 좋으니까.

태양은 반짝이며 미래를 부르고 있어. 자아 가보자, 너도 함께 나아가자→내일로

정열적인 마음 (주체하지 못해서) 끌어안고 달렸어 (괴로웠었어)

모두 이쪽으로 와 (좀 더, 좀 더!) 움직여서 확인해보고 싶은 힘이야 (HI!)

Let's go! 변하지 않는 세상이 아니야! Do I Do I live!

Let's go! 가능성이 있는 이상, 아직은 포기하지 않을 거야! (HI! HI! HI!)

Let's go! 자연스러운 미소라면 Do I Do I live!

Let's go!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했어, 활기차게 빛날 수 있어!

우리들의 장소가 있어!

Let's go! Do! I Do! I live Yes, Do! I Do! I live! Let's go, Let's go! Hi!

 

“나 역시 할래! 한다면 하는 거야!”